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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선도투' 26명 여러분, 안녕하세요. 어떻게 인사를 전해야 할까요? 일면식도 없고, 모르는 분들이기에 조심스럽습니다. "요즘의 근황은 어떠십니까?"라는 극히 상투적인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전혀 몰랐습니다. 한 책을 통해 여러분의 이름을 접했고, 한 명 한 명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의 슬픔과 기쁨>이지요. 저자 정혜윤씨가 여러분을 직접 인터뷰해서 제게 들려주었지요. 간접적이었지만, 생생했어요. 마치 여러분의 육성이 녹음된 테이프를 몇 시간이고 쭉 들은 것 같았다면 과장일까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짧은 탄식이 나왔습니다. 무언가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야기에 대한 최소한의 대답이랄까요? 서투른 손이지만 편지를 쓰게 된 이유입니다.

그의 슬픔과 기쁨 쌍용 노동자 26명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그의 슬픔과 기쁨>
▲ 그의 슬픔과 기쁨 쌍용 노동자 26명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그의 슬픔과 기쁨>
ⓒ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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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듣습니다

선도투(선도적인 투쟁). 낯선 이 단어가 여러분의 호칭이었나 봅니다. 해고 이후 다른 생계활동을 하지 않고 대한문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지키셨지요? 예전에 TV나 신문에서 여러분을 봤었어요. 철부지였기에 '또 데모하는구나'라며 제 일 하기에 급급했었죠.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의 해프닝, 한 회사의 문제 정도로만 치부했었습니다.

여러분의 선도투 활동은 생각보다 오래 가더군요. 조금씩 다른 매체에서도 기획 기사를 내보냈던 것 같아요. 그때도 별 관심은 없었지요. 나와 다른 남들 문제로만 생각했었거든요. 이런 제 모습이 야속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무렵, 공지영씨의 <의자 놀이>를 접하고, 여러분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어요. 무척이나 놀랐죠. '단지 한 회사의 문제로만 볼 수 없구나. 아직도 세상에 이런 소설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구나!' 놀랍기도 하고, 약간의 의분도 들었고요.

그럼에도 책 한 권이 굳어진 제 의식을 바꾸진 못했나 봅니다. '어떤 과정으로 해고가 진행되었고, 어떻게 시위가 이어졌고, 몇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라는 몇 가지 사실이 제 뇌에 입력된 정도였습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해고에 이런 문제점이 있어"라며 다른 사람에게 젠 체하며 대화 소재로만 삼았을 뿐이었지요. 그렇게 살다가 이 책을 만났어요. 여러분을 만난 겁니다. 몇 장 읽어 내려갔을 때, 제일 놀란 건, 여러분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였어요.

저는 1974년 범띠고 2001년 8월에 입사했어요.(26쪽, 박호민)
저는 1969년생이고 전남 고흥이 고향이에요.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죠.(31쪽, 이현준) 
1969년 평택에서 태어났고 그 뒤로 쭉 평택에서 살고 있어요. 울 어머니 왈, 어려서는 예쁘고 착한 애였대요.(53쪽, 김득중)
현장 활동도 재미있었어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니까. 결혼하고 나서도 사람들 데려와 음식 해먹이고 정종 덥혀서 오뎅이랑 먹고.(95쪽, 이창근)

여러분 26명의 이름과 고향, 청소년 시절, 결혼, 쌍용차에 입사하기 전의 이력, 쌍용차에서의 이력, 선도투 활동…. 여러분에 대한 사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어요. 26명 여러분의 사실이요. 이전에 어떤 매체에서도 볼 수 없었던, 어떤 책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단순히 책에 나오는 사실이 아니라 여러분의 살아있는 '이야기'였어요.

여러분이 어떤 자세로, 어떤 어조로 인터뷰하셨는지는 모르겠어요.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는 뭐랄까? 말로 적확히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정직하다'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참 정직한 삶을 사셨구나,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이웃이었구나.'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분이 아빠였겠죠. 아들이었을지도, 때로는 동생이었을지도, 친한 친구였을지도….

극히 평범했던 여러분의 삶이 짓밟혀지고, 무시 당하고, 잊혔던 것이었군요. '여러분을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뒤늦은 후회만 생겼습니다. 너무도 예리하게 저의 모습을 간파한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군요.

용산과 쌍용자동차 두 사건 다 많은 사람들에겐 관심 밖이었다.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각자 끌어안고 있는 인생의 시계는 쉬지 않고 똑딱거리고 있었다.(24쪽)

여러분들은 계속해서, 5년 동안이나, 쉴 새 없이 외치고 있었는데,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듣지 못했습니다. 들을 수 없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야 듣습니다.

