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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안철수는 최악의 수를 뒀다.

6·4 지방선거 '기초선거' 공천 문제를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정확히는 당원투표 50%+여론조사 50%로 결정된다. 이 소식에 문재인, 정청래 의원 등 '공천파'들은 환영했다. 기존 무공천 입장에서 여론조사 등을 통한 결정 그 자체를 안철수의 위대한 결단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선거 결과에 대한 '간판'의 무한책임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9일 오전 국회 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9일 오전 국회 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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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 정치 기본을 바로 세우고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는 원칙과 소신에는 추호도 흔들림이 없다"면서 "다시 한 번 당내와 국민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과 당원이 선거 유불리를 떠나 약속을 지키는 정치에 대해 흔쾌히 지지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안 대표의 기초선거 '무공천'에 대한 선의는 인정한다. 그러나 '원칙과 소신에는 추호의 흔들림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뜬금없이 '당원+여론조사' 방식으로 기초선거 공천을 확정하겠다는 주장은 말장난에 다름 아니다.

안철수는 130석 제1야당의 대표다. 그가 정말로 원칙과 소신에 따라서 무공천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국민들 앞에서 그렇게 주장하고 지방선거 결과를 자신에 대한 '재신임'으로 받아들이면 됐다. 여론조사를 벌일 필요도 없다.

실제로 역대 어느 선거에서나 진 측은 대부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선거 때 간판이 됐던 이들은 이기면 공신이고, 지면 역적이었다. 선거에서 지면, 거의 대부분 책임을 지고 2선으로 후퇴했다. 안 대표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공천을 밀어붙였는데 선거에서 졌다면 그는 2선으로 후퇴해야 한다. 반대의 경우,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초선거 '공천'을 했는데 진다면? 역시 2선으로 후퇴해야 할 것이다.

선거에서 간판이 된 이들은 선거 결과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다. 2002년 6·13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사례가 가장 극적이었다. 당시 선거는 '노풍'을 일으키며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노무현' 이름으로 치러졌다. 불행하게도 민주당은 선거에서 졌고, 그 결과로 '후단협(후보 단일화 협의회)'이 만들어져 노무현 후보의 중대결심을 촉구하기도 했었다. 대통령후보조차도 비켜나갈 수 없는 것이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2010년 6·2 지방선거 결과는 어떠했나? 천안함 사건이 뒤덮은 선거였다. 당시 여론조사는 압도적으로 여당의 승리를 점쳤지만 결과는 놀랍게도 '무상급식'과 '야권연대'를 내세운 야권의 압승이었다. 한나라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뽑았으나 리더십의 위기를 넘기지 못해 결과적으로 당권은 친박계로 넘어갔다. 대통령조차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선거결과에 대한 책임이었던 것이다.

안철수 결단,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

안철수 대표는 여전히 '무공천'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다. 안 대표는 8일 발표한 회견문에 '대표직을 걸겠다'는 문구를 넣으려 했다는 후문이다. 전날 지도부 회의에서는 "결과가 나오면 책임져야 한다, 신임투표의 성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백의종군할 생각도 있다"고도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대선 당시 같은 약속을 했던 새누리당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공천'을 하는데 왜 안 대표는 공천에 대해 재신임, 신임투표 운운해야 했는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출구전략'인지 '정면승부'인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이다. 묻는 방식에 따라 결과가 상이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이 7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기초선거 무공천에 대해선 국민과 약속이기 때문에 무공천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질문에 동의하는 의견이 47.2%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31.2%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재검토해야 한다고 답했고, 모르겠다는 응답도 21.5%였다.

문항을 바꿔서 '새누리당의 정당공천 강행' 문구를 넣은 뒤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을 묻는 질문에는 그 결과가 정반대로 나왔다. '리서치뷰'가 지난 4~5일 '새누리당의 정당공천 강행을 전제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정당공천여부'를 물은 결과 39.7%가 '공천해야 한다'고 답했고 무공천 방침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32.6%로 답했다.

