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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자와 간병인으로 연결된 끈은 우리 부부가 싸우고도 서로 불러야하고 달려가야 하는 처지다. 이 괴로움이 손해만 될지 유익이 될지는 더 많은 시간이 지나 끝에 가서야 알까?
▲ 아무리 다투어도 피할 수 없는 관계 ? 환자와 간병인으로 연결된 끈은 우리 부부가 싸우고도 서로 불러야하고 달려가야 하는 처지다. 이 괴로움이 손해만 될지 유익이 될지는 더 많은 시간이 지나 끝에 가서야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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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다 나 닮았어! 그러니 그만 해!"
"왜 그렇게 말을 해? 그런 말이 아니잖아!"
"......"
"그만하자. 뭔 말을 못하게 해."

그렇게 말다툼은 시작하자마자 끝났다.

'힘들다, 속상하다 그러면 그냥 들어주면 되는 걸. 성질 부리고 따지고...'

속으로 다시는 내 마음을 털어놓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며 입을 닫았다. 페이스북, 블로그도 모두 '휴업'으로 돌려버리고 닷새째 침묵했다. 작은 소통만 하면서.

발단은 아주 사소했다. 자취하는 아들 방에 갔다가, 싱크대 위 냄비에 담긴 곰팡이 핀 찌개를 봤다. 수북이 쌓인 설거지 그릇, 말라붙은 커피잔,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음식쓰레기 봉지... 그걸 치워주고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화가 났다. '내가 간병으로 지쳐가는 줄도 모르고 이런 것까지 신경 쓰게 하는지...' 하면서 말이다.

그 끌탕을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퍼부었다. "누굴 닮아서 그 모양이지? 난 총각 때 10년을 자취해도 안 그랬는데!" 했더니 바로 나온 아내의 반응이었다. 하기는 내가 아이들 문제로 종종 속상할 때면 "누굴 닮았는지..."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아내는 오히려 내게 "속좁은 남자"라고 표독(?)하게 쏘아붙였다.

5일째 말을 별로 하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지내보니, 답답했지만 평소에는 못 느낀 다른 감정들을 보게 됐다. 마치 수족관 바깥에서 안의 물고기를 찬찬히 보는 기분이다. 그 느낌이 좀 묘하다. 조용해서 평안하고, 좀 외롭다는 생각에 서럽기도 하고, 왜 나는 이 나이에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하나 서글프기도 하다. 바쁘고 무엇인가에 몰두해서 지낼 때는 잘 볼 수 없었던 내 모습이 보인다. 거울 안에 있는 자화상처럼.

나는 참 가진 게 없는 남자다. 재산, 지식이 많이 부족하고, 재능이나 외모도 저만치 앞에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볼품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누구 이름을 꺼내 아는 사람이라고 자랑할 지연, 학연, '빽'도 없이 아주 낮은 바닥을 어슬렁거리며 살아왔다. 그나마 쥐꼬리만큼이라도 마련한 재산도 아내가 7년간 희귀난치병으로 아파 병원비로 쓰고 빈 몸뚱이가 된 진짜 가난뱅이 남자.

아내는 환자로 침대에서, 나는 간병인으로 보조침대에서 6년을 보냈다.
▲ 이렇게 보낸 세월이 6년 아내는 환자로 침대에서, 나는 간병인으로 보조침대에서 6년을 보냈다.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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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응? 어, 어...."
"소변... 배 아퍼."

새벽 두 시에... 참 딱한 일이다. 건강한 보통 부부라면 다투고 등 돌리고 자는 동안에는, 평소 청하던 도움을 생략하고 스스로 해결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게 안 된다. 3시간마다 영락없이 들이닥치는 몸의 신진대사가 일단 문제다. 배를 아프게 하는 큰 일 배변, 수시로 찾는 물, 내 도움 없이는 꼼짝 못하는 아내 처지에서는 자존심과 체면을 세울 수가 없다. 그 요청을 받는 나도 마찬가지다. 속 터지고 미워 못 견디겠는데 거절을 할 수 없는 이 요지경.

아무리 부부싸움을 해도 '생명 위협'까지 외면할 수는 없으니, 속도 없는 사람처럼 다 응답하고 도와주면서 냉전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더 괴로울까? 자존심도 없는 사람처럼 도움을 청하는 아내와, 큰소리도 못치고 횡 나가버리지도 못하는, 부르면 달려가서 다 들어줘야 하는 나. 둘 중 누가 더 괴로울까?'

어느 날, 아내는 밤새 나를 다섯 번이나 깨웠다. 다른 때는 글도 쓰고 이야기도 하느라 늦게 자지만, 할 일이 없어서 일찍 잤더니 2~3시간마다 나를 깨운다. 소변 처리, 자기 전 먹는 약, 심지어는 밤 12시가 넘어 배 아프다고 배변 보러 화장실 가야 한다고. 그리고도 새벽 2시, 4시 반...

