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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 차례 북한 여행을 다녀온 뒤 내게는 북한에 두고 온 수양딸과 수양조카가 생겼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정을 나눈 그들이 다시 보고 싶어서, 더 많은 북한동포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올해도 다시 북한에 다녀왔다. 2013년 8월 15일부터 8월 26일까지 한 차례 그리고 9월 4일부터 13일까지 또 한 차례 북한을 여행했다. 새 연재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통해 북한동포들의 지금과 북한의 여러 명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말

오늘은 평양에 있는 중국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하러 간다. 원래의 우리 일정은 비행기를 타고 평양에서 중국 선양으로 간 뒤, 그곳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으로 돼 있었다. 중국은 2013년부터 항공편으로 통과하는 승객들을 대상으로 북경을 경유할 경우에는 48시간 그리고 그 외의 도시들을 경유할 경우에는 24시간 동안 비자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비자 없이 중국을 경유해 북한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열차 타고 한반도 가로질러 대륙으로

평양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발급받은 중국 비자
 평양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발급받은 중국 비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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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출국 때도 입국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부터 비행기로 선양에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 평양에서 열차를 이용해 북한을 떠나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평양에서 열차를 타고 신의주와 단둥을 거쳐 선양으로 가는 일정이다. 우리가 이 일정을 택한 이유는 부산을 출발한 열차를 타고 한반도를 가로 질러 대륙으로 가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육로를 통해 중국에 입국하는 경우에는 통과 승객도 비자가 필요하단다. 그래서 중국 비자를 받기 위해 오늘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을 가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육로로 중국에 들어가는 계획을 '해외동포사업부'에 미리 알렸다. 그들도 우리의 일정 변경을 흔쾌히 승낙했다. 비자를 받음과 동시에 기차표만 확보하면 된다.

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통일 조국의 부산을 출발한 기차가 서울과 평양을 거쳐 신의주를 통과해 중국대륙으로 들어간다. 이 기차는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모스크바로, 베를린으로, 로마로, 파리로, 마드리드로 유럽을 헤집고 다닌다. 통일 전이라도 철길만 연결된다면 남한은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조국의 기차역 전광판에는 세계지도와 함께 전 세계의 지명이 꽉 차 있을 것이다.

다시 만난 해방산 호텔 웨이트리스

다시 만난 해방산 호텔 웨이트리스 황연희(왼쪽)
 다시 만난 해방산 호텔 웨이트리스 황연희(왼쪽)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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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사관 가는 길에 나는 해방산 호텔에 잠시 들르자고 안내원에게 부탁했다. 해방산 호텔은 2012년 4월 북한여행 당시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이다. 그곳 레스토랑에는 정이 가득한, 예쁘고 사랑스러운 웨이트리스가 있다. 그의 이름은 황연희.

사실 2012년 5월 북한여행 당시에도 해방산 호텔에 들렀으나 황연희가 쉬는 날이라 보지 못하고 선물만 두고 온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꼭 만나서 얼싸안아 보고, 선물도 직접 전해주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북한 호텔의 여느 웨이트리스와 마찬가지로 황연희 역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하다. 그녀는 외국인에게 조국의 참 모습을 알리기 위해 관광대학에 진학했다고 했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 조금이라도 식사 시간에 늦게 내려가기라도 하면 건강을 걱정해주던 그런 아이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호텔 식당문을 열었다. 반가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운이 좋게도 호텔에 출근한 황연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보자마자 반색하며 달려온다.

"오마나, 녀사님. 안녕하셨습니까? 오마나. 언제 오셨습니까?"
"이틀 전에 왔어. 그동안 잘 있었어? 어머님, 아버님도 안녕하시고?"
"네. 그러지 않아도 부모님께서 가끔 녀사님을 또 봤냐고 묻곤 하십니다. 작년에 놓고 가신 선물도 잘 전해 받았습니다. 뵙질 못해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건강은 일 없으시지요? 작년에 공연하느라 오셨을 때는 참 힘들어 보였습니다."

"응, 아주 좋아. 그러니 이렇게 돌아다니지. 만나니 정말 반갑구나. 올 때마다 꼭 들를게. 안내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가봐야겠구나. 부모님께 안부인사 꼭 전해드려."
"점심식사를 하시고 가시면 좋을 텐데. 마침 요리사 선생님께서 가자미식해 담그셨는데, 오늘부터 식탁에 올린다고 했습니다."

