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시선>의 이장호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주자동 시네마서비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화 <시선>의 이장호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주자동 시네마서비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영화 <별들의 고향>(1974),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바보선언>(1988) 등의 작품으로 1980년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장호 감독. 그가 영화 <시선>으로 19년 만에 돌아왔다.

<시선>은 해외 선교 중 피랍된 9인의 한국인, 생사의 기로에 선 그들의 갈등과 충격의 상황을 리얼하게 그렸다. 함축적인 의미의 제목을 두고 이장호 감독은 "무엇보다 제 시선이 바뀌었다"며 "옛날에 만들었던 영화들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게 된 이후 참다운 첫 작품이니 데뷔작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제목을 '시선'으로 시작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제목들이 붙어 있었는데 다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설교 중 '시선'이라는 말을 강조했죠. 우린 예수님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대부분인데, 목사님이 십자가에 묶인 예수님을 화가가 위에서 내려다 보고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어요. 아주 독특했어요. '위에서 내려다 본 시선', 즉 '하나님이 내려다보는 시선이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오광록 보며, 생애 처음으로 배우가 존경스러웠다"

  영화<시선>의 이장호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주자동 시네마서비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시선> 이장호 감독 "내가 너무 오광록을 칭찬하니까 다른 배우들에게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오광록에게 정말 고마워요. 배우 연기를 칭찬해 보기는 처음이에요. 생애 처음으로 배우가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이정민


실제로도 독실한 기독교인인 이장호 감독은 <시선>의 남자 주인공인 엉터리 선교사 조요한 역을 맡을 배우로 기독교인을 찾았다. 하지만 캐스팅이 여의치 않았고, 기독교인이 아닌 배우 오광록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러니까 <시선>은 기독교인 반, 비 기독교인 반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처음 기독교인인 배우를 찾았던 건, 역할 때문이라기보다는 너무 적은 예산으로 만드니까 배우가 개런티나 여러 가지 부분에서 희생을 해주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었어요. 기독교인이어야 사명감을 갖고 하지 않을까 해서요. 그런데 연기적인 부분이나, 여러 가지로 적격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염두에 두었던 오광록한테 부탁을 했죠. '예산이 적다'고 했는데, 그 친구는 돈 생각 안 하고 수락했습니다."

<시선>에서 오광록은 그동안 쌓아둔 연기의 관록과 연륜을 모두 응축시켜 관객의 심장을 압도할만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해외 선교를 온 교인들의 푼돈을 뜯어 먹고 사는 날라리 선교사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순교를 하게 되는 인물이다. 꿈 속에서 환영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의 연기는 그가 실제 독실한 기독교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렬했다.

"내가 홀딱 반했죠. 내가 너무 오광록을 칭찬하니까 다른 배우들에게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오광록에게 정말 고마워요. 배우 연기를 칭찬해 보기는 처음이에요. 생애 처음으로 배우가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장호 감독은 <시선> 이후 바로 차기작 준비에 돌입했다. 19년의 공백기를 깨고 다른 시선을 가진 감독으로 다시 태어난 그는 <시선> 언론시사회 당시 앞으로의 활발한 작품 활동을 다짐한 바 있다. 차기작은 베트남 보트피플(난민)을 구한 한국인 선장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96.5>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 6차 수정에 들어갔는데, 제작비가 워낙 커서 진통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선> 개봉하고 나니까 주위에서 이제 비싼 배우 쓰라고 하는데...저는 오광록이 충분히 주연배우로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들만 자꾸 환영하고, 성공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인색한 것 같아요. 배우 스스로, 관객들에게 사랑 받는 배우가 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아직 차기작들의 캐스팅에 대해서는 고민 중입니다."

 이장호 감독,현지인 캐스팅으로 피랍사건 리얼리티 완벽 구현

영화 '시선' 한 장면 ⓒ 크로스픽쳐스


<시선>에서 목사 역할로 등장한 배우 남동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극 중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위기의 순간에 교인들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실제 목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크린에 잘 묻어나며 훌륭한 연기를 펼친 그의 얼굴은 충무로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다.

"남동하와의 인연은 독특해요. 내가 작품을 안 하고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술에 취해서 대리운전을 시켰는데,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그 친구가 저를 알아봐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뭘 하냐고 저도 물으니 '연극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가슴이 갑자기 짠했고요. '언제 프로필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바로 그 다음날로 프로필하고 자기 쓴 시나리오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다가 말만 해 놓고 인연을 맺지 못한 채 10년이 넘었어요. 그 친구가 쓴 시나리오가 늘 제 책상 위에 있어서 마음이 쓰이다가 영화를 하게 돼서 연락을 했습니다. 마침 그 친구가 <예수와 함께 한 저녁식사>라는 연극을 하고 있었어요. 기독교인이었고, 목사 역을 맡기게 됐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훌륭하게 연기를 잘 해줘서 주위에서 '실제 목사를 캐스팅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이 작품을 통해서 그도 더 많이 알려지고 잘 됐으면 좋겠어요."

"교세 확장하고 물질로 포장하는 교회, 반성해야"

 영화<시선>의 이장호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주자동 시네마서비스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 <시선> 이장호 감독 "목사는 순교하려고 했지만 교인들의 목숨 때문에 배교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반대로 배교를 해서 살아남았던 엉터리 선교사는 마지막에 목사의 목숨을 살리며 장렬하게 순교를 합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이야기를 만들어갔습니다." ⓒ 이정민


극 중 해외선교단은 알라신을 섬기는 무장단체에 피랍돼 배교를 하지 않으면 죽음을 앞에 두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날라리 선교사 오광록은 목사를 향해 "순교보다 더 거룩한 배교가 있다는 것도 생각해보십시오"라고 말하며 미소를 짓는다. 정작 본인은 순교를 선택했지만, 해외 선교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거룩한 배교를 선택하라는 것.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오광록의 이 대사에 응축돼 있다.

"이번 영화의 가장 큰 메시지죠. 목사는 순교하려고 했지만 교인들의 목숨 때문에 배교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반대로 배교를 해서 살아남았던 엉터리 선교사는 마지막에 목사의 목숨을 살리며 장렬하게 순교를 합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이야기를 만들어갔습니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라는 소설을 보면, 일본 개화기 때 포르투갈 신부가 포교를 하다가 악덕 영주에게 붙잡히죠. 신부가 포교한 일본 신자들을 밀물이 들어오는 바닷가에 거꾸로 묶어 죽음을 앞에 두게 만든 악덕 영주가 '사랑의 종교인데 네 눈 앞에서 보는 게 사랑이냐'며 배교를 강요합니다.

신부는 신자들을 살리기 위해 배교를 했고, 이 사실이 교황청에 보고가 돼 그는 파문됩니다. 신부 자격이 박탈된 거죠. 그렇지만 이 사람은 계속 카톨릭을 전파하며 전도를 합니다. 결론적으로 교황청이 그를 파문을 한 것은 인간의 시선인 것 같아요. 하나님의 시선은 그가 파문당하고 그 이후까지 보는 거죠. 이 사람이 신부나 성직자의 위치와 상관없이 계속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시선입니다.

초대 교회 때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것이었지만, 지금 우리는 평화로운 시대에 너무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일부 교회는 자꾸 교세를 확장하고 물질적인 것으로 포장하고 있는데,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조차 이슬람 지역에 선교를 간 이들을 보고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말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시각도 반성해야한다고 봅니다. 비 기독교인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자기 안에 숨겨져 있는 영혼의 문제, 영혼의 울림을 다시 발견해보면 좋을 듯 해요."

시선 이장호 오광록 남동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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