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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전이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전이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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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이 나서 수리를 맡긴 컴퓨터를 고치다보면, 수많은 바이러스에 감염돼 작동이 아예 불가능할 때가 종종 있다. 심지어 백신 프로그램이 실행되지 않거나 가까스로 실행이 돼 검사를 한다 해도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만 뜨는 경우도 있다. 백신조차 바이러스에 감염돼 백신의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컴퓨터에 설치된 백신 프로그램을 지우고 새로 설치하거나, 아예 컴퓨터를 통째로 포맷해야 한다.

내가 '고장난 컴퓨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최근 대통령 지지율을 두고 말들이 많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이틀 뒤인 18일,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발표한 '박근혜 지지율 71%'를 두고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느냐고 한탄했다. 일각에선 국민 의식 수준을 반영한 것 아니냐며 낙담했고 일부는 대통령이 참사 현장에 가서 실종자 가족을 위로한 것에 국민들이 높은 점수를 준 것이라는 보수적 시각도 내비쳤다.

71%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후 점차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4일 연속 하락하던(67.0%(21일)→61.1%→56.5%→54.0%) 지지율이 25일 56.6%로 소폭 반등한 후 28일 현재 57.9%로 또 다시 상승했다.

이에 대해 대다수 언론들은 구조 활동에 대한 실망이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참사 이틀 뒤 대통령 지지율이 71%를 기록한 것이나, 아직도 정부의 무능과 거짓말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고 있는 마당에, 소폭이라도 지지율이 올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여론조사 결과를 못 믿어서가 아니다. 또 어떤 음모와 조작이 있었다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박근혜 지지율

그럼에도 지지율이 국민 일반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기 힘든 것은, 여론조사 결과를 설명할 수 있을 만한 근거가 어디에도 없다는 데 있다. 참사 발생 이틀 뒤 지지율이 71%이고, 사고발생 14일이 지난 29일 현재까지도 90여 명의 실종자들이 가라앉은 선체 안에 갇혀 있는데, 지지율이 반등했다니... 이건 논리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런 현상이다. 잘한 게 있어야 지지율이 오르고, 구조작업이 일말의 성과를 내야 지지율이 조금이라도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구조작업도 지지부진하고 매일 정부 대응을 질타하는 소식이 쏟아지는데도 지지율이 반등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론조사 기관에 의도한 왜곡이나 조작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사회 시스템의 붕괴'다. 아픔이 여론으로 모아지지 않고, 분노가 불신임으로 표출되지 않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물론 최근 청와대 게시판에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이 게재되는 등 비판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건 아니지만, 사회의 신경망인 비판의식이 결여돼 곳곳이 곪고 썩고 있는 건 사실인 듯하다. 통증을 모르는 대한민국은 백신마저 바이러스에 감염돼 오작동을 거듭하는 고장 난 컴퓨터와 다를 바 없다.

세월호 침몰 이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쏟아졌다. 구조 현장에 참여하지도 않았던, 민간잠수사임을 사칭한 한 사람은 배안에 갇힌 사람들과 대화를 했다고 거짓말 인터뷰를 했다. 또 실종자들이 카톡을 보내고, 전화를 해왔다는 이야기들도 퍼져나갔다. 대부분 조작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런 상황은 실종자 가족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실종자 가족을 '선동꾼'이라고 막말을 쏟아냈다가 사과를 하기도 했다. 정부의 무능과 불성실한 구조에 대한 비난을 '종북몰이'로 무마해 보려는 시도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고 있다. '시체장사'라는 막말을 퍼부으며, 대통령에게 제2의 5·18을 대비하라는 얼빠진 인사도 있다.

대한민국은 중증의 사고 장애를 앓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14일째인 29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 단원고생들 영정사진 보며 눈물 닦는 조문객들 '세월호 침몰사고' 14일째인 29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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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반사회적이고 죄책감이 결여된 행동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사이코패스(psychopath)가 여론을 왜곡하고, 왜곡된 여론이 TV와 언론을 통해 각색되고 재생산되는 국민 일반에도 전달되고 회자되는 현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비판과 소통이 단절된 대한민국. 스스로 치유능력마저 기대할 수 없을 만큼 대한민국은 중증의 사고(思考)장애를 앓고 있다.

이는 정권이 국민들의 비판정신에 철퇴를 가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언론을 길들인 결과다. 정권의 무능과 패정을 매번 종북몰이와 맞바꾸며 국민 이성을 마비시킨 후과이다. 전직 대통령을 끊임없이 모함하고, 작은 비판의 목소리조차 종북으로 몰아 신고를 남발해도 철퇴를 내리지 않고 '애국인사'로 대접해온 보수정권의 위험한 이념 전쟁이 이 사회를 자정능력도 기대하기 힘든 위험에 빠트린 것이다.

40%에 육박한다는 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절대 지지층. 56%의 대통령 지지율이 40%의 절대 기반과 종복몰이와 같은 일방적 여론 왜곡에 의한 것이라면, 정권에게도 행운이라고만 할 수 없다. 화재경보기는 위험 앞에서 벨을 울려야 제대로 작동한다.

"내가 참 못난 부모구나, 자식을 죽인 부모구나. 이 나라에서는 나정도 부모여서는 안 돼요. 대한민국에서 내 자식 지키려면 최소한 해양수산부 장관이나 국회의원 정도는 돼야 해요. 이 사회는 나 같은 사람은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는 사회에요. (중략) 다 정리하고 떠날 거예요. 나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다. 이 나라가 내 자식을 버렸기 때문에 나도 내 나라를 버립니다." - CBS <노컷뉴스> 4월 23일자 '학부모의 절규 "떠날 거예요…나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다"' 중

아픔을 나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분노 표출'

실종자 가족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가슴 먹먹했다. 자식을 버린 조국, 나도 이 나라를 버리겠다는 절규 앞에도 할 말을 잊었다. 대한민국의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위기다.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 대부분이 눌러 앉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겠지만 탈출의 희망이 전염처럼 번지는 대한민국은 평형수를 맞추지 못하는 배처럼 위태롭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처하는 정권은 무능했고 거짓말을 일삼았다. 국가가 마지막 구원자이고 피난처라는 국민들의 믿음을 깡그리 빼앗아 갔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분노는 표출되지 않고 있다. 왜곡된 언론은 분노보다는 염원이 먼저라고 국민들을 다독이고 있다. 모금 운동으로 참사의 슬픔을 나누자고 한다. 그러나 동의할 수 없다. 아픔이 여론으로 모아지지 않고, 분노가 불신임으로 표출되지 않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언론에서 국민들의 잘못을 논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대참사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하지 않는 건 국민들의 비판의식이 결여된 결과라고 본다. 초기 신속하게 대응했다면 더 많은, 꽃 같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이처럼 대참사로 키운 건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거짓이다. 슬픔을 나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정권의 무능과 거짓에 책임을 묻는 것이다. 국민이 평형수 역할을 하지 못하면 대한민국호도 위험하다. 국민 모두의 혜안이 필요할 때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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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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