연희는 우리 부부가 가자미식해를 좋아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점심은 오데서 하시나요?"
"글쎄, 아직 모르겠어."
"잠깐만 계시겠어요? 제가 인차 가서 가자미식해를 조금 담아 오겠습니다."
"어머, 연희야, 됐어. 담아오지 마. 먹고 싶으면 여기 와서 먹을게. 정말 고마워."

연희의 동료 웨이트리스와 함께 사진을 찍고 호텔을 나왔다. 문앞까지 배웅 나온 연희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우리말 할 줄 아는 직원 없는 중국대사관

평양주재 중국 대사관
 평양주재 중국 대사관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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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사관 내 영사과. 몇몇 북한동포들이 서류 꾸러미를 들고 창구 앞에 늘어서 있다. 우리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순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진다.

창구의 영사관 직원이 중국어를 못하는 북한동포들에게 중국어로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불친절하고 퉁명스럽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의 북녘 동포들은 더듬거리는 중국어와 함께 손짓 발짓으로 의사표시를 하며 답답해한다. 주재국의 말을 할 줄 아는 직원이 없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시한폭탄 같은 성격에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남편이 한마디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조마조마하고 불안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다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혼잣말을 한다.

"이게 지네들이 말하는 소위 혁명동지의 나라를 대하는 꼴인가? 중국 오성기의 별 다섯 개 중 하나는 조선의 별이라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해대더니 동지의 나라 동포들을 대하는 꼴하고는…, 이런 개XX들."

우리 차례가 돼 서류와 함께 미국 여권을 제출하니 그 직원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더듬거리는 영어로 온갖 친절을 베푼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나도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여권 복사를 요구하길래 미처 준비를 못했다고 하자 '걱정말라'며 손수 복사해온다. 그러더니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영어로 상냥하게 말을 건다.

"It's first time speak English with American passport people. I am shaking."

아마도 그는 '미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과 처음 영어로 대화를 해 떨린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남편이 비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한다.

"Pardon me?"(실례지만 뭐라고요?)

얼굴이 빨개진 영사과 직원이 오류 투성이 영어를 반복한다. 남편은 더 이상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나중에 여권을 찾으러 오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씁쓸히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을 나섰다.

오래 전 미국에 유학 갈 당시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광화문 앞 미국대사관에 새벽부터 나가 담벼락을 따라 줄을 서서 기다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대사관 내 한국인 직원이 무슨 벼슬이라도 하는 것처럼 떵떵거리며 이거 해와라, 저거 해와라 모욕을 주곤 했다. 지금 이곳 평양 중국대사관에 있는 북한동포들의 모습을 보니 그때 그 순간이 겹쳐 보인다. 나라가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부강한 통일 조국을 더욱 그리게 된다.

"새빨간 공산당 거짓말!"

중국대사관을 나와 점심식사를 하기 전, 남편이 동갑내기인 안내원에게 장마당 구경을 하고 싶다고 했다. 둘은 만나자마자 동갑임을 알고 바로 말을 놓고 지냈다.

"김 선생, 혹시 조카를 찾아 세포등판에 가게 되면 처가 꼬부랑국수(라면)를 사가겠다는데 장마당에 미리 가보면 안 될까? 뭐 더 사가지고 갈게 있나 알아보고도 싶고."
"아이고, 정 선생, 세포등판 거기는 못가. 생각도 말라고. 그리고 장마당은 지금 문 닫았어. 오후나 돼야 연다구. 아이구, 참! 지금은 경축일 기간이라 이번 주 내내 문을 닫을 거야."

"거참, 이상하네. 나진-선봉에서는 장마당이 아예 관광코스에 들어가 있던데 왜 평양에서는 장마당 구경을 안 시켜주는지 모르겠네."
"아니, 시켜주고 안 시켜주고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시간에는 닫혀 있다니까 그러시네."
"지금이 몇 시인데 문을 닫아? 에이구, 이 공산당 쌔빨간 거짓말 하곤…."

남편의 의심증이 슬슬 발동하기 시작했다.

"정 선생! 정 선생은 왜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요?"
"하하, 어려서부터 '공산당은 거짓말을 잘한다'고 배웠지. 그래서 남쪽에서는 농담으로 그런 말을 가끔 해."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내가 끼어들었다.

"여보, 당신은 왜 사람을 그렇게 못 믿어요? 닫혀있다고 그러시잖아요."
"아니, 믿을 사람이 따로 있지 공산당 말을 믿어?"
"여보, 그만 하세요. 아무리 농담이라도 그렇지 정말 오해 사겠어요."

김 선생이 우리의 대화를 듣더니 배꼽을 움켜쥔다.

