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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의류 등 섬유봉제산업은 캄보디아 전체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주력산업이다. 해마다 거듭되는 봉제공장 근로자들의 집단 실신사고는 부실한 영양상태와 근로환경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 캄보디아 봉제공장의 모습 신발 의류 등 섬유봉제산업은 캄보디아 전체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주력산업이다. 해마다 거듭되는 봉제공장 근로자들의 집단 실신사고는 부실한 영양상태와 근로환경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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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명.

캄보디아 봉제공장서 4월 첫 주 한 주 동안 작업 중 실신한 노동자의 숫자다. 이번 사고는 유명 스포츠브랜드인 아디다스와 푸마, 나이키를 생산하는 현지 하청업체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엔 1000명 이상이, 2012년엔 푸마 공장 근로자 30명을 포함해 24개 공장에서 총 1686명이, 지난해엔 15개 공장에서 823명이 집단으로 실신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도 지난 10일, 지난해 아디다스와 폴로랄프로렌 등 2개 유명브랜드 하청회사에서만 180명이 실신했다고 캄보디아 NGO연구보고서 'Shop 'til they drop'을 인용해 보도했다. 캄보디아 내 유명브랜드 하청공장 노동자들의 집단 실신 사태는 영양부족과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뒷받침하듯 앞서 언급된 NGO보고서에는 캄보디아 공장 노동자 중 1/3이 넘는 인원이 하루 1600칼로리(한국인 성인남녀 하루 권장 칼로리는 2200~2600kcal) 이하의 열량을 섭취한다고 밝혔다. 또 1/3이 넘는 노동자들이 하루 식비로 평균 1.5달러(한화 약 1560원) 정도를 쓴다고 덧붙였다.

캄보디아 전체 수출의 80% 차지하는 봉제신발산업

몸이 아파도 곧바로 병원에 가서 진료나 치료를 받는 근로자는 그리 많지 않다. 아픈 부위에 소염효과뿐인 파스를 붙이는 경우가 흔하다. 병원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 이마에 파스를 붙인 봉제공장 여성근로자의 모습 몸이 아파도 곧바로 병원에 가서 진료나 치료를 받는 근로자는 그리 많지 않다. 아픈 부위에 소염효과뿐인 파스를 붙이는 경우가 흔하다. 병원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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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신발산업은 캄보디아 전체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주력산업이다. 연간수출규모는 50억 달러(한화 약 5조 2000억 원)에 달하며, 현재 관련 종사자 수만도 65만 명에 육박한다. 봉제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지난해 삼 랭시가 이끄는 통합야당(CNRP)과 공조해 임금인상 시위를 벌였다.

이에 따라 이들은 지난 2월부터 정부가 당초 책정해 발표한 95달러보다 5달러 추가 인상된 100달러를 최저임금으로 받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비하면 3배 이상 임금이 오른 것이지만, 그동안의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개인의 소득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캄보디아는 10년째 7%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 때문에 노동자들의 주머니에 매월 들어오는 소득은 갈수록 줄어드는 형편이다. 집세나 전기세 등 고정 생활비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가장 먼저 식비를 줄이고 결국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상황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캄보디아 전역에 있는 900여 개 섬유봉제관련 회사 중 점심을 제공하거나 점심값을 추가로 지급하는 경우는 극히 적다. 간혹 점심값을 지급하는 곳도 있는데, 한 달에 3~5달러에 불과하다. 대부분 공장들이 야근을 할 경우에만 야간식대 명목으로 3000리엘(한화 약 800원) 정도를 추가로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한국인 봉제회사 대표는 지난 3일 기자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5~60여 개에 이르는 한국계 봉제기업 중 점심값을 별도로 주는 기업은 3~4개 안팎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전체 봉제기업 중 약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계 회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대다수 공장 노동자들은 오전 7시 이전에 출근한다. 공장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여성들도 3~4km 정도는 걸어서 출퇴근한다. 시 외곽에 사는 장거리 출퇴근자들은 주로 회사에서 제공하는 10톤짜리 트럭을 이용한다. 출퇴근용 트럭을 타기 위해서는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아침을 거르는 경우도 많다. 지각을 하면 바로 월급이 깎이거나, 누적횟수가 많으면 해고를 당하기 때문에 어설픈 늦잠은 꿈도 꿀 수 없다. 출퇴근 트럭은 콩나물시루처럼 비좁아, 대부분 서서 다닐 수밖에 없다. 작은 트럭 뒤칸에 무려 50~60명이 넘게 탈 때도 있다.

