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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대화하는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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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대표가 고립무원의 외로운 처지다. 이번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로 '기초선거 무공천'을 내밀었지만, 오히려 역공을 맞아 비틀거리는 형국이다. 기초선거 공천폐지는 지난 대선 때 후보들의 공통 공약사항이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집요하게 기초선거 공천에 대한 '입장'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무시전략을 구사 중이다. '공약 번복'에 대한 사과는 박 대통령이 아닌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했다. 그들은 이미 그 건에 대해 사과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급한 마음에 안 대표는 지난 4일 청와대를 전격 방문했다. 그는 '국민의 자격'으로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한다면서 '7일까지' 면담 가부 여부를 요청했다. 기초선거 공천폐지에 대한 입장 번복 '사과'도 여당 원내대표를 통해 대신하게 한 박 대통령이 안 대표와 회동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답을 준다면 '선거법 개정' 운운하며 국회 내에서 여야가 먼저 협의할 사항이라고 완곡하게 거절할 것이다.

지난 6일 안 대표는 김한길 대표와 함께 홍익대 앞 거리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국민과의 약속입니다! 안철수 김한길의 약속토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안 대표는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내일 정도까지는 가능 여부를 말씀해주시기를 부탁한다"고 촉구했다. 사용하는 단어가 이틀 사이에 '국민의 한 사람'에서 '야당'으로 바뀐 대목이 인상적이다.

당내에서 봇물 터지는 안철수 비판 "오기 아닌가?"

안철수 위기는 소속 의원들의 공개적인 안 대표 비판에서 확인된다. 제1야당 대표라는 막중한 지위에 올랐지만, '무공천 원칙'에 대한 당내 비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설령 원칙에 동의하는 의원조차도 '투쟁방식'에 노골적 불만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90년 김대중 총재의 13일간 단식을 언급하면서 초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의견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신기남 의원은 6일 트위터를 통해 "(기초선거 무공천 관련) 과연 이것이 '약속'을 지키는 길일까요? 과연 이것이 정치를 올바로 만드는 길일까요? 편견 아닐까요? 오기는 혹시 아닐까요?"라고 안철수, 김한길 대표의 무공천 원칙을 정면비판하고 나섰다.

정청래 의원 역시 지난 4일 트위터를 통해 "안철수 당신 멋져! 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져주자"라고 무공천 원칙을 조롱한 데 이어 6일에는 <안철수의 새정치와 내정치> 제목의 글에서 "내정치 - 내약속대로, 내방식대로, 내 고집대로, 내 뜻을 펴고 내가 살기 위해 당과 후보들은 나를 위해 희생하라!"라고 비판 강도를 높였다.

지방선거 보이콧을 주장하고 나선 의원들도 등장했다. 최재천 전략홍보본부장은 "청와대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이후 대응으로 지방선거 보이콧도 검토한다"고 밝혔다. 민병두 전 전략홍보본부장 역시 "우리가 지방선거를 전면 보이콧할 경우 박근혜 정부는 국정운영과 정통성에 타격을 입게 되고 투표율 저하로 결국 영수회담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대 야당에서 선거 보이콧을 주장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번 역시 문제가 된 기초선거 외에 '광역선거'도 치러지는 점을 고려할 때 전면 보이콧에는 명분도, 실익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안 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점은 '보이콧' 외에 뾰족하게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을 공격할 소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39세 CEO때, '정치생명과 원칙'을 설파하고 다녔던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대표의 '지독한 원칙경영'을 인터뷰해 기사화한 <한국경제> 2001년 8월 28일자.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대표의 '지독한 원칙경영'을 인터뷰해 기사화한 <한국경제> 2001년 8월 28일자.
ⓒ 한국경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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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컨텐더(The Contender)>란 영화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어요. 미국 부통령이 갑작스럽게 죽자 한 여성 상원의원이 부통령 후보로 지목됐지만, 대학교 때 섹스 파티를 열었다는 스캔들에 휘말리고 맙니다. 여론이 불리해졌지만, 그녀는 '노 코멘트'로 일관했어요. 나중에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고 대통령은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죠.

