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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오전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4월 16일 오전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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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사고에서 배가 가라앉으면 증거는 사라진다. 침몰 원인을 모르면 모를수록, 해운회사가 보험금을 타는 데 유리하다.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해운회사가 이런 악마적 일을 생각했다면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걸 추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해양사고 전문가 와타나베 유타카 동경해양대 교수는 지난달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를 전 세계 해난사고 역사상 유일무이한 사건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와타나베 교수는 29일 업데이트 된 팟캐스트 방송 <정봉주의 전국구>에 출연해 "타이타닉호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전 세계 해난사고는 사람들이 배 밖으로 나가거나 바다로 뛰어들어 구조되거나 사망하거나 아니면 실종된 사고들이었다"며 "이렇게 거의 전원이 배 안에 갇혀버린 상태에서 배가 침몰해버린 경우는 전 세계 해난사고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보험금 때문에 승객들 구하지 않은건가?"

와타나베 유타카 동경해양대 교수
 와타나베 유타카 동경해양대 교수
ⓒ 전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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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일본 동경 유튜브센터에서 정 전 의원과 만난 그는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왜 선원들이 배에서 탈출하면서 승객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리지 않았느냐 하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선원들이 승객보다 먼저 대피해서 자신들의 목숨만 구하려고 했다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고 그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 의혹의 핵심엔 보험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맨 먼저 그는 "선장과 1등 항해사 등이 배 밖으로 나온 뒤, 승객이 먼저 많이 나오게 되면 자신들이 경비정을 탈 수 없게 될까봐 자신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랬다는 말은 아주 그럴듯한 이유로 들리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허점이 있다"면서 "조타실과 객실은 원활하게 왕래할 수 있도록 연결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승객들이 조타실을 통해 많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와타나베 교수는 "승객들이 나오기 쉬운 곳은 배의 뒤쪽 선미"라며 "이미 경비정이 조타실에 도착했을 때는 본인들 스스로 조타실을 통해 자신들이 승객보다 먼저 경비정을 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만약 선원들 스스로 구조가 된 뒤에 다음은 승객이라는 생각을 했다면, 그 단계에서 선내방송을 통해 당황하지 마시고 천천히 배의 갑판으로 나오시라, 해양경찰이 왔다, 지금부터 순차적으로 구조대가 오고 있다고 방송을 반드시 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이들이 이 단계에서 취한 행동은 승객들에게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선원들이 해경 경비정으로 옮겨 탈 때에도 선내방송을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면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보험으로 해운회사가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 전 의원이 "보험금을 통해 회사가 이익을 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냐"고 묻자, 와타나베 교수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가능하다면 믿고 싶지도 않지만, 가능성으로서는 대단히 높은 일"이라고 전제한 뒤 당시 상황을 다시 설명했다. 그의 말이다.

"16일 사고 당시 군산 해상에서부터 배가 기울어졌다는 진술이 있었다. 선원들은 이 상황을 해운회사와 연락을 서로 취해 전복의 위험성이 있다고 알렸을 것이다. 실제 이 배는 오전 8시 40분 정도에 급격히 기울어졌다. 그런데 구명조끼를 입게 한 채로 '가만히 있으라'고 한 뒤 자신들만 탈출했다.  

당연히 해운회사는 선체보험에 들어 있고, 트럭 등의 화물보험에도 가입했다. 아마도 승객 전원에 대한 생명보험도 들었을 것이다. 이때 배가 가라앉아 버린다면 증거는 없어진다. 승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으니 피난유도는 분명히 행한 것이다. 

이때 해운회사는 선체보험으로 돈을 벌 수 있고 화물보험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 승객들의 생명보험은 탑승객 중 사망자 수만큼 전액이 해운회사로 들어간다. 이때 무시무시해지는 것은 어느 누구도 구조되지 않기를 바라는, 승객 전원이 배와 함께 가라앉아 죽어주는 것이…. 그리고 원인을 모르면 모를수록, 보험금을 타는 데에는 유리해진다. 이런 일은 생각조차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수백 명의 인명, 특히 고등학생들이 사망했다는 것을 추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와타나베 교수는 과거 일본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일본에도 과거 사건들을 보면, 회사가 직원들에게 생명보험을 걸어놓고 직원들이 근무 도중 사망한 경우 보험금이 회사로 입금됐지만 유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전부 착복했다가 나중에 재판이 벌어져 간신히 유족들에게 보험금이 지급된 바 있다"며 "만일 세월호의 해운회사가 승객보험에 가입한 상태라면 가장 먼저 보험금이 입금된 곳은 해운회사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5분만 승객피난유도 했어도 전원구조 가능했다"