대다수 봉제공장 안에는 대형 환기시설이 설치돼 있다. 적정온도와 습도를 맞춰야 원단 품질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기설비에서 나오는 기계음 소리는 오래 듣고 있으면 귀가 멍멍해질 정도다. 밀폐된 공간이라 공기도 탁하고 수백여 개 형광등에서 나오는 열 때문에 실내도 후텁지근하다. 원단에서 나오는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가 많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작업 중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노동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점심값 아끼기 위해 동료와 점심 나눠먹는다"

5명이 목숨을 잃고 40여명이 부상을 입은 지난 1월 초 프놈펜 외곽 웽스렝 지역 봉제근로자 시위유혈 진압 당시, 시위 중 부상당한 환자치료를 거부해 시위대로부터 돌투석 공격과 의료품을 약탈당한 한 개인병원의 모습.
▲ 지난 1월 초 봉제근로자 시위대에 의해 파손된 현지 개인병원의 모습 5명이 목숨을 잃고 40여명이 부상을 입은 지난 1월 초 프놈펜 외곽 웽스렝 지역 봉제근로자 시위유혈 진압 당시, 시위 중 부상당한 환자치료를 거부해 시위대로부터 돌투석 공격과 의료품을 약탈당한 한 개인병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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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한 봉제공장을 찾았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노동자들이 공장 밖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점심 도시락을 파는 노점상들은 오전 11시 30분을 전후해 공장 앞에 음식가판대를 늘어놓는다. 노동자들이 구입하는 점심식사는 대부분 밥과 약간의 고기, 야채를 기름에 볶아 만든 도시락이다. 가격은 대략 1500~2000리엘로, 우리 돈으로 350원~550원 정도다. 월급 100달러 중 식비로만 한 달 최소 20~30달러 정도 들어가는 셈이니 이들에겐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이다. 여성 노동자들 중엔 동료와 도시락을 반씩 나눠 먹는 이들도 있다.

지난 1월 초 유혈사태가 발생했던 웽스렝 지역 카나디아공단 내 중국계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삐셋(23)씨는 기자와 만나 "매달 집세와 전기세가 부담스럽다"며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동료들과 점심을 나눠먹는다"라고 말했다.

삐셋씨처럼 시골에서 올라와 봉제 공장에 취직해서 일하는 여성들은 캄보디아 전역에 50만 명에 이른다. 기숙사 시설을 갖춘 공장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친척의 집에 머물거나 공장 주변에 작은 쪽방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방이라도 월세가 평균 20~35달러 수준이라 혼자 방을 쓰는 경우는 드물고, 3~4평 남짓한 작은 방을 4~5명이 함께 쓰는 경우가 많다.

전기세와 물세, 가스비도 별도로 내야 하기 때문에 최소 30~40달러를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한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과 식비를 빼고 열심히 아껴도 한 달 50~60달러 정도만 손에 쥘 수 있다. 하지만 시골에 계신 부모 형제에게 그 돈마저 송금하고 나면 그야말로 빈손이다. 봉제공장 근로자 대부분이 삐셋과 비슷한 처지다.

몸이라도 아프면 큰일이다. 병원비가 비싸 대부분의 공장근로자들은 병원진료는 엄두도 못 낸다. 가벼운 두통 정도는 이마에 파스를 붙이고, 한국에 '호랑이 연고'로 알려진 약을 아픈 부위에 바르거나, 온몸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긁는 방식의 민간요법에 의지한다.

정 아파서 몸 견디겠다 싶으면, 공장 주변 약국을 찾는다. 하지만 약국에서 파는 약들은 대부분 정체를 알 수 없는 성분들로 이뤄져 있다. 가짜 약사면허를 소지한 무허가약국도 많다. 지난 달 경찰단속으로 성분을 알 수 없는 가짜 약과 일반 시중에서는 구입이 제한되어 있는 불법거래 약품들이 무더기로 적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의 단속에도 여전히 공장 주변 약국에서는 이런 의약품들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잘못된 처방이나 오남용으로 자칫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런 걸 염려하는 노동자들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두통이나 빈혈 등에 즉각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화학성분 냄새 때문에 질식해 실신하는 경우도 흔해