그녀는 '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사생활이 아니라 능력이라는 게 제 소신입니다. 스캔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는 순간 부통령 자격과 사생활이 관련 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정치생명이 위협받는다고 해서 저의 원칙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원칙이란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킬 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 <한국경제> 2001년 8월 28일 기사 중

안철수연구소의 39세 CEO 안철수는 경영인 탐구 코너에 등장해서 "원칙이란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킬 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서 원칙경영을 강조했다. 젊은 경영자 안철수는 정치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원칙을 저버리지 않는 미국 정치인이 등장하는 영화 <컨텐더>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2001년 <한국경제>와의 인터뷰뿐 아니라 2003년 <안랩홈페이지>에 올린 글, 2004년 <샘터>에 기고한 글에서 지속적으로 <컨텐더>를 언급하면서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대목은 13년 전 안 대표가 감명깊게 보았다고 강조한 <컨텐더> 등장인물인 부통령의 상황과 지금 안철수의 상황이 매우 비슷해 보인다는 점이다. 지금 안 대표는 '정치생명'과 '원칙' 사이의 늪에 빠져 있다. 그는 새정치의 상징으로 '약속을 지킨다'면서 기초선거 무공천을 선언했다. 그가 원칙을 선언하자 새누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약불이행에 대해) 사과'하고 공천하기로 했다. 이대로 선거가 진행된다면 결과는 뻔하다. 큰 패배를 예상하는 전망이 많다.

영화 속 부통령과 안 대표의 상황은 비슷하나 결정적으로 다른 대목이 있다. 부통령은 '음모'에서 벗어났다.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안 대표에게는 '진실'이 아닌 '정치'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대로 선거가 치러져 선거에서 지면 그의 정치생명에는 큰 위협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원칙'을 번복한다면? 그 역시 그에게는 재앙일 것이다. 

2003년 <안랩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안철수는 "원칙이라는 것은 매사가 순조롭고 편안할 때에는 누구나 지킬 수 있습니다"라며 "원칙을 원칙이게 만드는 힘은 어려운 상황, 손해를 볼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지키는 것에서 생겨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상황이 어렵다고, 나만 바보가 되는 것 같다고 한두 번 자신의 원칙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은 진정한 원칙이 아닙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일까?

이익 버리고 원칙에 충실했던 CEO 안철수, 과연 무공천은?

그는 영화 속 부통령의 소신과 원칙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 안 대표에게 큰 감동을 준 영화 <컨텐더> 그는 영화 속 부통령의 소신과 원칙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 포털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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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보았듯이 젊은 경영자 안철수는 집요할 정도로 '원칙'을 고수했다. 실제 당장의 이익을 버리고 원칙에 충실했던 사례가 적지 않았다.

2000년 벤처붐이 일었을 때 주위 권유에도 코스닥에 등록하지 않았다. 닷컴기업에 투자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도 거절했다.

미 백신업체인 맥아피사로부터 1천만달러에 인수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한 일화도 유명하다. 평생 호의호식할 금액을 거절한 이유를 "원칙에 충실하는 게 정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안 대표는 답했다.

그 후 10여 년 세월이 흘렀고 지금 안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민이 많은 정치인이 됐다. 공천과 무공천 사이에서, 원칙을 앞세운 강경투쟁과 '위화도 회군' 사이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내부 투쟁 사이에서 안 대표는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고집스러운 원칙을 중시한 젊은 경영자 안철수의 소신이 이번 기초선거 무공천 원칙에도 이어질 것인가.

영화 <컨텐더> 속 부통령이 받았던 '섹스파티 스캔들' 오해는 풀렸다. 안철수는 부통령의 원칙이 부통령을 구했다고 믿었다. 지금 청와대를 비롯, 여당과 야당의 모든 관심은 '안철수의 원칙'에 쏠려 있다. 부통령의 경우와 같이 과연 원칙은 안철수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태그:#안철수, #컨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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