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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시대다. 거짓과 속임수가 난무한다. 과거 어떤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이 그렇다. 국가기관이 나서 선거에 개입하고 간첩을 조작한다. 근거가 불분명한 사건은 과학적 논쟁의 결과가 아니라 정치적 의도에 따라 규정된다. 이견은 허용되지 않는다. 토론은 어림없다. 가히 암흑시대다.

이런 시대에 대처하는 자세는 크게 두 가지다.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든가, 아니면 거스르든가. 시대에 순응하는 길은 안위를 보장한다. '찍히면 죽는다'는 공포에 잠시만 머리를 조아리면, 잠시만 자존심을 접어 두면, 잠시만 양심에 귀 닫으면 많은 것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시대를 거스르면, 공포에 저항하면, 자존심과 양심을 지키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고난의 길을 감수하고 때로는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부당한 시대를 거스르는 것은 단 하나만 빼고 모든 것을 빼앗는다. 남기는 것은 역사다. 기록이다. 여전히 암흑시대를 살고 있는 후세들이 다시 용감히 시대를 거스를 결심을 세워줄 가르침이다.

여기 세 친구가 있다

여기 시대를 거스른 세 친구가 있다. 윤동주, 장준하, 문익환. 인천민주평화인권센터와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은 "세 친구 꿈을 노래하다"는 주제로 오는 4월 17일(목) 7시 30분 부평아트센터 달누리 홀에서 이들을 위한 헌정 노래&토크 콘서트를 개최한다. 4월 혁명 54주년을 맞아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그대로 스며있는 삶을 살아온 세 친구를 통해 그들이 남긴 역사와 기록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문익환, 윤동주, 장준하는 비슷한 나이에 모두 숭실중학교에 다녔다. 문익환과 윤동주는 죽마고우였으며, 문익환과 장준하 역시 친구였다. 윤동주와 장준하 간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지만 친분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왼쪽부터 청년시절의 문익환, 윤동주, 장준하 문익환, 윤동주, 장준하는 비슷한 나이에 모두 숭실중학교에 다녔다. 문익환과 윤동주는 죽마고우였으며, 문익환과 장준하 역시 친구였다. 윤동주와 장준하 간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지만 친분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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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이 세 명일까? 이들은 각각 너무나도 뚜렷한 역사의 족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알려진 것보다 공통점이 많다. 먼저 이들은 동년배다. 윤동주는 세계 한쪽이 붉게 물들었던 1917년의 끝자락인 12월 30일에 태어났고, 윤동주의 명동소학교 시절부터 죽마고우였던 문익환은 정확히 6개월 뒤인 1918년 6월 1일에 태어났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1918년 8월 27일에는 장준하가 태어난다.

셋은 모두 1930년대 초중반 숭실중학교에 다녔다는 공통점도 있다. 숭실중학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폐교가 될 정도로 반일 민족의식이 강한 학교였다. 셋은 모두 자퇴를 결심하고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났다. 이후 행로는 달랐지만 모두 한결같이 굴종과 침묵을 강요당한 시대를 거슬렀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대가는 가혹했다. 윤동주는 불과 29세의 나이에 해방을 6개월 남겨놓고 생체실험의 의혹 속에 옥사했고, 장준하는 학병에 끌려갔다 탈출해 독립군이 되었지만 1975년 8월 약사봉 등산에서 의문사 한다. 윤동주와 장준하를 연결해주는 또 하나의 친구였던 문익환은 1989년 반세기 동안 견고했던 분단선을 넘은 후 생의 마지막을 모두 통일운동에 바쳤다. 그러나 그 역시 1994년 1월 사망 후 통일운동의 분열이라는 한 맺힌 상황을 하늘에서 지켜봐야 했다.

생전에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지 못했던 세 친구. 시대에 순응했던 이들의 시각에서 이들은 '패배자'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순종을 택한 시대의 승리자 대신 저항을 택한 패배자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꿈이 실현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실현되어야 할 꿈을 그들이 미리 꾸었기 때문이다. 당대에는 패배했을지언정, 역사에서는 승리했기 때문이다. 

세 친구의 꿈은 여전히 우리의 꿈

이번 헌정 노래&토크를 준비하고 있는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 윤인중 집행위원장은 윤동주, 장준하, 문익환을 '세 친구'로 함께 묶어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 "기억해야할 사람들, 잊어서는 안 되는 세 분이 살아온 길을 통해 '아름다운 친구'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세 친구의 모습을 통해 "역사 앞에 의연했던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암흑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청년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왜 그들의 삶이 희망의 메시지일까? 아마도 그들이 치열하게 살았던 시대와 공간은 지금과 다르지만, 그들을 짓눌렀던 부당함과 비정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래한다. 그래서 이야기한다. 시대에 순종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맞섰던 세 친구. 맞서지 않고서는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것 같은 지금의 우리. 그래서 세 친구의 꿈은 여전히 우리의 꿈이다. 

윤동주, 장준하, 문익환 헌정 노래&토크 콘서트가 4월 17일(목) 오후 7시 30분 부평아트센터 달누리 극장에서 진행된다. 관람비는 전액 무료다.
▲ 세 친구, 꿈을 노래하다 윤동주, 장준하, 문익환 헌정 노래&토크 콘서트가 4월 17일(목) 오후 7시 30분 부평아트센터 달누리 극장에서 진행된다. 관람비는 전액 무료다.
ⓒ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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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콘서트는 인디밴드 소리내를 시작으로 김민웅 교수와 가수 손병휘가 20대에 고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세 친구의 이야기를 나누며, 가수 김현성, 손병휘, 신재창이 윤동주와 문익환의 시를 노래로 엮고, 장준하 선생의 애창곡을 부른다. 마지막으로 유가족인 장호권, 문성근, 윤인석이 특별 출현하고 인디밴드 레드로우가 공연한다.

이번 공연은 모두 무료로, 선착순 마감이다. 예약 문의는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02-362-0817), 인천민주평화인권센터(032-862-5353).


태그:#윤동주, #장준하, #문익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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