"신 녀사님, 정 선생께서 웃기시려고 그러는 거 우리 다 압니다. 기런데 정 선생,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믿갔어?"
"장마당에 데려가면 간단하지. 가서보면 알 것 아닌가."
"만일 닫혔으면?"
"오늘 내가 해달라는 거 다해드릴게. 점심, 저녁은 물론 술대접까지."

평양의 장마당 건물
 평양의 장마당 건물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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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당 입구에 걸려있는 영업 시간표
 장마당 입구에 걸려있는 영업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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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원 김 선생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장마당으로 가자고 한다. 아파트촌 사이를 지나니 '통일거리시장'이라는, 꽤나 커 보이는 장마당이 나온다. 우겨서라도 가자고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장마당을 향해 걸어갔다.

아뿔싸! 장마당이 정말 닫혀 있다. 장마당 경비원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목요일은 휴일이고 다른 날에는 오후에만 열리는데 이번 주는 내내 닫는다"라고 이야기해준다. 남편이 겸연쩍어하며 미안해한다. 엄청 미안해하는 걸 보니, 겉으로는 농담처럼 "새빨간 거짓말 말라"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김 선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같은 식당인데 다른 출입구... 왜?

약속대로 우리는 김 선생과 운전기사를 '모시고' 청류관이라는 식당에 갔다. 청류관은 강을 끼고 세워진 대형식당이다. 점심식사 시간대라 그런지 식당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곳이 아닌 2층의 다른 쪽으로 안내됐다. 같은 식당인데 말이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들어온 쪽에서는 외화만 받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저쪽 식당에서는 북한돈을 내야 한단다. 되레 저쪽 건물이 훨씬 더 화려하고 웅장하다. 게다가 음식값도 저쪽이 더 싸다고 한다.

청류관 주차장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북한주민
 청류관 주차장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북한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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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으로 청류관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북한주민들
 차창 밖으로 청류관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북한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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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를 의아하게 한 것은 우리가 안내된 곳 역시 대부분의 손님들이 북한주민이라는 점이었다. 이해가 안 된다. 왜 북한주민들이 구태여 비싼 값의 외화를 지불하면서 식사를 하는지 말이다. 음식의 맛도 차이가 없다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외화를 내고 식사를 하는 곳은 줄을 서서 한참 동안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나 같으면 줄을 서서라도 화려하고 음식값이 싼 쪽에서 식사를 하겠다는 생각이다.

청류관 냉면
 청류관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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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맛은 여느 북한 식당과 거의 차이가 없다. 뱀장어구이와 쇠고기 석쇠구이를 안주로 대동강 맥주를 마신다. 당연히 주식은 냉면이다.

구매력을 갖춘 시민들의 등장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는 산책이나 할 겸 평안남도 도청소재지인 평성시를 구경하기로 했다. 평양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한 시간 정도 거리다. 평양 교외의 한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었다. 북한 주유소에서 직접 주유하는 건 처음이다. 산을 넘어 도시로 진입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평성역이 보인다. 이 역을 기준으로 열차들이 여러 지역으로 운행한다고 한다.

북쪽으로는 신의주를 거쳐 중국으로 가고, 동북쪽으로는 함경도 나진-선봉을 지나 한반도 최북단의 역인 두만강역으로 간단다. 지금은 러시아로 가는 열차가 나진-선봉으로 연결돼 있으니 평양을 출발해 이곳 평성을 지나 러시아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남북 고속철도가 연결되면 평성역의 위상은 더 높아질 것이다. 아마도 승객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찾아 떠나면서 작별인사를 나누겠지. 그 순간을 상상하며 역 주변을 주의 깊게 둘러본다.

평양 교외의 주유소
 평양 교외의 주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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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평성역
 평안남도 평성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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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으로 돌아온 우리는 호텔로 가기 전 차를 마시기 위해 '해맞이식당'을 찾았다. 1층의 슈퍼마켓에서는 주부들이 장을 보고 있다. 2층에는 여러 나라 음식점들이 있다. 한 안내판에는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승리 60돐을 맞으며 명절 특별 봉사를 진행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서양음식 레스토랑은 아직 식사 시간대가 아닌지라 지금은 손님을 받지 않는단다. 우리는 구경만 하겠다고 말하고는 들어가서 사진만 찍고 나왔다.

해맞이식당 안내판
 해맞이식당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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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식당에서 즐긴 빵과 커피
 해맞이 식당에서 즐긴 빵과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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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층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빵을 산 뒤 카페로 향했다. 아주 고급스럽게 꾸며놓은 곳이다.