여러분의 슬픔

쌍차에서 해고된 이후 다시는, 살면서 두 번 다시 그런 고통을 받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은 바로 배신감이었어요. 신뢰가 깨지는 것이 제일 마음 아팠어요. 파업에 들어오기 전까지 '형님, 동생' 해가면서 같이 커피 마시고, 그 더운 날 수천 도 뜨거운 배기가스 지나가는 본네트(보닛)에 얼굴 처박고 수리하고 차를 밀어 주고 옆에서 땀을 흘리며 그렇게 같이 일했던 동료가 "형님, 미안해요!"하면서 가방 들고 나가 버리는 것을 봤을 때, 차마 그 뒷모습에 대고 말은 못 했지만 진짜로 고통스러웠어요.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 마음의 밑바닥을 보는 것이었어요. 왜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정말로 고통스러웠어요.(35쪽)

정비 일을 하면 희열을 느낀다던 이현준씨의 고백이지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쓰디쓴 여러분의 마음이 전해져요. 물론, 여러분들이 느꼈던 감정의 1000분의 1, 아니 10000분의 1도 안 되겠지만요. 사람이 배신감을 느꼈을 때, 그것도 제일 친한 사람에게 그 감정을 느껴야만 했을 때, 그 온도는 얼마나 뜨겁고 당혹스러웠을까요? 송전탑에 직접 올라갔던, 충남 예산 출신 복기성씨는 또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나는 우리 동료들이 죽어갈 때 그런 생각들 매번 했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방향이나 방법이 없어요. 사람이 죽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어요. 막막해요. '내가 포기한다면, 내가 모든 것을 잘못했다는 깨끗한 포기여야 하는데 그게 맞느냐? 지금까지 살아온 것, 살면서 해온 것 다 부정하는 게 맞느냐? 그건 아닌데 돌파구는 무엇으로 만드나? 그래, 죽으면서 이 전반적인 내용을 다 알리는 유서를 써서 알리자.'(173쪽)

옆에 같이 있던 누군가가 이젠 옆에 없다니…. 그의 얼굴을 볼 수 없고,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그와 어깨동무할 수 없다니. 그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베인 상처를 어떤 상담가가 소독하고, 싸맬 수 있을까요? 그저 들을 뿐입니다. 조금이나마 여러분의 마음을 헤아릴 뿐입니다. 그뿐입니다. 저의 한계입니다. 

나오니까 정문 앞에 쌍차 사람들이 왔죠. 사실 카메라 같은 것 기대했거든요. 근데 없었고, 나와서 보니까 하루하루 지내는 게 우리가 잊혀졌다는 걸 하루하루 알아 가는 시간이었어요.(118쪽)

2010년 2월 12일 고동민씨와 같이 출소한 이창근씨의 고백입니다. 잊히는 느낌도 경험하셨군요. 여러분의 하루하루는 범상치 않고, 삶은 어떻게 손볼 수도 없이 황폐해졌는데…. 몰랐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면 알 수도 있었겠지요. 힘들게 인터뷰하셨을 여러분의 소중한 이야기를, 아픈 이야기를 저는 그저 책상에 앉아, 전철 속에서 편하게 듣고만 있네요. 죄송합니다.

여러분의 기쁨

<그의 슬픔과 기쁨> 기쁨? 기쁨이라고? 어떻게 기쁨이란 단어가 여기, 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책 제목에 기쁨이 들어간 이유를 쉽게 찾지 못했습니다. 다른 독자들도 왜 이 대목에서 기쁨이라는 단어가 쓰였는지 대답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여러분은 지금 슬프지만, 나중에 찾아올 기쁨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크나큰 슬픔 이전에 맛보았던 기쁨을 말하는 건지….

어설픈 추리로 가설을 세워 보았습니다.

'분명히 기쁨은 있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색깔은 아닐 것이다. 깔깔깔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그런 기쁨은 확실히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직 찾아오지 않은 기쁨을 잉태할 원료쯤은 될 것이다.'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덧붙여 제가 생각한 여러분의 기쁨은 '사람'이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사람들에게 배신감 느끼고, (갖가지 유무형의) 폭력을 당하고, 잊혔는데 말이에요. 4학년 남자애, 2학년 여자애를 둔 최기민씨는 이렇게 말했군요.

