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추방되나 한국사회10년표류기 이번사건이남긴것 인터뷰 페이스북 공유 트위터 공유 유우성 스토리 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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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han) 기자 l 2014.04.2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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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관련 사진 ▲ 유우성의 국적은 어디인가 유우성씨는 화교이지만 대대로 북한에서 나고 자랐다가 탈북해 남한으로 건너왔다. 수사 초기 국정원은 유씨에게 '너는 중국인'이라고 하고, 중국 대사관에는 '유우성은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장경욱 변호사는 "그때 이미 간첩혐의가 무죄가 나더라도 잘못하면 국제 미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 이희훈

각종 서류를 직접 조작했다가 들통나자 자살을 기도했던 조선족 국정원 협조자 김아무개씨는 지난 3월 6일 유서에서 "유우성은 간첩이 분명합니다, 증거가 없으니 처벌이 불가능하면 추방하세요"라고 말했다. 이 말에서 '간첩' 운운하는 앞부분은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나면서 더 이상 근거를 상실했다. 하지만 '추방'을 언급하는 뒷부분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다.

25일 선고된 2심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탈북자지원법·여권법 위반 혐의에 유죄를 선고했다. 형량도 1심과 같다(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565만3170원). 한마디로 '유우성은 한국 국적자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유씨는 공식적으로 국적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국가는 유씨를 추방할 수 있게 된다. 법률적으로 강제 퇴거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유씨가 중국 국적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국적 이미 상실한 상황

기사 관련 사진  유우성씨는 현재 중국 국적이 소멸된 상태다. 이 상황에서 판결이 확정돼 한국 국적을 상실한다면 유씨는 무국적자가 된다. 중국에는 아버지와 여동생이 살고 있지만, 무국적자 상태에서는 다시 만나기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유씨의 집에는 지금도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 이희훈


유씨는 재북 화교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화교였고 북한에서 나고 자랐다. 유씨는 2004년 3월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왔고 그때 장기체류 자격을 받았다. 재북 화교들은 중국으로 건너오면 장기체류 자격을 받을 수 있고, 그 후 몇 년이 지나면 중국 국적을 받을 수 있다.

그해 4월 25일 유씨는 라오스와 베트남을 거쳐 태국에서 위조 여권을 사용해 한국에 건너왔다. 탈북자 지위를 부여받았고 당연히 주민등록번호도 나왔다. 위조 여권을 사용했으므로 중국에서는 유씨가 계속 중국에 머문 것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2007년 공식적인 중국 호구가 발급됐다. 한국에서는 '유광일'로 한국 국적을, 중국에서는 '유가강'으로 중국 국적을 가진, 이중국적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런데 2013년 1월 사건이 터지면서 중국에서 유씨의 이중국적 상태를 알아버렸다. 중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다. 중국 영사관 관계자는 25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현재 유씨의 중국 국적이 살아있느냐는 질문에 "유우성씨는 아직도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유씨가 중국 국적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변호인 측은 "중국은 유씨가 남한에 탈북자 신고를 한 상황을 모르고 2007년 호구를 발급했지만 현재는 이미 다 공개됐기 때문에 자동으로 소멸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상황에서 판결이 확정돼 한국 국적을 상실한다면 유씨는 무국적자가 된다. 그럴 경우 추방하기가 사실상 힘들다. 어디로 추방할 것인가. 무국적자 신분인데.

무국적자의 처리

통일부에 따르면, 유씨처럼 북한이탈주민으로 보호를 받다가 나중에 화교임이 밝혀져 신분이 박탈된 경우는 3월 말 현재까지 모두 13명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일단 신분이 박탈되면 이후 처리 문제는 법무부 소관이라 어떻게 처리됐는지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법무부에서는 이 13명의 처리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탈북자 사례는 아니지만, 법률적으로 유씨와 동일한 상황은 국제결혼이 활성화되면서 종종 발생했다. 외국인노동자 사건을 많이 담당했던 황필규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말이다.

"중국 사람이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과 결혼을 해 국적을 바로 취득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위장 결혼이었다. 그래서 국적을 박탈당해 중국 국적을 회복하려고 했는데 중국에서는 한번 국적을 버린 사람을 회복해 줄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실제 강제 퇴거를 시켰는데 중국에서 못 받겠다고 해서 다시 돌아온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아직도 무국적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무국적자는 한마디로 불법체류자다. 합법적인 신분이 없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일할 수도 없고, 합법적으로 신분관계를 만들 수도 없다.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법무부는 탈북 화교들의 경우 무국적자가 되더라도 일부에게는 체류 자격을 부여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명확하고 공개적인 규정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때그때 경우에 따라 처리해 왔다는 점이다. 황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이미 1962년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지만 52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구체적인 이행을 위한 정책이 없다시피 한 상태"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이중 플레이

