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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대회당 뒤에 자리한 국가대극원 모습 물을 채운 타원형 건물이 특이하다. 현판은 장쩌민이 썼다
▲ 인민대회당 뒤에 자리한 국가대극원 모습 물을 채운 타원형 건물이 특이하다. 현판은 장쩌민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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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정치의 심장부인 인민대회당의 뒤에는 국가대극원이 있다. 우리나라 국립극장 같은 곳이다. 이 국립극장의 정문은 북쪽으로 나 있다. 베이징의 중심도로인 창안따지에를 지나면 바로 중국 지도자들의 거주지인 중난하이(中南海)가 나온다.

현재의 국가대극원은 1997년 9월에 상무위원회에서 제안되어 다음해에 국무원의 비준을 거쳤다. 공사는 2001년에 시작되어 2007년 9월에 완공했다. 이 시기는 덩샤오핑이 죽고 장쩌민이 모든 실권을 장악하던 시기다. 아름다운 타원형인 이 건물의 주변은 호수로 되어 있어 밤이 되면 수면과 대칭을 이룬 특이한 아름다움을 보인다. 그런데 파룬궁 단체 등 호사가들은 이 시설을 두고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두꺼비 상인 장쩌민이 정치적 권력을 얻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한데, 국가대극원을 이렇게 만든 것이 장쩌민의 의도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시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수장될 것이라는 예언도 내놓았다.

이런 예언 여부를 떠나 덩샤오핑의 뒤를 이은 장쩌민은 금방 모든 자리에서 중국의 1인자로 군림했다. 톈안먼 사건으로 혼란스러웠던 1989년 6월 중앙위 총서기에 선출됐고, 11월에는 사실상 권력의 핵심인 군사위원회 주석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실권자인 덩샤오핑이 있었다. 어찌보면 대립할 것 같았지만 장쩌민은 조심스럽게 덩을 보필했다. 1997년 2월 덩샤오핑이 죽자 그의 권력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리고 2005년 3월 군사위 주석에서 사임할 때까지 그는 명목상이나 실질적으로 중국을 통치했다.

16기1중전회로 결정된 두사람의 지도자 후진타오는 총서기로 장쩌민은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남아있는 1년간의 동거를 알리고 있다
▲ 16기1중전회로 결정된 두사람의 지도자 후진타오는 총서기로 장쩌민은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남아있는 1년간의 동거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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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반세기 동안 실질적으로 중국을 지배한 장쩌민

그리고 후진타오가 주석에 올라설 때, 과연 장쩌민이 권력을 어디까지 내놓는 가가 관심거리였다. 그 징후를 볼 수 있는 것은 2002년 11월 열린 16기 1중전회였다. 이 회의 결과 나타난 가장 뚜렷한 인사는 동반퇴진을 말하면서 고희(古稀)를 넘긴 정치인들이 퇴장한 것이다. 톈안먼(天安門) 비극의 발원지였지만 건재했던 리펑(李鵬) 전인대(全人大) 상무위원장을 비롯해 주룽지(朱鎔基) 국무원 총리, 리루이환(李瑞環) 정협(政協) 주석, 웨이젠싱(尉健行) 당기율검사위 서기, 리란칭(李嵐淸) 부총리 등이 중앙정치국위원에서 물러났다.

물론 장쩌민(江澤民) 주석도 물러났다. 하지만 장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으로 풀이되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갖는 한편 후진타오(胡錦濤)를 비롯해 7명에서 9명으로 늘어난 상무위원의 대다수를 자신의 세력으로 채우는 데 성공했다. 장쩌민(江澤民)의 실질적인 후원을 받은 인물은 주석직을 받은 후진타오(胡錦濤)를 비롯해 우방궈(吳邦國), 자칭린(賈慶林), 쩡칭홍(曾慶紅), 황쥐(黃菊), 뤄간(羅幹) 등 6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쩌민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다른 사람에 넘긴다고 해도, 실권을 쥐고 있는 셈이었다.

2002년 11월 16기1중전회를 통해 형성된 구조를 놓고 다양한 말이 오가는 것에 대해 한 지인은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지 말라고 강조했다. 사실 감독인 장쩌민(江澤民)이 후진타오(胡錦濤)를 투수에 기용하고, 원자바오(溫家寶)를 포수에, 쩡칭홍(曾慶紅)을 유격수에 기용한다는 것일 뿐 옳고 그름의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 확실한 것은 장쩌민이 팀의 성적을 책임지는 감독으로 완전히 굳어진 이상 그 팀의 성적에 관해서도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측근들이 상무위원회를 장악하던 후진타오 시절까지 합치면 근 사반세기 동안 중국의 실권을 장악한 셈이다. 마오나 덩이 권력이 있다지만 당대 중국을 만든 것이 장쩌민이라는 말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리고 그의 유산은 앞으로도 만만치 않게 중국 정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 혁명을 이끈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후난과 쓰촨 사람들인 반면에 장쩌민은 화동지역인 양저우(楊州) 출신이다. 혁명의 기운이 사라진 다음을 장악하는 것은 당연히 지식이다.

