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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 복무를 대신해 산업기능요원으로 3년 남짓 일했던 회사는 소위 '강소기업'이었다. 50인 미만의 중소기업으로, 가스레인지 위에 올라가는 상판이 주요 생산품이었다. 가스레인지 상판은 법랑으로 코팅을 하는데, 녹을 방지하고 음식물이 눌러 붙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회사는 이 법랑 코팅 기술력을 바탕으로, 5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국내 가스레인지 상판과 해외 가정용 오븐의 법랑 코팅을 도맡아 왔다. 국내 유명 가스레인지 업체의 주문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았다. 해외 주문 때문에 하루 4시간의 잔업도 모자라 2주마다 12시간씩 맞교대로 공장을 가동했다.

당시 공장장은 새로 입사한 내게 산업기능요원 근무기간이 끝나면 이 회사에서 관리직으로 일해볼 것을 제안했다. 그는 국내 굴지의 가전업체 회장이 개최하는 연말 협력사 사장들과의 송년회에서 언제나 우리 회사의 사장을 곁에 앉힌다는 자랑으로 회사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중국공장에서 관리직으로 안목을 높일 기회도 보장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근무기간을 마치고 미련없이 그 회사를 떠났다.

내가 중소기업에서 일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정부의 청년 일자리 대책 때문이다. 지난 15일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등 정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청년고용 대책을 발표했다. 경기회복에 힘입어 전체 고용률이 상승세에 있는데, 유독 청년고용률만 부진한 것이 정책 마련의 배경이었다.

정부는 15~24세의 청년들의 취업이 지연되면 그만큼 "우리 사회의 경제 잠재력이 훼손된다"고 우려했다. 경제성장을 이끌어가던 약 700만 명의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도 정부에겐 큰 부담이다. 이후 그 자리를 청년층이 대체해야 하는데 중소기업의 70% 이상이 인력난으로 아우성이기 때문이었다.

청년 일자리, 진단은 정확한데...

지난해 11월 26일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에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지난해 11월 26일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에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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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진단한 청년고용률 부진의 가장 핵심적 원인은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와 실제 일자리 사이의 큰 격차였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 단계별 실태조사'로 이를 증명했다. 자료에 따르면 청년층의 희망산업은 교육서비스(19%)나 공공행정(20.4%), 보건·사회복지(14.8), 회계나 세무, 경영컨설팅 같은 전문서비스(12.5%)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통계 속 대부분의 취업자는 도소매, 숙박, 음식점업(22.5%)이나 제조업(16.8%)에 분포되어 있었다.

게다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마음은 고졸자, 대졸자 할 것 없이 대기업을 향해 있었다. 이는 별다른 통계가 없더라도 독자들 누구나가 공감할 것이다. 삼성그룹 공채에 약 10만 명 가량이 몰리고 SK나 현대자동차그룹 같은 대기업 공채 경쟁률이 100대 1을 넘기는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2013년 중소기업중앙회의 '인력실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70%가 인력난에 시달린다. 실제 사람이 필요한 것은 중소기업인데 30%의 중소기업은 1년이 넘도록 입사한 직원이 없다고 울상이었다.

이러한 일자리 미스매치(부조화)의 후과는 뻔하다. 취업자들이 현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장을 떠난다. 실제 고졸자의 경우 취업 후 5년 반 동안 평균 직장이 3.9개였고, 대졸자는 20개월 내에 첫 직장을 유지하는 비율이 약 54%에 그쳤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대졸자를 상대로 2011년에, 고졸자를 상대로 2013년에 취업진로조사를 한 결과다.

이들이 직장을 옮긴 핵심적 이유는 간단하다. 직장에 전망이 없고(24.7%), 보수가 적어서(28.1%)였다. 종합하면 우리나라 청년 취업자 둘 중 하나는 미래가 없고 월급도 적은 첫 직장에서 2년을 버티지 못했다는 것이다.   

80만원 미끼로 근속 유도? 처방이 틀렸다

"내가 일하는 공장에서 1년 동안 절반 이상의 젊은 직원들이 그만뒀어요. 그 돈을 준다고 과연 그들이 남아 있을까요?"

시화공단의 철강업체에서 용접일을 하는 정원철씨(27)는 반문했다. 정부가 이번 청년 일자리 대책으로 제시한 300만 원의 취업지원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졸 청년층 대다수가 외면하고, 입사하더라도 채 2년을 채우지 못하는 중소기업에 붙들어 두기 위해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정책은 취업지원금이었다.

현재 제조업 생산직 인턴에게 220만 원을 지원하는 취업지원금을 300만 원으로 올리고 이를 정규직 전환 이후 1개월 시점에서 60만 원, 6개월 시점에서 90만 원, 1년이 되면 150만 원으로 단계적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헛웃음이 나왔다. 전망이 없고 보수가 적어 중소기업에 남아 있지 않겠다는 이들에게 고작 80만 원의 미끼를 더 제시한 것이다.

정부의 일자리 미스매치의 해소방안은 크게 3가지였다. ▲ 내실 있는 직업교육의 진행 ▲ 청년층이 원하는 유망서비스업 육성 ▲ 중소기업에 대한 장기근속 유도다.

대부분의 언론은 교육훈련 분야에서 고졸 청년들의 직업훈련 강화에 주목했다. 스위스식 직업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고졸 청년층에 한정된 대책이다. 문제는 200만이 넘는 대다수의 대졸 청년층에 대한 대책이다.

"사장님이 직원들에 대해서는 투자도 안 하면서 매출을 30% 향상하자고 다그칩니다."

앞서 지원금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 원철씨는 중소기업주들의 태도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어차피 중소기업은 대졸 취업자들이 바라는 대기업 수준으로 임금을 맞춰주지 못한다"며 "차라리 직원들에게 투자하고 회사가 직원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동반자 의식이 생기게 하는 게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2012년 9월 27일 대구시청 앞 청년 의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청년실업과 학자금 대출, 고노동 저임금 등의 사슬을 끊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2년 9월 27일 대구시청 앞 청년 의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청년실업과 학자금 대출, 고노동 저임금 등의 사슬을 끊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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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실 없어 자재창고에서 쉬는데 무슨 미래?

원철씨는 내가 앞서 언급한 강소기업을 떠난 이유를 정확하게 지적했다. 나만 유별나다고 오해할까 덧붙이면 내가 다녔던 강소기업은 공장장 이하 5명 남짓한 관리직을 제외하면 모두가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언제나 한국인 신입사원을 모집했지만, 찾는 이는 거의 없었다. 간혹 입사하는 신입사원은 관리직의 인척이었고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했다.

현장에는 언제나 분진이 가득했고 휴게실이 없어서 점심식사 후에는 자재창고에서 포장박스를 깔고 잠을 잤다. 나는 방진마스크를 쓰고 황산을 다뤘고 나중에야 흡기밸브가 달린 방독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면허가 없는데도 지게차 운전을 했고, 잔업여부는 당일 날 칠판에 공지됐다. 당시에는 잔업이 많아 여자 만날 시간이 없어서 결혼 못한다는 푸념을 듣고 웃어넘겼다. 내가 그만둘 무렵 현장에는 간부들의 친인척과 산업기능요원을 제외하고 한국인 노동자는 없었다. 독보적 기술을 자랑하는 어느 강소기업의 씁쓸한 자화상이었다.


태그:#청년 일자리, #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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