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에 영화 내용의 일부가 담겨있습니다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지난해 만들어 두었던 영화의 개봉도, 기자회견을 하는 등 홍보 일정도 모두 취소할 수밖에 없는 침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시사회만 조심스럽게 열고 있는 중이다. 

배우 현빈이 군 제대 후 스크린 복귀작으로 선택한 영화 <역린>도 22일 기자간담회 없이 시사회만 조용히 열었다. <역린>은 정조 즉위 1년이 되던 해인 1777년 7월 28일 존현각에 자객이 숨어든 '정유역변'이 일어난 24시간을 모티브로 펼쳐진다. 단순히 암살 사건이 아닌, 이를 둘러싸고 부딪치는 각 인물들의 운명 속에 정조가 진정한 군주로 발돋움하는 역사적 순간으로 그렸다.

정조는 형, 아버지처럼 친밀했던 내관 상책(정재영 분)이 어린 시절부터 살수로 키워졌고 자신을 암살하기 위한 목적으로 궁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상책을 용서하고 그에게 "궁에서 떠나 살아 있으라"고 명령하며 목숨을 살려둔다. 그리고 닥친 정유역변, 상책은 역모의 중심에 섰던 노론의 이름이 담긴 명부를 전하기 위해 정조를 찾아갔다가,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며 정조를 지킨다.

처음에는 역모의 마음을 품었으나 후에 정조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상책의 충정과 진심을 알게 된 정조는 눈물을 흘린다. 이후 정조는 궁의 역모에 불쏘시개처럼 이용되기 위해 살수로 키워지는 아이들이 사는 마을을 직접 찾아간다. 감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응축된 이 장면에서 정조의 독백이 흐른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이내 겉에 베어 나오고, 겉에 베어 나오면 이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이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이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피폐한 마을, 오직 반역과 역모를 위해 살수가 필요한 정치인들만 오가는 버림받은 그곳에 정조가 직접 찾아 가는 것이다. 천진한 아이들을 살수 괴물로 키워내는 뼈 속까지 악마인 광백(조재현 분)은 아이러니한 미소를 짓는다. '이 아이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느냐'는 듯.

"나 하나 죽인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 같소"라고 조소하는 광백을 정조는 단칼에 베어 버린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참혹한 어둠의 동굴에서 끄집어내서 데리고 나온 그는 "작은 것에 정성을 들이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소신을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진정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왕다운 면모를 보인 것이다.

참사를 부른 세월호 사고에서도,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어른들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희생됐다. <역린> 속 정조의 메시지는 대한민국 어른들에게 여러 가지 반성할 지점을 만들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