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 형사 억관 역의 배우 이성민이 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극단 차이무 출신의 대표 배우인 송강호는 이제 많은 후배들이 가장 닮고 싶은 대한민국 대표 배우가 됐다. 그런 송강호가 챙기는 이들은 자신이 몸담았던 차이무 소속 후배들이다. 그 중에서도 요즘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배우 이성민에게는 수년 전부터 많은 관심과 애정이 있었다고. 이성민의 입을 통해 선배 송강호의 살뜰한 후배 사랑을 들을 수 있었다.
송강호와 이성민이 함께 출연한 영화만 다섯 작품. 이성민이 단역으로 출연했던 영화 <밀양><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그리고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 <작은 연못><하울링><변호인>이 있다. 물론 주연배우인 송강호는 많이들 기억하겠지만 이성민은 쉽게 떠오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송강호 형님은 차이무 선배이기도 한데 바쁜 와중에도 늘 연극을 보러 오세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강호 형님을 잘 모르는데, 지방에서 촬영하다가 술자리에서 아는 척을 하시고 그래요. 형은 제 공연을 보고 친근감이 있어서 아는 척을 해주시는 건데, 대한민국 최고 배우시니까 사실 전 굉장히 어렵죠. <밀양>을 하면서 형하고 처음 연기를 같이 하게 됐는데, 굉장히 따뜻하게 대해주셨어요. 밥 먹을 때도 같이 먹자고 하고."끈질겼던 송강호의 추천..."무명 배우에겐 너무 감사한 일"
송강호는 <밀양> 이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김지운 감독에게 이성민을 추천했다. 대한민국 대표 배우 송강호의 추천의 말 한마디는 당시 이름을 크게 알리지 못했던 이성민에게는 그야말로 '빛'과 같았다. 이후 송강호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도 이성민을 추천했다.
"<밀양> 끝나고 형님이 <놈놈놈> 하시는데 그 영화에도 소개시켜주셨어요. 김지운 감독님과의 미팅에 혼자 갔는데. '강호씨랑 친해요?'라고 묻더라고요. 솔직하게 '아뇨. 그렇게 친하지는 않은데'라고 답했어요. 그리고 나서 영화에 참여하게 됐는데, 풀샷으로 한 컷 나왔습니다. 강호 형님이랑 같이 찍는 장면이 있는데, 강호 형님은 그때도 계속 옆에 와서 앉아 있으라고 하고 정말 잘 챙겨주셨어요.내가 감독에게 선택받고 간 게 아니잖아요. 솔직히 제 성격상 누가 소개시켜 준다고 덥석 가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근데 강호 형님이 가라니까 가야죠. <박쥐> 오디션을 보는데, 그 자리도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청탁 받아서 온 것 같고 싫더라고요. 그 자리에서도 '강호씨랑 친하냐'고 물었는데, '친하지 않다'고 했죠. 오디션에서는 떨어졌고요. 나중에 우연히 강호 형님을 만났는데, '<박쥐> 오디션 갔다 왔냐?'고 물으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안 친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하니, 강호 형님이 '왜?!'라고 놀라셨어요. 그래서 제가 '솔직히 친한 건 아니잖아요'(웃음)라고 했죠. 형 마음은 알지만, 대배우인 강호 형님이랑 정말 세월이 많이 쌓여서 친한 사이가 된 건 아니니까요."
▲ "<방황하는 칼날> VIP 시사회 때 내 옆에 이선균, 그 옆에 송강호 형님이 계셨어요. 셋이 나란히 영화를 보는데 전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겠더라고요. 영화 다 보시고 강호 형님이 '영화는 좋은데 어두워서 흥행은 모르겠다'고 문자 보내주셨어요." ⓒ 이정민
송강호 역시 끈질겼다. 이후에는 이나영과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 <하울링>에도 이성민을 추천했다. 그때는 송강호에게 "형, 이제 사람들이 형이랑 친하냐고 하면 친하다고 답해요"라고 했다고.