기사 관련 사진 ▲ 남재준과 황교안 1심과 2심에서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단죄하려했던 국정원과 검찰의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오히려 자신들의 치부만 드러냈을 뿐이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항소심 판결이 확정되면, 유씨에 대한 국적 및 체류에 대한 사항은 거의 전적으로 법무부의 손에 달리게 된다.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가 결국은 무국적자로 전락하거나 가해자에 의해 추방된다면, 정의로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진은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국정원개혁특위에 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의 뒤를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지나는 모습니다. 이 두 사람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이어 이번 증거조작 사건까지 연이어 책임론에 휘말려 사퇴 압력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건재하다.
ⓒ 남소연

유우성씨의 국적 문제와 관련해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은 국가정보원의 이중적인 플레이다. 국정원과 검찰이 제기한 유씨에 대한 모든 공소사실은 그가 북한 주민이 아니라 화교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유씨 수사는 엄밀히 말해 외국인에 대한 수사였다. 지난해 1월 유씨가 국정원에 체포돼 조사를 받을 당시 조사관은 그에게 중국에 영사보호 신청을 할 수 있음을 고지했다. 영사보호는 타국에서 자국민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을 때 현지 대사관 측이 나서 법적 도움을 제공하는 제도다.

하지만 장경욱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중국 대사관에 영사보호신청에 대해 문의했을 때 공식적인 입장은 유보적이었다고 한다. 장 변호사는 "국정원이 '유씨는 아직 한국 사람이다, 재판이 끝나야 한다'는 입장을 자신들에게 전달했다고 대사관 측에서 말했다"고 전했다.

즉, 수사 초기 국정원은 유씨에게는 '너는 중국인'이라고 하고, 중국 대사관에게는 '유우성은 한국인'이라고 말한 것이다. 장 변호사는 "중국이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국정원의 조치"였다며 "그때 이미 간첩혐의가 무죄가 나더라도 잘못하면 국제 미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어쨌든 2심 판결까지 놓고 볼 때 탈북자 신분이 취소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유씨는 중국 국적을 회복할 수 있을까? 전적으로 중국 정부에 달린 문제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국이 취해온 정책을 봤을 때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또한 무엇보다 현재 유씨는 중국보다는 한국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한국 국적을 다시 취득할 수는 없을까? 법률적으로는 가능하다. 유씨의 경우 엄밀히 말해 있는 국적이 박탈되는 경우가 아니라 원인 무효라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새롭게 국적 취득 절차를 취하면 된다. 귀화 신청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는 이론일 뿐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 소관 부처가 법무부다. 황 변호사는 "기본적인 법적 요건으로 '품행이 단정'해야 하는데, 법무부는 절대 품행이 단정하다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 무면허 운전만 해도 품행이 단정하지 않다고 국적을 안 주는 판인데"라고 말했다. 그는 "국적은커녕 유씨에게는 다른 탈북 화교처럼 체류 자격을 주는 것도 부담스러워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적도, 체류자격도 안되면, 난민 신청은 어떨까? 이 역시 요건이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차라리 다른 나라에 가서, '한국에서 박해를 받았고 앞으로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신청하는 것은 몰라도.

황 변호사는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의 처리"라고 말했다. 유씨가 국가기관의 범죄 행위의 피해자임은 명백하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국정원 합신센터의 불법구금까지도 명확히 판시했다.

3라운드

기사 관련 사진  1·2 라운드에 이어 이제 3라운드다. 이번 싸움은 한국사회가 유씨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유씨 개인에게는 어쩌면 국보법보다 이게 더 중요한 문제일지 모른다. 이 땅에서 먹고 사는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 이희훈

25일 항소심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설명하며 유씨가 ▲ 10년간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 탈북자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각종 단체에서 적극 활동했고 ▲ 대한민국에 기여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지는 등 애국심을 갖고 있다고 보이고 ▲ 북한지역에서 출생해 탈북 전까지 북한에서 거주해서 본인을 탈북자로 착각하였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고 ▲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7개월 남짓 구금생활을 거쳤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판결 이후 변호인단 회견에서는 추방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양승봉 변호사는 "지금까지는 간첩 혐의와 증거조작에 집중하다 보니 이 부분을 많이 대응하지 못했다"면서 "이제부터는 이후 벌어질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법적으로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천낙붕 변호사는 "탈북자지원법 위반 혐의 등은 사실관계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법리상 유죄가 정당하냐의 문제"라며 "기존 대법원 판례도 있어서 사실 1·2심에서 쉽지 않았다, 대법원에서 새롭게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우성 사건 1라운드는 "오빠는 간첩"이라는 여동생 유가려의 진술을 놓고 벌인 싸움이었다. 2라운드는 국정원과 검찰의 조작 증거를 놓고 치열하게 다퉜다. 그리고 모두 유씨가 완승했다. 이제 3라운드다. 이번 싸움은 한국사회가 유씨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유씨 개인에게는 어쩌면 국보법보다 이게 더 중요한 문제일지 모른다. 이 땅에서 먹고 사는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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