즉, 무공천 설문항목에 '국민과의 약속'을 넣으면 '무공천'을 지지하는 결과가 나오고 '새누리당 공천 강행' 문구를 넣으면 '공천'을 지지하는 결과가 나왔다. 과연 문구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이런 여론조사를 통해서 제1야당이 공천을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중대 의사결정을 여론조사를 통해 한다면 도대체 지도부는 왜 필요한 것인가. 여론조사 설문문항 만들려고?

이런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새정치민주연합의 여론조사를 주관하는 측에서는 최대한 간결하게 설문문항을 작성한다는 방침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 지방선거에 기초선거 후보자를 공천해야 하느냐' 등을 묻는 방식인 것이다.

앞서 엠브레인과 리서치뷰 결과에서 확인했듯이 어느 경우든 근소하게 결정됐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9일 실시해 10일 발표하는 여론조사 결과 역시 근소한 수치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그 근소한 수치가 공천의 명분이 될 수 있는가? 반대로 무공천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무공천이 지도부 결단으로 진행된 건이면 그것의 철회 역시 지도부의 결단으로 할 수는 없었는지 의문이다.

결정적 순간의 '다섯 포기' 안철수

안철수 공동대표가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중앙당 창당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 결의 다지는 안철수 공동대표 안철수 공동대표가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중앙당 창당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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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안철수'는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구설의 주요 내용은 '말바꿈'에 대한 것이었다. SNS에는 안철수의 '다섯 포기'라는 글이 올라왔는데 중요한 순간마다 그가 포기했었다는 내용이다. 서울시장 포기, 대선후보 포기, 신당창당 포기, 새정치 포기 그리고 이번에 무공천 포기까지….

그 가운데서 이번에 무공천 포기, 정확히는 무공천 재고 결정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좀 더 승부사다운 결단이 필요했다. 지난 3월 2일 두 당이 창당할 때 매개체는 '기초선거 무공천'이었다. 선언문에 등장하는 무공천은 신성불가침의 문구, 그것이었다.

안 대표는 선언문에서 "정부와 여당이 대선 때의 거짓말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고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차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기초선거 정당공천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무공천, 공천이 결정될 테지만 선언문에서 '결정됐다'고 선언한 것과 비교할 때 여론조사를 통한 재고 결정은 분명 후퇴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깔끔하게 무공천을 밀든지, 아니면 사과하고 여론조사 등 없이 지도부의 결단으로 공천으로 전환할 수는 없었을까. 2천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가 50% 반영되는 '조건부 회군'은 공천, 무공천 그 어떤 결과가 나오든 책임있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결정, 감동을 주는 '울림'은 없었다

역사는 정치투쟁에서 승리한 자들의 기록이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역사적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이성계가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가 회군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4가지 이유'는 실상 억지에 가깝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게 아니고, 여름에 군사를 일으키는 게 아니고 등이다. 이런 식이면 전쟁을 하지 말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위화도 회군이 역사적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의 승리가 회군에 명분을 줬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회군은 어떠한가. 당원과 여론조사 결과에 무조건 따르겠다고 했지만 '대표직을 건다, 재신임 투표로 간주하겠다' 등 내용이 전해지면서 오히려 지지자들은 혼란스럽다. 그런 태도가 결과에 따르겠다는 사람의 태도인지도 의문스럽다. 자신의 신념을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오만의 정치는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 새정치민주연합의 기초선거 정당공천 여부는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시기적으로 결정이 나면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공천으로 결정나면? '약속을 지키는 정치를 흔쾌히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한 안철수의 리더십에는 큰 상처가 남을 것이다. 반대로 무공천으로 결정나면? 기초선거의 패배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질 것이다.

안철수는 지방선거의 승패를 결정지을 만한 커다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울림'은 없었다. 승부사다운 결정도 아니었고 한마디로 애매했다. 안철수의 확고한 신념이 현실과 타협하면서 그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의 '원칙'이 아닌 여론조사 결과를 대하는 그의 '반응'이 주목된다.

안철수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태그:#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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