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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일수록 '언론과 방송의 역할'이 국민들과 희생자 가족들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실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 박근혜 대통령 4월 21일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 중

지난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15분간 모두 발언을 했다. 이날은 세월호 대참사가 발생한 지 6일째 되는 날이었다. 과학적으로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점점 의심받는 시점, 박 대통령은 예상과는 달리 사과하지 않았다. 책임을 통감하지도 않았다.

"1분 1초가 아깝다"고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구조의 절박함을 언급했던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침몰하던 순간에 구조한 174명 이외에 이후로 단 한 명도 추가로 구조하지 못했다. 구조 작업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기나 했던가. '명령을 내려달라'고 박 대통령에게 요청했던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가 거짓말을 한다며 격앙된 상태로 청와대를 향하기도 했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6일째가 된 이날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에서 박 대통령의 관심은 SNS상에서 떠돌고 있는 내용이었다. 박 대통령은 "미군 잠수함과 충돌했다거나 생존자에게 문자가 왔다는 등 악성 유언비어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라며 SNS상에서 떠돌고 있는 내용을 소개했다.

이어서 박 대통령은 "이런 일들은 피해 가족의 아픈 마음을 두 번 울리는 일이고,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분노케 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위험한 일입니다"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끝까지 추적해서 그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공개적으로 다짐했다.

지난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관련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관련 사실을 보도한 KBS 뉴스 화면
 지난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관련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관련 사실을 보도한 KBS 뉴스 화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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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과연 대통령의 '미군 잠수함 충돌'과 '생존자에게 온 문자'에 대한 비판 발언은 적절한가? 지금까지 정부는 침몰직전에 왜 세월호가 갑작스레 '급선회'했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선장과 선원 다수가 생존한 상태인데 말이다. 그 때문에 지난 20일 문성근씨는 "참사 5일째인데 어떻게 아직도 '급선회 이유'조차 밝히지 못하나. 아이들 두고 내뺀 선원들 다 살아 있는데"라는 글을 트윗하기도 했다.

그 뿐 아니다. 세월호 침몰 당시의 상황을 가장 설명할 수 있는 '세월호 – 진도VTS' 교신내용은 사건발생 5일째인 지난 20일에서야 마지못해 공개됐다. 그리고 또 다시 5일이 지난 25일, 교신내용이 일정 부분 편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추적해 책임 묻겠다'는 게 과연 대통령이 해야 할 말이었는가.

'생존자에게 문자가 왔다'는 희망 섞인 가능성을 처벌하려는 태도도 석연치 않다. 침몰 직후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생존자에게 문자'가 왔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됐다. 그들도 처벌대상인가. 대통령이 확신을 가지고 유언비어라 단정하며 부정한 단어는 '생존자'인가, 아니면 '문자가 왔다'인가.

대통령은 협조 요청, 청와대 홍보수석은 '한번 도와주소'

지난 21일 오후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출입기자들에게 '문제제기는 나중에 하는 등' 한번 도와달라는 문자를 보낸 사실을 보도하고 있는 <한국일보> 4월 26일자 3면
▲ "한번 도와주소?" 지난 21일 오후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출입기자들에게 '문제제기는 나중에 하는 등' 한번 도와달라는 문자를 보낸 사실을 보도하고 있는 <한국일보> 4월 26일자 3면
ⓒ 한국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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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방송과 언론의 협조'를 요구한 시점은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란 문구가 기재된 <노란리본>이 SNS에 퍼져나가던 때였다. 국민들이 간절한 마음을 리본에 담던 그 시점, 대한민국호의 선장인 박 대통령은 방송과 언론에 협조를 구한 것이다.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대목, 도대체 왜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을 대상으로 한 발언에서 언론과 방송을 향해 '협조와 당부'를 요청했는가.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한 자리가 아니지 않은가. 수석들에게 언론과 방송의 협조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신호였던가.

이정현 홍보수석의 '도와주소' 문자가 전달된 시점도 같은 날이었다. 재난구조와 관련해 '컨트롤타워'가 없다던 청와대에, 언론 컨트롤타워는 있었던 것인가. 21일 오후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뒤늦게 다른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이 수석은 문자에서 "한 번 도와주소. 국가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문제 삼는 것은 조금 뒤에 얼마든지 가능합니다"라고 문제 제기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어서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지금은)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할 때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수석의 문자는 내용 그 자체로 비판 받아야 하지만 더욱 고질적인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이 수석의 문자를 수신한 언론사 중에서 그 즉시에 그와 같은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가 있었던가. '지금은 문제 삼지 말아달라'로 해석되는 그와 같은 문자를 받은 언론사들은 왜 비판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언론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그 문자는 누가 보더라도 세련된 신종 언론통제 아닌가!

1주만에 주말예능 재개한 MBC

이 와중에 MBC가 방송3사 중에서 가장 먼저 주말예능을 선별적으로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MBC는 25일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전면 중단됐던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일부의 방송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MBC는 25(금)~27(일) 동안에 '사남일녀', '일밤-아빠!어디가?(스페셜)', '나 혼자 산다', '세바퀴'가 정상 방송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무한도전, 일밤-진짜 사나이, 쇼! 음악중심 등 예능은 결방된다고 덧붙였다.

MBC의 전격적인 주말예능에 대한 방송 결정은 예능 프로그램의 녹화 취소가 잇따르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 주목된다. 이번 주 MBC 예능프로그램 중에서 녹화가 진행될 예정이었던 '아빠? 어디가!', '무한도전', '라디오스타' 등의 녹화가 취소되었다. 그 중에 '아빠!어디가?'는 스페셜로 방송이 되고, 비슷한 수준의 웃음을 주는 '세바퀴'는 정상 방영될 예정이다. 예능 녹화는 취소하고, 녹화된 예능은 방영하는 이상한 의사결정을 내린 셈이다.

4년 전, 천안함 사건 당시의 분위기와 비교할 때 MBC의 주말예능 방영 시점에서 성급함이 느껴진다. 46명이 사망한 당시에는 '개그콘서트'가 한달 넘게 결방되는 등 주말 예능이 한 달 가까이 결방되었다. 그런데 300여 명 가까이 사망한, 그것도 천안함과는 달리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던 젊은 생명을 희생시킨 세월호 참사에서 MBC는 불과 1주일만 주말 예능을 결방시켰다.

26일 오전 현재 115명이 배에 갇혀 있는 상태임을 모든 국민이 아는데 MBC는 예능을 통해 국민들에게 웃음을 전달하려는 모습이다. KBS, SBS는 주말 예능 결방을 확정했다.

25일 청와대가 홈페이지 전면에 게시판 '노란리본'. 다른 문구가 없다.
▲ '침묵의 노란리본' 25일 청와대가 홈페이지 전면에 게시판 '노란리본'. 다른 문구가 없다.
ⓒ 청와대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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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청와대는 실종자의 생환을 간절히 염원하는 표시인 '노란리본'을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게시했다. 청와대 노란리본에는 다른 리본에는 다 기재돼 있는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란 문구가 없다. 커다란 회색 바탕에 작은 노란리본을 덩그러니 게시한 것이다. 노란리본을 게시한 청와대는 '언론과 방송'에 협조를 구했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MBC를 통해 주말 예능이 방영된다.

청와대의 '노란리본', 과연 진정일까?


태그:#세월호, #MBC, #주말 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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