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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들어올려 은사스님에게 쏟아지는 봄햇살을 가려 줄 그늘을 만들고 있는 제자스님의 모습에서 흠모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팔을 들어올려 은사스님에게 쏟아지는 봄햇살을 가려 줄 그늘을 만들고 있는 제자스님의 모습에서 흠모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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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받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합니다. 사랑만 그런 게 아니라 흠모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흠모를 수식으로 표현한다면 '흠모 = 사랑+존경' 쯤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누군가로부터 흠모를 받는 삶을 살아간다는 건 절제와 인내, 헌신과 봉사가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만 알고, 권위만을 내세우고, 배울 게 별로 없는 사람을 흠모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향력이 현존하는 관계, 아직은 어쩔 수없이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제도적 관계 하에서 회자되는 존경이나 흠모는 그 관계가 해제됨과 동시에 사라질 강요된 흠모일수도 있습니다.  

가르치는 선생은 많으나 참된 은사는 점차 찾아보기 힘들다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천의 스승이라는 출구수행자 집단인 승가에서조차 귀감이 될 만한 청정한 소식은커녕 오히려 이전투구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귀히 여겨야 할 제자를 성추행 대상쯤으로 생각하는 교수가 버젓하게 선생노릇을 하고 있는 세상이니 어쩜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 제자들이 흠모할 만큼 참된 삶을 살아가는 스승이 점차 사라지기 때문이니 세상을 탓할 필요도 없고, 세태를 핑계할 명분도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벌써 돌아가셔서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할 스승의 삶을 기꺼이 흠모하며 구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스물한 분 출가수행자 있습니다. 

우리 시대 수행자 스물한 분의 스승 이야기 <흠모>

<흠모>(지은이 유철주/민족사/2014.4.15/1만 5000원)
 <흠모>(지은이 유철주/민족사/2014.4.15/1만 5000원)
ⓒ 민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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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모>(지은이 유철주, 민족사)는 은사스님의 삶을 흠모하는 수행으로 은사스님의 구도를 온전히 기리고 있는 스물한 분 수행자, 우리 시대 수행자 스물한 분께서 들려주는 스승 이야기이자 당신들께서 닦아가고 있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는 건 아름다움과 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잡초가 남쪽으로 가지를 뻗는 것 또한 햇빛이 남쪽에서 비추기 때문이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누군가를 흠모하는 데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책에서는 출가수행자 스물한 분, 서울 금강선원장 혜거 스님, 전 중앙승가대 총장 태원 스님, 조계종 어장(魚丈) 동주 스님, 조계종 군종특별교구장 정우 스님, 법화림 덕현 스님, 조계종 원로의원 월서 스님, 가평 백련사 주지 승원 스님, 동사섭 행복마을 이사장 용타 스님, 보림선원 서울선원 안경애 선원장, 봉화 축서사 선원장 무여 스님, 조계종 고시위원장 지안 스님, 고불총림 백양사 주지 진우 스님, 전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 스님, 수원 봉녕사 주지 지연 스님, 서울 불광사 주지 지홍 스님, 해인총림 해인사 유나 원각 스님, 동국대 정각원장 법타 스님, 서울 전등사 전등선림 선원장 동명 스님, 안양 한마음선원 주지 혜원 스님,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 혜자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이 직접 들려주신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출가수행자 스물한 분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당신들이 탁마해 온 수행이력이자, 당신들께서 은사스님을 흠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늠케 하는 햇살무늬 같은 사연, 꽃향기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은사스님께서 송암 스님을 찾아가 '스님이 알고 있는 소리는 하나도 빠짐없이 원명이에게 가르쳐 달라'며 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은사스님 나이가 70이 넘었고 송암 스님은 이제 막 50줄에 접어들었는데, 제자의 공부를 위해 후배스님에게 절을 하신 거죠.

그 얘기를 나중에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처음에 송암 스님한테 갈 때만 해도 3개월 정도만 배우고 나중에 은사스님처럼 훌륭한 강사(講師)가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스님께서 그렇게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끊여져가는 전통 불교의식의 맥을 잇고 후학을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지요." (<흠모> 52쪽)

당신 자신의 입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공부를 위해 까마득한 후배에게 절을 올렸다는 스승은 서울시 무형문화제 제43호 '경제어산(京制魚山)'보유자인 동주 스님이 흠모하고 있는 대은 스님입니다. 

