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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6.4지방선거를 57일 앞둔 8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여론조사와 당원투표를 통해 정당공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한 뒤 인사를 하고 있다.
 6.4지방선거를 57일 앞둔 8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여론조사와 당원투표를 통해 정당공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한 뒤 인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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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여야를 막론하고)는 6·4 지방선거의 승패에 너무 목을 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은 지킨다고 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돈이 더 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야당이 반대하는 것도 아닌 공약을 일언반구도 없이 무책임하게 파기하고 있는 현실 뒤에는 지방선거에 승리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분명 그렇다. 그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는 무책임과 구태정치의 표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에 맞대응하는 야권의 태도도 그리 달갑게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합당하는 명분이 되었던 지방선거 무공천에 대해 야당 내부와 지지자들 사이에서 반대 여론이 높은 것은 선거 패배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다. 지방자치제에 대한 차원 높은 고찰이 야권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대인 지방자치제의 향방을 결정하는 선거가 이런 식으로 승패에만 매몰되는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물론 나 역시 야권 일방의 무공천 전략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그러나 비판적인 이유는 무공천 전술이 야당을 지방선거에서 패배시킬 가능성이 높아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가 불공정한 게임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두고두고 우리 정치사에 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초선거의 무공천을 이뤄내기 위한 수단적 목표가 아니라면 야당 일방의 무공천 방침은 분명 철회되는 것이 마땅하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도전이 어디 가능성이 높아서 가치가 있었던 것인가? 거기에는 그들이 지향하는 정치의 이상이 존재했기 때문에 아름다웠던 것이다. 우리는 기초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폐지하려고 했던 이유, 그 속에 숨어 있던 지방자치에 대한 정치적 이상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정당공천 폐지'에 담긴 정치적 이상을 들여다보자

먼저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가 어떻게 도입되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지방자치제는 1961년 5·16 쿠데타로 지방자치제가 없어진 이후로 1990년대에 부활하게 된다. 헌법에는 명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제도가 지방자치제도였다. 이 제도는 1990년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3일간의 단식을 통해 정부여당에 요구, 지방자치제 실시의 계기가 됐다. 물론 실제 지방자치제도가 완벽히 도입된 것은 그로부터 5년이 흐른 1995년이나 되어서였다.

당시 김대중 총재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지 않으면 수평적 정권교체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수평적 정권교체는 1995년에 전면적으로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나서야 이뤄졌다. 중앙에 예속된 권력이 지방으로 분산되고서야 우리는 민주주의의 실증적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선거 제도를 가지고 지방자치제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의 자치가 어떤 모습을 갖고 있는지 전면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오랫동안 지방자치제가 실시될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독재정권의 권력욕이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방자치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문화가 그만큼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처음 실시되었을 때는 시장과 구청장 등을 주민들 손으로 직접 뽑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었다. 대통령이 자치기구의 수장을 임명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다.

이제 지방선거가 실시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우리의 현실이 많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그때보다 중앙에 대한 의존도나 집중도는 전혀 줄어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광역행정에 있어서 중앙정부와의 밀접한 관련성은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주민자치의 최소 단위라 할 수 있는 기초자치단체마저 중앙정치의 바람에 휩쓸리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이념대립이 심한 것은 어쩌면 생활자치가 되어야 할 기초선거에서조차 중앙의 여야 대립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극심한 지역주의는 영호남에서 지방자치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일당독재를 만드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고 있다. 따라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지기 위하여 단식을 하면서까지 도입하려 한 지방자치제도가 진정한 민주주의와 주민자치의 산실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2할 자치'로는 민주주의 초석 기능 못해

정부세종청사
 정부세종청사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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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를 막론하고 현재의 지방자치는 기형적이고 반쪽 지방자치라는 것이 공통된 견해이다. 새누리당 소속의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주민의 실생활과 직결된 사안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과감히 권한을 넘겨주는 등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2할 자치를 최소한 4할 자치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물론 이것은 야당 소속 도지사도 모두 공감하는 문제로 여야의 경계를 넘어 영호남의 도지사들도 한목소리로 2할 자치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산 배정이나 여러 권한이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고, 지방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전체 업무 중에서 20%밖에 안 된다는 듯이다. 실례로 중앙정부가 할 일을 지방정부에 맡기는 국가 위임사무를 평가하는 '정부합동평가 제도'를 살펴보면 중앙정부의 비대한 권한이 얼마나 지방정부의 업무를 왜곡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잘 나타나 있다.

