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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사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나는 이 학교에서 벌써 3년째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내가 속한 부서는 10명 안팎의 정직원과 20명에 가까운 아르바이트 학생들로 구성돼 있다. 우리는 여러 명이 한 팀을 이뤄 건물 안의 강의실·교수실·사무실·화장실 등을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매일 4시간씩 청소한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많은 학생들이 강의실에 남아 있었다. 이 학교에서는 특별한 허락이 없는 한 오후 10시 이후에 학생들이 건물 안에 머무를 수 없다(도서관 제외). 이것이 이 학교의 방침이다.

청소를 시작하기 전, 나는 건물 안에 남아있는 학생들의 수가 적은 경우에는 직접 가 학교 방침을 설명하고 "청소를 해야 하니 건물 밖으로 나가달라"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그날은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건물 안에 있었다. 개개인에게 직접 알려주기가 곤란해 나는 학교 경찰(Campus Safety)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잠시 후 학교 경찰이 도착했다. 그들은 학생들을 내보내기 전 내게 먼저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수고가 많다. (강의실에 남아 있는 학생들을 가리키면서) 혹시 저 학생들이 네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무시한 적이 있나?"
"아니, 그런 적은 없다. 나는 남아있는 학생들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청소를 하지 못해서 (학교 경찰에) 연락을 한 것일 뿐이다."
"그래, 다행이다. 내가 학생들을 내보내도록 하겠다."

이후 학교 경찰은 모든 학생들을 건물 밖으로 내보냈다.

'반드시' 쉬는 미국 대학 청소노동자

직원은 누구나 휴게실을 이용할 수 있다.
 직원은 누구나 휴게실을 이용할 수 있다.
ⓒ 고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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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한국의 여러 대학에서 청소 노동자와 학교 당국 혹은 학생들 간의 분쟁을 다룬 기사를 보게 된다. 열악한 처우에도 학교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일부 학생들로부터 무시와 모욕을 당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의 경험이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과 미국의 인건비 차이는 논외로 하더라도 한 달에 100만 원도 받지 못하는 청소 노동자들이 식사 때마다 화장실에서 식사를 해결하거나, 앉을 공간조차 없는 비좁은 장소에서 서서 급히 식사를 하고, 쉬는 시간도 없이 일을 하는 모습 등을 보면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옛말이 무색해진다.

하루에 네 시간씩 일하는 나는, 2시간 일을 하고는 반드시 10분을 쉰다. 화장실이나 복도·계단이 아니라 직원 휴게소 소파에서 편히 쉴 수 있다. 하루 여덟 시간씩 일하는 직원들은 네 시간을 일하고 난 뒤 반드시 30분 휴식 및 식사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들에게 화장실에서 식사를 한다거나, 좁디좁은 장소에서 서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청소하는 사람이 어딜..." 이런 말은 없다

직원 휴게소에 붙어 있는 푯말
 직원 휴게소에 붙어 있는 푯말
ⓒ 고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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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직원 휴게소에는 교직원·스태프 전용(Faculty and Staff only)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이곳은 교수들만 쉬는 장소도 아니고, 행정·사무직 직원들 소위 화이트칼라 노동자만 쉬는 곳이 아니다.

'스태프'라는 단어에는 이 학교 안에 있는 모든 직원이 포함된다. 청소하는 직원들이 휴게소에서 쉬고 있을 때, 교수들에게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일은 이 학교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누구나 휴게실 냉장고에 자신의 음식을 넣을 수 있고 쉬는 시간이나 식사 시간에 이를 꺼내 먹을 수 있다. 커피나 차를 마실 수도 있고, 이 공간에서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워 먹을 수도 있다. 어느 누구도 "청소하는 사람이 어디 휴게실에 들어와"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늘, 어느 2년제 대학에서 벌어진 청소 노동자들의 시위가 못마땅하다는 학생들의 인터뷰 기사를 우연한 기회에 접했다. 청소 노동자들의 쉼터를 만들어줘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로 논쟁을 벌이던 어떤 학교의 이야기도 새삼스레 기억난다.

이곳에서 공부를 하면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는 이런 소식이 그저 지구 밖 외계 세계 이야기인 것 같다.

학교 직원을 위한 휴게실
 학교 직원을 위한 휴게실
ⓒ 고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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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SNS를 통해 우연히 접하게 된 어느 대학 청소 직원과 학생들간의 분쟁에 관한 기사를 접하고 든 생각입니다.



태그:#미국 대학, #직원 휴게실, #청소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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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Biola University에서 교육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몇몇 대학/대학원에서 교육관련 강의를 하며, 은빈, 은채, 두 아이가 성인으로 맞이하게 될 10년 후를 고민하는 평범한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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