이 세상의 구성원으로 같이 살려고 하는 다양한 방식과 재능들이 보였던 것 같고, 진짜 좋은 사람들이 겨우겨우 세상을 다르게 보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동정받는 것 같아서 싫어하기도 했는데, 동정 때문이 아니라 공감 때문에 함께하고자 한다는 걸 알고서 큰 힘을 얻었어요. 연대해 주는 분들이 없었으면 무너졌을 것 같아요.(239쪽)

'공감(共感)'.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낀다는 단어. 이 단어의 힘을 여러분은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어려울 때 옆에 있어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척 소중하셨지요? 산을 좋아한다던 김상구씨, 5년의 시간을 통해 우물 밖 세상을 봤다던 김정운씨는 또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가장 슬픈 것은 우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는 것. 가장 기쁜 것은 같이 싸워 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거 하나로 행복했어요. 내 옆에 누가 누워 있다는 것으로요.(260쪽)
함께 연대해 주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이 결코 우리가 봤던 나쁜 세상만은 아니구나.'하고 생각해요.(265쪽)

여러분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희미하게나마 기쁨이라는 것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 가운데도 기쁨은 있었군요. 냄새 나는 쓰레기 더미에도 기어코 장미는 피어났군요. 비록 완전한 기쁨은 아닐지라도, 여러분이 5년의 시간을 견디면서 찾아 낸 기쁨이 더 구체화되길, 더 많아지길….

 다시 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길
 다시 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길
ⓒ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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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희망

진짜 희망은요, 자본주의사회에 살지만 자본주의를 경멸할 줄 아는 거예요.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고 돈이 주인인 세상인데 저는 그러기 싫어요.(258쪽)

양형근씨의 말이지요. 1989년에 입사해서 해고를 당한 후,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에 회계 조작, 기획 부도 증거들을 쪼가리 쪼가리 모았던 그였어요. 그의 당당한 외침이 여러분 모두의 고백이었겠죠.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쉬운 선언은 아닐 것 입니다. 하지만, 말보다 행동! 여러분이 보여 준 용기 있는 행동들은 그 선언을 100% 확증해 주었습니다.

우리 희망은 소박합니다. 일상을 찾는 겁니다. 길바닥에서 농성하는 것이 아니라 청춘을 다 바친 공장에서 다시 공구 들고 땀 흘리며 차를 만들어야 합니다. 퇴근길이 있고, 동료가 있고, 이웃을 맘 편히 확인하고, 자식의 아빠이자 노모의 아들로 최소한의 역할을 하면서 그동안 못했던 시간들을 보충해 가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제 희망입니다.(247쪽)

철탑에 올랐던 한상균씨의 고백이에요. 김상구씨의 희망은 이렇습니다.

치유 이야기 많이 나오는데 내 생각에 진짜 치유는 돌아가는 거예요. 전문가들이 우리를 치유해 주는 것이 치유가 아니라, 나에게는 일하러 복귀하는 것이 치유예요. 이 불안함은 돌아가서 일을 해야지만 사라져요. 불안함 때문에 사는 게 힘들고, 그렇게 불안한 우리를 위해 치유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좋지만, 나는 돌아가야지 치유가 돼요.(132쪽)

소박하지만 결코 소박하지 않은 희망. 역설이지요. 그게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누구나 다 가질 수 있고, 누구나 다 가져야 하는 일상, 그 소박함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부디 여러분의 희망이 정말로 소박했다는 것이 드러나길, 모든 것이 처음처럼 돌아가서 여러분의 아픔과 슬픔이 치유되길 같이 기도하고 바랍니다.

"나는 궁금했다. 그들은 과연, 이번 삶 속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는 걸까? (17쪽)"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이 질문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고 끈질기게 26명의 감춰졌던 이야기와 삶을 들려준 정혜윤 작가에게 큰 감사를 전합니다. 작가님의 노력으로 묻혀 있던 이들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나올 수 있었네요. 다음에도 이들에게 다가가 주시길, 이번에는 '기쁨'을 더 많이 들려 주시길.

인터뷰를 통해 참된 삶이 무엇인지, 참된 사람이 무엇인지 들려주신 26명(김대용, 이현준, 최기민, 서맹섭, 고동민, 김상구, 한상균, 박주헌, 김성진, 윤충렬, 박정만, 김득중, 이갑호, 이창근, 문기주, 김남오, 염진영, 양형근, 박호민, 김정욱, 한윤수, 정형구, 김정운, 복기성, 유제선, 오석천)의 노동자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3천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쁨과 희망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아픔 많은 2014년 5월
여러분에게 위로 받은 한 독자 올림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 실었습니다. http://blog.naver.com/clearoad



그의 슬픔과 기쁨

정혜윤 지음, 후마니타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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