빵과 커피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맛이 좋다. 커피는 정확하게 무슨 종류인지 알 수는 없으나 프렌치향이 느껴진다. 베이커리의 빵 역시 프렌치 스타일을 북한식으로 변행해놓은 듯하다. 손을 씻기 위해 들어간 화장실도 깨끗하다. 화장실 세면대는 현대식 디자인을 따랐다.

지금 평양에는 멋진 레스토랑, 카페, 술집 등 고급 유흥시설이 성행하고 있다. 이러한 시설들은 결코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전시물이 아니다. 또한 외국인들이나 고급 당원들만이 이용하는 시설도 아니다.

내가 만난 국장이나 부국장이란 사람들은 고급당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외양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항상 인민복 차림에 머리는 가르마도 없이 뒤로 넘겼으며, 야외 노동을 하는지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다. 내가 가 본 고급 술집이나 레스토랑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평상복을 입고 있으며 얼굴색도 뽀얀 게 살짝 부티도 난다. 이들이 바로 요새 북한에 등장하고 있다는 '구매력을 갖춘 북한주민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내가 유추해본 바, 이들은 무역이나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북한 상점에서 파는 대부분의 상품들은 중국제품들이다. 간혹 미국이나 유럽 제품들도 볼 수 있지만, 겉포장에 중국어가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을 통해 들어오는 수입품일 게다. 그렇다면 이 상품들을 수입하는 무역업자와 중간상인들이 있을 것이며, 이를 상점이나 장마당에서 판매하는 소매업자 역시 존재할 것이다. 이들이 바로 외화를 소지한, '구매력을 갖춘 북한주민들' 아닐까.

'구매력을 갖춘 북한주민들'은 또 있다. 외국에 나가 근무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지금 많은 수의 북한동포들이 중국에 나가 있다. 이들이 중국에서 받는 월급은 적어도 300달러 이상이라고 한다.

평양 순안비행장에서는 가끔 쿠웨이트 등 중동행 전세 비행기를 볼 수 있다. 이 비행기들은 북한 동포들을 꽉꽉 채우고 목적지로 출발한다. 예전 우리나라에서 많은 건설 노동자들이 중동으로 취업해 나간 것처럼. 이들이 중동국가에서 받는 임금은 미화로 천 단위라고 한다. 이들 또한 외화를 소지하고 있는, 구매력을 갖춘 북한주민들일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은 벌어들인 외화를 북한 화폐로 환전하는 대신 외화를 소지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두 가지 이유를 추측해본다. 하나는 우선 북한 화폐의 높은 인플레이션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난번 실패한 화폐개혁 때문이 아닐까. 신권 교체의 한도액을 정해놔서 다량의 구권을 소지했던 이들이 손해를 봤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북한 화폐를 소유하려들지 않을 것이다.

무역이나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숫자를 감안해 볼 때, 이들 또는 이들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외화 액수는 수십억 달러에 다다를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국가가 이들이 소유하고 있는 외화를 흡수하기 위해 외화만 사용할 수 있는 고급 레스토랑이나 백화점 등을 세우는 것으로 생각된다.

주민들 역시 외화를 소지하고 있어야 고급식당에서 식사를 즐기고, 질 좋은 외제 상품을 구입할 수 있으니 주민들의 외화 소유욕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정리해서 말하면 북한도 경제의 논리가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북한에서 시민혁명? 아니라고 봅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동상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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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구매력을 갖춘 북한주민들'을 부르주아 혹은 미들클래스(중산층)로 생각해 시민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우기도 한다. 즉, 이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또는 '시민 민주주의 혁명'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내가 본 북한사회에서는 그런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왜냐하면 북한 지도층과 인민들 사이의 단단한 결속력 때문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 반공 교육 시간 때 배운 대로 이들의 결속력이 '북한 정부의 세뇌 교육'에 의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결속력 자체가 단단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조건에서 서구식 시민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은 무척 낮다.

나는 '구매력을 갖춘 북한주민들'의 등장을 시민혁명과 연결해 생각하기보다는 북한주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과 연결해 바라보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향상될수록 결속력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간혹 사람들이 "우리는 북한정권과 북한동포를 구별해야 한다,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지 북한동포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한다. 그러나 내가 관찰한 북한정권과 북한주민은 별개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였다.

나는 '북한정권과 북한주민은 별개' 또는 '북한은 곧 붕괴하리라'라는 가정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서는 북녘의 실정을 정확히,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해맞이식당을 떠나 호텔로 돌아온다. 로비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아! 해외동포 이산가족들의 행복한 상봉이 이뤄지고 있다.

(* 다음 글에 계속)


태그:#북한, #여행, #이산가족,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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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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