"일단 강호 형님은 본인이 출연하는 영화에 저를 추천해주세요. 사실 저 같은 무명의 배우에게는 정말 엄청나게 감사한 일이죠. <밀양>에서는 잠깐 나와서 강호 형님의 연기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었는데, <하울링>에서는 가까이서 오래 지켜보게 됐어요. 보면서 '아,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굉장한 자극이었어요. 이번에 <방황하는 칼날>에서 정재영에게도 엄청 자극을 받았고요. '다 주인공하는 이유가 있구나' 알았습니다."송강호는 후배들 사이에서 '인검달'로 통한다. 후배들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정보를 꿰고 있는 달인이라 불리는 것. 이성민은 "강호 형은 같은 소속사 배우들의 스케줄을 다 알고 있다"며 "가끔 TV에 나오면 문자도 보내주신다"고 귀띔했다. 이어 "며칠 전에는 <관능의 법칙> 다운 받아 보셨다고 문자를 보내셨더라"라며 "뒤에 든든한 형이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고, 엄청난 선배이기 때문에 긴장도 된다"고 덧붙였다.
"사실 제가 영화 촬영 끝나면 여관에서 잠을 잘 못 자서 집에 올라와서 자는 편이라서, 강호 형님과 술자리를 함께 못하는 죄송함이 있었어요. 근데 <변호인> 때는 형이랑 좀 더 가까워져서 함께 술자리를 즐기기도 했죠. 사실 제가 사람을 쉽게 잘 못 사귀거든요. '형, 형' 그러면서 살갑게 구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냥 씩 웃고 말아서. 형님도 막 발랄한 분은 아니고요." "일 년에 한 번씩은 연극 핑계로 선후배 얼굴 본다"
이성민은 이번 <방황하는 칼날>을 통해 얻은 후배 정재영에 대해 "저랑 비슷한 점이 제일 많은 후배로, 취미 없고 집에 있기 좋아하고 뭐든 빨리 싫증을 내서 유일하게 하고 있는 게 연기인 점이 똑같다"며 "차이가 있다면, 재영이는 저보다 좀 더 밝고, 술을 못하는 저와 달리 잘 마시고, 저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데, 재영이는 여럿이 같이 있는 걸 좋아한다"고 답했다.
"정재영은 심지가 곧고 우직한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칠렐레팔렐레' 팔랑팔랑 하고 다니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에요. 저 같은 사람은 재영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너무 편하죠. 적극적으로 '형 같이 점심 먹자'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먼저 다가와주니까 마음이 편해요. 저는 사회성이 없는 편이라서... 재영이 같은 사람이 좋아요."
▲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온 것에 대해서. 아무리 스스로 자신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회가 오지 않으면 배우는 표현하지 못 하니까요." ⓒ 이정민
이성민은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의 개봉을 앞두고 있고, 영화 <빅매치>의 촬영에도 한창이다. 또한, 하반기에는 기대작인 tvN 드라마 <미생>의 촬영에도 돌입한다. 스케줄이 꽉 차있음에도, 그는 극단 차이무의 연극 <마르고 닳도록> 공연에도 나선다. 이성민은 "일 년에 한 번씩은 연극을 한다"며 "연극한다는 핑계로 고향집에 가서 식구들을 만나는 기분으로 선배님들과 후배들을 다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단역으로 출연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이성민을 알아보고 좋아해주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의 연기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있는 것. <방황하는 칼날>에서도 한층 단단해진 이성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성민은 정재영과 나란히 주연을 맡아 영화의 균형을 잡으며 극을 탄탄하게 이끌어나간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온 것에 대해서. 아무리 스스로 자신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회가 오지 않으면 배우는 표현하지 못 하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뭐랄까, 오히려 더 많은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사실 어떤 위치에 선 것에 대한 의무감에 대해 '내가 뭘, 내가 왜 그래야해' 부정했는데, 이제 정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을 하려고요. 좀 더 책임감 있는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는 게 제가 할 일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