봉제근로자들은 하루가 멀게 치솟는 물가 때문에 지금의 최저 임금 100달러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항변한다. 집세 등 고정지출비를 제외하면 식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야당집회에 참석한 한 근로자는 울먹이며 말했다.
▲ 최저 임금 160불을 요구하는 봉제근로자 여성의 눈물 봉제근로자들은 하루가 멀게 치솟는 물가 때문에 지금의 최저 임금 100달러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항변한다. 집세 등 고정지출비를 제외하면 식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야당집회에 참석한 한 근로자는 울먹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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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노동자 개인의 관리 외에도 '열악한 근로환경'이 집단실신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 의류봉제생산자협회(GMAC) 측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앞서 국제사회와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노동자 처우와 근로환경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자 GMAC는 지난달 7일 <캄보디아 데일리> 등 현지 주요 신문을 통해 "(대부분의 캄보디아 봉제공장들이) 세계노동기구(ILO)가 요구하는 근로조건을 100% 준수하고 있으며, 나이키나 아디다스, 갭과 같은 원청회사들이 (하청업체들의) 근로환경과 인권문제를 중점적으로 감독감시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외부언론보도는 왜곡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3월 중순 방송된 친야성향의 인터넷매체 <크메라이제이션>에 따르면, 현지 인권단체들은 "GMAC이 주장하는 기준은 단지 최저 기준을 넘기는 수준일 뿐, 근로자들의 근무환경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한다. 단적인 예로, 신발공장 등 접착제 성분을 많이 쓰는 곳의 경우 고약한 화학성분 냄새 때문에 근로자들이 질식해 실신하는 경우도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월 초엔 일본계 한 신발공장에서 26명이 구토와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기절하기도 했다.

원래 근무 시간은 5시까지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은 야근수당 등을 받기 위해 야근을 자처한다. 오후 8시가 되자 공장 문이 열렸다. 추가 야근업무까지 마친 1000여 명의 공장 노동자들이 귀가를 서둘렀다. 공장 앞 대로변에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밤참이나 야채 등 반찬거리를 파는 노점상이 자리를 잡았다.

지난 1월 초, 시위자 5명이 죽고 40여 명이 부상을 당한 캄보디아 군경 유혈진압사태 때 교도소에 수감된 시위 가담자와 사회운동가 수만 21명에 달한다. 또 국제사회와 인권단체들의 비난에도 노조를 상대로 한 캄보디아 의료봉제생산자협회(GMAC)의 손해배상소송 역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캄보디아 데일리>에 따르면, GMAC 전체회원사 중 직접 피해를 입은 95개 회사의 손해배상청구금액이 7500만 달러인 것으로 알려졌다.

17일부터 최저임금 160달러 요구하며 시위

10년째 7%의 고도성장에 힘입어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스카이라인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지만, 최저임금 100달러 수준의 저소득 근로자들의 삶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 수도 프놈펜의 고층건물들 10년째 7%의 고도성장에 힘입어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스카이라인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지만, 최저임금 100달러 수준의 저소득 근로자들의 삶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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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18개에 이르는 전국노조단체들은 캄보디아 최대 명절인 '촐쯔남'이 끝나는 17일부터 최저임금 160달러를 요구하며 일주일간 '출근거부 시위'에 들어간 상황이다.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에 대해 한 기업 관계자는 지난 4일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원청업체인 나이키나 갭 같은 대형브랜드들이 보다 비싼 값에 제품을 구매해 가지 않는 이상, 지금의 최저 임금 100달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한의 마지노선이다"라며 "이 이상 임금이 올라갈 경우, 채산성을 맞출 수 없어 공장을 다른 나라로 옮길 수밖에 없다"고 거듭 항변한다.

완 소우 이엥(Van Sou Ieng) 캄보디아 의류봉제생산자협회 GMAC 회장도 지난 2월 20일 영자신문 <프놈펜 헤럴드>와 한 인터뷰에서 "공장 고용주들은 160달러 요구를 들어줄 여력이 없으며, 만약 그 요구를 수용할 경우 80%의 공장들은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일부 공장들은 다른 나라로 이전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부 공장주들 입에서는 휴일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많고, 숙련도가 떨어져 1인당 생산성도 많이 떨어진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편에선 각종 수당과 보조금을 포함하면, 실제 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급여는 이미 월 평균 150달러 수준이라며 억울해한다.

하지만 이 나라 노동자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지난 달 말 현장 취재 때 만난, 프놈펜 시내 한국계 봉제공장에 다니는 25살 청년 피은 나릿씨는 "최저임금 안인 160달러도 겨우 숨통이 트이는 정도"라며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에게는 (지금의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된 상황이) 이윤의 많고 적음의 문제이지만, 우리에게는 생존의 문제예요."


태그:#캄보디아, #박정연, #캄보디아 최저임금, #근로자 집단기절사태, #CAMBODIA FA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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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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