와타나베 교수는 "만약 선원들이 배가 전복해 화물들이 쓰러지고 급선회하다가 멈춘 지난 16일 오전 8시 40분을 전후해 올바른 승객피난유도를 했다면 거의 전원이, 헬리콥터, 경비정이 도착했을 당시 배의 바깥쪽으로 나와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와타나베 교수가 제기한 '올바른 승객피난유도'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첫째 이 배는 위험한 상태이니 지시에 따라 당황하지 말고 피난해주시라. 둘째, 전원 선실의 문을 닫지 말아달라(사고 직후 2~3분 이내). 셋째, 승무원 지시에 따라 침착하고 조용하게 갑판, 배 밖의 난간 있는 부분에 밀착해 나오시라. 넷째 선내에 절대 계셔서는 안 된다.'

와타나베 교수는 "이것은 5분이면 가능한 피난유도"라며 "사고 당일 오전 8시 50분 전까지는 피난유도가 이뤄지고 헬리콥터가 왔을 때, 해경의 경비정이 가까이에 왔을 때는, 세월호의 바깥 부분, 갑판에 시커멓게 사람들이 모여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4월 17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해양경찰서에서 2차 소환 조사를 마친 이준석 선장이 경찰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 세월호 선장 4월 17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해양경찰서에서 2차 소환 조사를 마친 이준석 선장이 경찰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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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처음 5분에서 10분간 이 정도의 피난유도로도, 또 승무원들이 객실로 가서 '자 밖으로 나오세요! 밖으로 나오세요'라고만 했다면 200명 이상의 승객이 선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며 "이것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연안경비대, 일본의 해상보안청, 그리고 해난구조에 뛰어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다 같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라고 말했다.

와타나베 교수 주장의 핵심은 세월호 침몰 당시 선원들이 충분히 승객들을 밖으로 유도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사건에서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가두어 놓고 자신들만 탈출한 것은 자신들의 목숨만 부지하겠다는 것이었다는 식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그렇게만 보기엔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며 "선원들이 경비정에 옮겨 탈 때도 승객들을 유도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언가 의도가 있는 행동"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 의도에 대해 와타나베 교수는 "보험금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선원들의 이해할 수 없는 이 행동의 배후에 해운회사가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와타나베 교수는 "일등 항해사가 배에서 탈출할 때 승객들 바로 근처까지 갔었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핸드폰만 갖고 해경 경비정으로 옮겨 탔는데 이때 그는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며 "일등 항해사 본인은 그때까지도 아직 이 배가 바로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와타나베 교수는 "일등 항해사에게 그런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면 왜 승객들에게 대피하라는 말을 전하는 것조차 하지 않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무언가 다른 커다란 이유가 없는 한, 그런 행동은 마치 승객 모두가 배 안에 있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의미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군산에서 문제 있을 때 구조 요청을 했다면 상황 달라졌을 것"

배의 안정성과 관련해서도 "적어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번 세월호처럼 배의 가장 윗부분에 많은 승객을 실을 수 있도록 개조해서, 배의 중심이 51cm나 올라가 버리도록 한 예는 없다"며 "이 배는 인천을 떠나 출항한 단계에서부터 이미 언제 전복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의 배"였다고 진단했다.

그는 "적어도 세월호가  이상 징후가 있었던 군산 앞바다를 지나갈 때 구조요청을 했어야 했다"며 "그 단계에서 닻을 내리고 엔진을 꺼야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와타나베 교수는 "엔진을 끄면 중심이 더 이상 높아지지 않기 때문에 배가 떠 있을 수 있다"며 "승객 470여명을 구조선에 옮겨 태우면, 옮겨 탄 승객의 무게 만큼 배의 중심이 내려갈 수 있다. 그렇게 해도 침몰에 견디지 못할 것 같다면, 배 위에 놓여 있는 컨테이너 몇 개를 구조선으로 옮기면, 아마도 세월호는 자력으로 제주도까지 갈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배 안의 화물도 구조되고, 승객도 전원 구조되고, 배도 구조되고, 전부 구조될 기회가 군산 해상에서 기울어져 있을 때였다"라며 "그러나 세월호 선원들은 그것을 무시한 채, 계속 운행해버리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와타나베 교수는 최근 20년간 해상방재·인명구조에 관한 연구를 일본 국가위원회 소속 위원으로서 계속해온 권위 있는 학자다.


태그:#동경해양대 교수, #와타나베 유타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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