중앙부처가 자기 필요에 의하여 직거래장터 운영실적을 지방 정부 평가 항목에 넣어놓고 정량적인 평가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는 지방의 입장에서 보면 탁상공론적인 평가지표가 아닐 수 없다. 가령 충청남도를 중심으로 이남 지방의 경우는 전통 5일장이 많이 운영되고 있어서 직거래 장터의 운영 실적이 절대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없는 곳이다. 이를 근거로 지방정부를 평가하고 또 이것이 차등 인센티브의 근거가 된다고 하니 지방행정의 창의성을 죽이는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광역자치단체는 중앙과 기초자치단체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중앙정부와의 밀접한 관계는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런데 광역자치단체를 통해 기초자치단체인 시장과 군수의 권한마저 도지사의 업무로 평가하여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광역단체를 통해 그대로 기초자치단체에까지 미치도록 시스템화 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어 자원봉사센터 상근인력 충족률 등을 도지사 평가지표로 활용하여 시장과 군수가 여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해야 할 사안까지 중앙정부의 의사가 관철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기초 지자체장의 업무를 가지고 광역 지자체장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에 숨겨져 있는 의도를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지방교부세 주무 부서인 안전행정부가 평가를 주관하고 이를 근거로 지방에 돈을 교부하고 있으니, 지방의 업무 중심이 중앙정부의 의도가 관철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른바 '2할 자치'에 이런 만기친람(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핌) 형식의 평가 시스템에다가 중앙정치에 예속된 지방정치의 현실까지 겹치면서 우리의 지방자치제도는 민주주의 초석으로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지방자치제도가 제대로 실시되어 주민들의 자치가 명실상부하게 이뤄졌다면, 우리 정치는 옛날에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생활자치로서 정치와 생활을 연결해 참여 민주주의를 발달시켰을 것이다.

무엇이든 어떤 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없다. 그 제도를 바꾸려는 이유나 원인,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문화를 바꾸려는 고민이 수반되지 않으면 제도를 바꿔도 무늬만 바뀔 뿐 본질은 그대로 남아 우리 정치구조를 계속해서 왜곡시킬 것이다.

서울은 지방을 놓아주고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권한 넘겨야

우리는 무엇을 해도 서울에서 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 지방은 문화를 꽃피우기도 어렵고, 고유의 자생적 질서를 만들기도 어렵다. '망아지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도 우리의 중앙 예속이 얼마나 뿌리가 깊은가를 보여주고 있다. 서열화된 대학만 봐도 그렇다. 과거에는 각 지방의 국립대학에 이른바 '인 서울(in Seoul)'의 사립대학 입학생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인재들이 입학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특별시의 경계선이 명문대학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와 혁신도시를 건설하여 중앙으로 집중된 자원을 지방으로 강제 이전하려고 했을 것인가?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고백대로 '재미 좀 본' 정략일 수는 있지만, 지방의 고사를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문제의식만은 우리가 공유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안철수와 새정치민주연합의 정략에는 관심이 없지만, 기초선거의 공천을 없애려 한 문제의식은 공유하고자 한다. 그것은 지방선거에서 특정 정치세력이 이기고 지는 것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단지 그 문제였다면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후보가 동시에 그런 공약을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울은 각 지방을 놓아주어야 하고, 중앙정부는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권한을 지방으로 넘겨주어야 한다. 분권과 자율, 창의 등의 가치들은 보수적인 우파 정부라 해도 반대할 명분이 없는 가치가 아닌가?

예산을 틀어쥐고 자기들이 위임하는 국가 사무를 내리고 그것을 제대로 하는지 자기들이 정해놓은 관료제적 평가시스템으로 평가를 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다시 예산을 내려보내는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지역주의를 볼모로 지역의 지방정치를 일당독재로 꽉 쥐고 흔들면서 각 지방의 말단까지 중앙정부의 대립이 그대로 영향을 미치게 하는 제도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모든 자원과 인력, 권한을 모두 서울로 집중시키고 지방은 스스로 커나갈 제도적 장치마저 막아버리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단식까지 하면서 만들려 했던 민주주의 초석인 지방자치를 제도만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살려내는 일들을 고민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느 당이 이길 것인가는 정말로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태그:#지방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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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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