난징 강남공원의 방 붙이는 모습 중국의 가장 거대한 시험장중 하나였던 강남공원의 방을 붙이는 모습을 그린 그림. 이곳에서 선발된 이가 베이징에서 시험을 봤다.
▲ 난징 강남공원의 방 붙이는 모습 중국의 가장 거대한 시험장중 하나였던 강남공원의 방을 붙이는 모습을 그린 그림. 이곳에서 선발된 이가 베이징에서 시험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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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는 물론 외교에서도 봄날이었다

중국에서 화동은 상하이를 비롯해 지앙쑤, 저지앙, 안후이를 말한다. 지역적으로 본다면 극히 작지만 이곳이 중국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금나라에 쫓겨 중원인 카이펑(開封)에서 수도를 항저우로 옮긴 남송(南宋 1127~1279)시기 이후 이 지역은 한족들에게 정치와 지식의 근거지였다.

특히 송대는 물론이고 명청시기까지 과거 합격자의 2/3 이상은 대부분 이곳에서 나왔다. 또 대표적인 상인 그룹인 휘상(徽商)이나 절상(浙商)이 모두 이 지역에서 비롯됐다. 혁명 시기에야 힘을 못 썼지만 평화시기가 오니 당연히 이들이 권력을 잡는 것은 불문가지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장쩌민은 이런 시기를 연 첫 인물이자 그 구조를 확고하게 한 지도자였다. 장쩌민시대부터 중국 정치의 꽃인 상무위원은 물론이고 중앙위원들도 대부분 이 지역에서 배출되어 중국 정치를 이끌고 있다.

장쩌민이 실권자로 있었던 시절은 중국 정치나 경제는 물론이고 외교에서도 가장 봄날이었다. 주석에 오른 1989년의 GDP가 1조6922억위안이었던 것에 반해 그가 실권을 놓은 2004년의 GDP는 18조4937억위안으로 10배가 넘게 상승했다. 여기에 막후 실력을 행사하던 후진타오 시대가 끝나던 2013년의 GDP가 56조8835억위안이었으니 그 성장세가 얼마나 가팔랐는지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중국 아프리카 포럼 모습 아프리카 아랍 정상 48명을 한꺼번에 불러 치른 기념비적 행사였다
▲ 중국 아프리카 포럼 모습 아프리카 아랍 정상 48명을 한꺼번에 불러 치른 기념비적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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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적으로도 중국은 그 범위를 넓혔다. 특히 괄목할 만한 사건은 2006년 중국-아프리카 정상회담이었다. 중국은 11월 아프리카와 아랍 48개국 정상을 한꺼번에 불러 회담을 치렀다. 일본과는 외교에 있어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위세를 보이기에는 더 없이 화려한 행사였다. 이후 중국의 대 아프리카 자원외교나 인력 진출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명나라 시절 정화(鄭和 1371~1433)가 아프리카를 다녀온 이후 중국의 위세를 떨치는 가장 큰 행사였다. 물론 중국에도 아프리카 인들이 적지 않게 쏟아졌다. 그 가운데는 흥미로운 일들도 많았다. 나 역시 그 주인공이 될 뻔한 일도 있었다. 택시에서 지갑을 분실했는데, 얼마 후 내 지갑을 찾았다는 이에게 연락이 왔다.

만나보니 아프리카에서 온 유학생이라며, 사업을 제안했다. "내 아버지가 아프리카 추장인데,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사건으로...." 예의상 들어주다가 다음에는 연락이 와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런 이들이 한국에도 많이 찾아온 듯 한데, 말 그대로 들었던 이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와병설'에 '사망설'까지 끊이지 않았던 장쩌민이 중앙 정치권에서 다시 얼굴을 드러낸 것은 2012년 12월 21일 국가대극원에서 열린 신년음악회에서다. 이 자리에는 리란칭, 위정셩, 류옌동, 우이 등 상하이방의 실세들이 대거 참석했다.

하지만 영원한 권력은 없다. 장쩌민 역시 거의 공식석상에 보이지 않을 만큼 몸에 찾아온 변화를 막을 수 없다. 또 상하이방이라지만, 샨시성 출신인 시진핑의 등장은 그에게도 위협적일 수 밖에 없다. 다만 덩샤오핑에게서 권력을 넘겨받던 시진핑 역시 장쩌민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정치의 불문율이 있기 때문에 살아 생전 험한 꼴도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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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장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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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시민소통담당관. 저서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5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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