제자의 허물을 감싸는 희생은 점차 엷어지고, 스승을 기리는 마음은 씨가 마르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 정말 감동적인 제자사랑입니다. 스승의 이런 모습이야 말로 어떤 지식도 넘보지 못할 가없는 제자사랑이니 흠모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세상은 점점 살벌해지고 있습니다. 인심은 메마른지 오래고, 모정마저도 의심하게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계모의 폭행으로 응석바지에 불과한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연달아 들렸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단지 칭얼거린다는 이유로 제배 아파 나은 세 살배기 자식을 때려 죽게 했다는 소식까지 들리는 세상입니다.

중노릇, 지도자노릇, 부모노릇... 결코 쉽지 않아

"니도 이제 중 됐다. 그런데 머리만 깎았다고 중 된 것이 아니다. 거기에 맞게 살아야 한다. 중은 평생 정진하다가 논두렁 베고 죽을 각오를 해야 된다 아이가. 중노릇이 쉬운 거는 아니다." (<흠모> 363쪽)

스물한 분 수행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스물한 가지 사랑이자 스물한 가지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스물한 분 수행자가 부지불식간에 향하고 있는 닮은꼴 삶은 은사스님들께서 남기신 수행의 뒤안길이라 생각됩니다. 

성철 스님이 머리를 깍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원택 스님에게 들려주셨다는 위 얘기처럼 사회적 지도자가 되고, 남편이 되고, 선생이 되고, 부모가 되기는 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게 노릇입니다.

은사스님을 모신 상여가 마지막 길 나서자 땅바닥에 넙죽 절을 올리는 스님의 모습에서 비치는 애닲음은 간절하기만 했습니다.
 은사스님을 모신 상여가 마지막 길 나서자 땅바닥에 넙죽 절을 올리는 스님의 모습에서 비치는 애닲음은 간절하기만 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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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 스님이 지관 스님을 흠모하는 마음은 빨간빛이고, 덕현 스님이 법정 스님을 흠모하는 마음은 주홍빛이며, 용타 스님이 청화 스님을 흠모하는 마음은 노란빛 사연입니다. 진우 스님이 서옹 스님을 흠모하는 마음은 초록빛이고, 지홍 스님이 흠모하는 광덕 스님은 파란빛이며, 원각 스님이 혜암 스님을 흠모하는 마음은 남빛이니, 혜원 스님이 대행 스님을 흠모하는 빛깔은 일곱 빛깔 무지개를 아우르는 보랏빛이니 허공을 아우르는 감동입니다. 

흠모 받는 삶, 행복을 온전히 대물림 해주는 도리

누군가를 흠모하며 살아가는 삶은 분명 행복할 삶일 거라 생각합니다. 스물한 분 수행자께서 들려주고 있는 흠모는 조금 각색 될지라도 반드시 대물림 해주어야 할 덕목으로 전해지고 있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스물한 분 수행자 모든 분이 다른 누군가가 흠모하는 삶을 살고 계시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흠모하며 살아가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누군가가 진정으로 흠모하는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수행 이력이야 말로 흠모하는 스승의 유훈을 온전히 기리는 제자의 삶, 대물림 해주어야 할 행복을 온전히 대물림 해줄 수 있는 구도자의 역할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누군가를 흠모하게 하는 삶은 감동적이고, 흠모하는 삶은 닮아가는 스물한 분 수행자 이야기 또한 들풀만큼이나 싱싱한 감동입니다. 들꽃에서 풍기는 향기롭고, <흠모>하는 삶을 읽는 마음에서는 아지랑이 같은 행복이 피어납니다.

덧붙이는 글 | <흠모>(지은이 유철주/민족사/2014.4.15/1만 5000원)



흠모 - 우리 시대 수행자 스물한 분의 스승 이야기

유철주 지음, 민족사(2014)


태그:#흠모, #유철주, #민족사, #대행 스님, #지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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