졸면서 받아낸 소변을 버리러 화장실 갔는데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났다. 병원 화장실 창문이 열려서 찬 밤공기가 들어와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바람처럼 내 생각을 깨우고 빠져 나간 그 무엇이 있었다.

'나 잃어 버릴 것이 너무 많네...'

그랬다. 가진 것은 쥐뿔도 없이 가난한 내가, 잃어 버릴 게 너무 많다는 아이러니한 충격이었다.

'처지가 바뀌어 내가 누워지내며 대소변도 못 보면, 아내처럼 견딜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지. 내 성격에 힘들 거야.'

자존심과 민망함 탓에 얼마나 많은 폭언과 과격한 행동을 할지, 손바닥 보듯 빤히 예상되었다. 내 힘으로 원하는 때에 화장실 가고, 볼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돈과 집, 승진과 사업 성공, 명성 갖기를 꿈꾼다. 하지만 스스로 대소변을 볼 수 없는 상황과 돈 중 하나를 택하라면 무엇을 고를까. 돈이 100만 원 정도면? 당연히 안 하겠지. 그깟 100만 원에 그 불편을 달고 살 리가 없다. 1억 원이나 10억 원쯤이면 돈을 선택할까?

돈이 급한 사람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편과 죽을 지경을 경험해봤다면, 돈을 선택하기 힘들 거다. 괜한 상상이 아니고 그런 아내를 7년 곁에서 돌보며 지켜본 내 견해는 그렇다.

팔 두 개, 다리 두 개를 돈 많이 준다면 바꿀까? 폐, 심장, 두 눈은? 

병원 화장실 창문으로 들어온 찬바람을 맞고서야 나는 그 모두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실할까봐 두려운 대상, 잃어 버리면 안 되는 건강들을 가졌다는 엄청난 행운을 말이다. 어디든 내가 마음 먹으면 오가고, 잠자고, 먹고, 숨 쉬고, 웃고 울 수 있다는 자유로운 상태. 얼마를 주어도 돈과 바꿀 수 없는 이 엄청난 소유를 늘 바보같이 외면하고 불평만 하면서 살았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학교 기숙사에서 하루 집으로 돌아오는 주말, 주차장 화단에 앉아 기다리는 딸.
▲ 딸은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학교 기숙사에서 하루 집으로 돌아오는 주말, 주차장 화단에 앉아 기다리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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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막내 딸이 계속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사는 아이는 밤 12시 전에 방에도 못 들어간다. 딸은 강제로 독서실에서 공부하도록 운영하는 학사에 적응 못하겠다고 한다. 심지어 병원에서 '스트레스로 위염이 생겼다'는 기숙사 퇴사용 소견서까지 발급 받았다. 학기 중에는 자진 퇴사가 안 된다는 학사 규칙 탓에 딸의 하소연만 늘었다.

성적 상위 순으로 입소가 가능한 기숙사. 400명 중 10등 안에 들어가는 아이는 "일부러 성적을 내리겠다. 시험을 엉망으로 보겠다" "내가 옥상에서 뛰어내려야 내 말을 들어줄 거야?"라는 끔찍한 말도 한다. 한숨만 나온다. 딸을 돌볼 수 없으니 그냥 기숙사에 있어 주면 좋으련만.

종종 아이들 탓에 괴롭고 속상하지만, 그 아이들도 내게는 잃어서는 안 되는 엄청난 대상이다. 가족이 없어 외롭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내게 기쁨과 위로를 준 아이들이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가난하고, 사업이나 승진, 각종 경쟁에서 밀린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정말 소중한 것들뿐이다. 이제까지 잃은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에서 이런 경우를 본다. 지갑을 잃은 친구가 씩씩거리며 홧김에 술 마시고 신경질을 내다가 더 큰 손해를 보는 모습, 또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돈 잃고 친구까지 잃은 경우, 사업 실패로 파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 모두 후유증으로 1차 상실보다 더 큰 2차 상실을 겪는 사례다.

 어떤 경우가 우리를 때리고 지나가도 아직은 웃는다.
▲ 가장 소중한 것들이 남은 우리 두 사람 어떤 경우가 우리를 때리고 지나가도 아직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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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적 상실이, 2차 상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첫 번째는 본인이, 그 다음은 곁의 가족과 이웃 친구들이, 그리고 국가가 복지라는 이름으로 시민을 보살펴야 한다.

힘냈으면 좋겠다. 괴로움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모든 분들, 자신에게 남은 게 진짜 더 소중한 것일 수 있다고 나처럼 문득 실감했으면 좋겠다. 이 말을 전해 드리고 싶다. 내 간병일기를 묶은 책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143페이지의 한 부분.

"달리는 중에 넘어졌다고 좌절하지 말 일이다. 우리의 결승점은 순서를 매기는 곳도 아니고 시간을 재는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모두가 한 번은 반드시 통과를 해야하는 곳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20114년 4월 중순의 간병일기입니다.



태그:#희귀난치병, #간병일기,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가족,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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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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