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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가방을 받는데 순간, 깜짝 놀랐다.

'이 녀석 가방에 무슨 돌덩이라도 넣고 온 거야? 가방이 왜 이리 무거워?'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는 가방은 내게 맡겨 놓고 학교 놀이터로 뛰어가 버렸다.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서 열어 보았다. 가방 안에 새 교과서가 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4월부터 쓸 교과서를 오늘 나눠준다고 했다. 세어 보니 모두 일곱 권이다.

교과서 4권, 공책 5권, 종합장 파일
▲ 가방 속 책과 공책 교과서 4권, 공책 5권, 종합장 파일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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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장엔 "교과서 이름 써서 가져오기"라 쓰여 있다. 집에 오는 길 아이 가방은 내가 메고 왔다. 아니, 등에 지고 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아이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엄마 노릇은 안 하려고 했다.

솔직히 다 큰 엄마들이 분홍색 리본 달린 가방이나 남자아이들의 캐릭터 가방을 메고 다니는 모습이 꼴불견이다 싶었다. 그런데 나도 아이 가방을 대신 들어주고 있다. 가방이 꽤 무거웠다. 다음날 등굣길에 아이더러 가방을 메고 가라고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수학1-1, 수학 익힘책 1-1, 국어 1-가 세 권의 무게가 1.72kg 이다.
▲ 교과서 무게 수학1-1, 수학 익힘책 1-1, 국어 1-가 세 권의 무게가 1.72kg 이다.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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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새 교과서 일곱 권은 종이가방에 넣어서 내가 들고 나머지 준비물은 아이 가방에 넣어서 아이가 메고 가게 하는 거였다. 그날도 하굣길에 아이는 네 권의 교과서를 또 가져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이 책들 모두가 1학년 1학기 때 배울 교과서라는 것이다. 2학기 때 배울 교과서는 나중에 따로 나눠준단다.

한 학기에 배우는 교과서가 뭐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3월에 배우는 교과서까지 합치면 모두 12권이다. 아이들이 배우는 양이 많거나 교과서에 배우지 않는 내용을 너무 많이 담아 낭비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 <봄> 과 공책 5권 파일, 종합장, 학급 문고, 파일 의 무게는 1.47kg 이다.
▲ 교과서 <봄> 과 공책들 무게 교과서 <봄> 과 공책 5권 파일, 종합장, 학급 문고, 파일 의 무게는 1.47kg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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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거운 교과서는 '수학'... 아이들에겐 너무 무겁다

그러던 어느 날 알림장을 보기 위해 가방을 들었는데 가방이 너무 무거웠다. 새 교과서가 일곱 권이 들은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무겁나 싶어 가방 안을 보았다. 교과서가 4권, 공책이 6권 그리고 학급도서 한 권, 파일, 필통이 들어 있었다. 아이 가방이 왜 이리 무거운 건지 알기 위해서 나는 교과서 등의 무게를 재어보았다.

가장 무게가 나가는 교과서를 살펴보았다. <국어 1-가> 교과서는 1학년 1학기 때 공부하는 4권의 국어 교과서 중 한권이다. 무게를 재어 보니 460g이고 본문은 106쪽까지였다. 교과서의 두께 중에서 본문이 차지하는 부분이 반에 불과하다. 그리고 107쪽부터는 '붙임'이라는 이름으로 본문에 수업에 도움이 되는 스티커나 카드들이다. 붙임 자료가 페이지 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 한글 자모음의 카드라서 두꺼운 종이다. 그런데 한글 자음카드는 똑같은 색만 달리해서 두 세트가 있었다. 한 세트만 넣어도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두 번째 교과서인 <수학 1-1>은 무게가 652g이고 본문은 180쪽까지이다. 책 두께의 3분의 2가 본문이다. 뒤편에는 '준비물꾸러미'라는 제목으로 스티커, 주사위 만들기, 카드 등이 첨부되어 있다.

세 번째 교과서인 <수학 익힘책 1-1>은 책의 무게가 608g이고 본문은 140쪽에 불과하다. 본문은 책 두께의 반 정도이고 나머지 뒤편에는 '정답 및 풀이'라는 제목으로 본문을 1/2 그대로 축소한 내용에 답을 표시한 것이 실려있다. 부모들이 혹시 모를까 봐 '정답 및 풀이'를 그대로 축소해서 넣어 준거 같은데 정말 쉬운 내용이다.

그리고 이렇게 1/2 축소 안 하고 번호하고 답만 쭉 나열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내용이다. 교과서에서 '정답 및 풀이'만 빼도 페이지 수가 70쪽이 빠지고 두께도 1/4 정도는 줄일 수 있다. '정답 및 풀이'뒤에는 스티커, 카드, 주사위 만들기가 또 붙어 있다.

개별 교과서를 하나씩 보자면 교과서는 점점 더 좋아졌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무겁고 두꺼운 수학 교과서, 국어 교과서를 모두 다 들고 다녀야 하는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빠진 것 같다. 세 권의 책 무게만 해도 1.7kg이 넘는다.

거기다가 비교적 가벼운 교과서 <봄> 그리고 공책 (알림장, 국어 8칸, 받아쓰기, 수학, 무제) 5권, 종합장, 파일, 학급문고를 합친 무게는 1469g이다. 마지막으로 필통, 책가방, 신주머니 무게의 합은 1165g이다. 세 무게를 합치면 오늘 우리 아이가 들고 간 책가방과 신주머니의 총합이 나온다. 4.25kg이다.

물론 교과서를 매일 이렇게 다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숙제가 없는 날은 두고 와도 된다. 그러나 숙제가 있거나 엄마 사인이라도 받아야 하는 날은 이렇게 들고 온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이 숙제를 무언가를 살펴보면서 책가방을 싸 가지고 하교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다른 준비물까지 있는 날이나 방과 후 수업이라도 있는 날은 이보다 더 무거워진다.

나는 아이에게 "숙제 있는 교과서는 빼고 다른 교과서는 교실에 좀 두고 와. 무겁지 않아?" 하고 말한다. 그러나 잔소리의 효과 딱 하루만 갈 뿐 하루만 지나면 그 무거운 가방을 또 낑낑 메고 집에 온다.

'4.25kg? 뭐 그 정도면 좀 무겁기는 하지만 들고 다닐만한 무게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느끼는 4.25kg은 어른들이 느끼는 무게와는 다르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평균 몸무게가 대략 20kg 정도다. 몸무게 20kg의 아이들에게 4.25kg는 몸무게 50kg인 성인에게는 4.25kg의 2.5배인 10.62kg가 된다. 쌀 10kg 등에 지고 일터에 간다고 생각을 해 보라 기운 빠져서 일하겠나?

교과서 집필진들은 분명 아이들에게 좋은 교과서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무척 노력하였을 것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재미있는 보조 활동 자료를 싣다 보니 교과서는 점점 더 두꺼워지고 무거워졌을 거다. 점점 교과서가 무겁고 두꺼워지니까 교과서를 여러 권으로 나누었던 거 같다. 1학년 1학기 때 배우는 국어 교과서가 4권이나 된 걸 보아도 그렇고. 마찬가지로 수학교과서도 활동자료, 해설 다 추가하니 책이 너무 두꺼워졌다. 좋은 교과서 만들려고 애써주신 필자들 다 고맙다.

하지만 그 두꺼워진 무거워진 교과서를 들고 공부를 하여야 하는 학생은 아직 여덟 살 아이들이다. 그리고 몇몇은 아직 일곱 살인 아이들이다. 몸무게 20kg도 채 안 되는 1학년 교실 맨 앞에 앉은 제일 몸집 작은 아이도 예외없이 이 책으로 공부하고 이 책이 든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야 한다. 아무리 좋은 활동자료가 실린 교과서라도 그 교과서의 무게는 아이들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는 안 된다.

교육부는 교과서를 만들 때 그 나이 학생들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적정한 가방 무게를 정하고 그에 맞추어서 과목별로 교과서의 무게에 대한 기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교과서가 무분별하게 두꺼워지고 무거워지는 것을 막았으면 한다.


태그:#교과서,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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