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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 때면 피어나는 꽃들은 결코 저 혼자 피어나는 게 아닙니다. 나뭇가지와 뿌리가 있어야 하고. 이맘 때의 조건과 연기되어야만 피어납니다.
 이맘 때면 피어나는 꽃들은 결코 저 혼자 피어나는 게 아닙니다. 나뭇가지와 뿌리가 있어야 하고. 이맘 때의 조건과 연기되어야만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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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길 양쪽으로 개나리가 노랗게 피어있는 꽃 터널을 이루고 있는 들길을 걸었습니다. 마음조차 노랗게 물드는 기분입니다. 고개를 들고 저만치 바라보니 분홍빛 진달래도 피었고, 하얀색 목련화도 보입니다.

꽃들은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나무들은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나뭇가지 없는 꽃은 있을 수 없고, 뿌리 없는 나뭇가지는 없습니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꽃은 허공에 저 혼자 피어나는 게 아니라 가지와 뿌리에 의지해 피어납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까지는 꽃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항상 이맘때가 되어야만 개나리도 피고, 진달래도 피고, 목련화도 핍니다. 이맘 때 피는 꽃들은 이맘때, 한여름에 피는 꽃들은 한여름이라는 계절이 되어야만 피어납니다.

흔히 '내가 있어야 네가 있고, 네가 있어야 내가 있다'는 말로 관계적 존재를 설명합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연기론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금, 아주 조금만 골똘하게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세상과 관계없이 오로지 홀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물의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심안 <연기법으로 읽는 불교>

<연기법으로 읽는 불교>(지은이 목경찬/불광출판사/2014.3.26/1만 3000원)
 <연기법으로 읽는 불교>(지은이 목경찬/불광출판사/2014.3.26/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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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법으로 읽는 불교>(지은이 목경찬/불광출판사)는 세상만사에 형성돼 있는 관계적 근원을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불교 교리들을 광원(光源)처럼 비추며 렌즈처럼 연기적 관계들에 초점을 맞춰가며 설명하고 있어 세상만사를 연기적 시야로 바라볼 수 있는 사고를 넓혀줍니다.

대개의 고분자들은 그 분자식이 매우 복잡합니다. 하지만 분자식를 이루고 있는 연결고리들을 차분하게 정리해 보면 몇몇 원소들이 일정한 형태로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복잡해 보이는 게 사람들마다의 삶이지만 정리하고 간추려 보면 어떤 연기적 관계의 결과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나고,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를 알면 그 무엇을 찾을 수 있고, 그 무엇을 찾으면 화도 다스릴 수 있고 괴로움도 달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창 밖에서 개가 짖는데 우리는 개가 '멍멍' 짖는다고 하지만, 미국인은 개가 '바우와우(bow-wow)' 짖는다고 합니다. 같은 개 짖는 소리인데, 우리는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실제 개가 어떻게 짖는지는 모릅니다. 사실 우리는 모르기보다는 그렇게 짖는다고 의심하지 않고 듣습니다. 우리는 그 기개 짖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개 짖는 소리를 듣습니다[전도몽상(顚倒夢想)] 즉, 내 마음이 내 마음을 봅니다. 보는 쪽도 내 마음이요, 보는 쪽도 내 마음으로 드러납니다. '멍멍' 개 짖는 소리는 실제 개가 짖는 소리가 아니라 내 마음이 개가 짖는 순간 덧칠한 소리입니다. -<연기법으로 읽는 불교> 57쪽-

우리는 세상 자체를 알려고 해도 세상 자체를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자체를 알았다고 하는 순간, 그것은 세상 자체가 아니라 나에게 알려진 세상, 나에게 이해된 세상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펼쳐진 세상을 세상 자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이 저렇게 생겼니, 이렇게 생겼니 하며 자기주장을 이야기합니다. -<연기법으로 읽는 불교> 93쪽-

우리는 꽃이라고 하지만 벌이나 나비에게 꽃은 양식을 거둘 수 있는 밀원입니다. 연기법이 어렵다고 생각되는 건 같은 사물도 처해진 입장에 따라 달리 되기 때문입니다. 섣불리 아는 연기법은 어렵습니다. 섣불리 알고하는 설명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아는 연기법, 제대로 설명하는 연기법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연기법, 만물에 깃든 심오한 인연을 볼 수 있는 심안

누구의 아버지가 누구에게는 아버지이지만 누구의 어머니에게는 남편이고, 누구의 할아버지에게는 자식입니다. 친구들에겐 친구일 뿐이고, 모르는 사람들에겐 그저 중년 남자일 뿐입니다.

밧줄은 여러 가닥이 서로 꼬임으로 만들어집니다. 가닥과 꼬임이 없는 밧줄은 아주 가벼운 지폐조차도 잡고 있지 못하고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밧줄은 여러 가닥이 서로 꼬임으로 만들어집니다. 가닥과 꼬임이 없는 밧줄은 아주 가벼운 지폐조차도 잡고 있지 못하고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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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고마운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아버지로부터 꾸중을 들었거나 손해를 보는 입장에 처했던 사람이라면 나쁜 사람으로 기억할 것 입니다. 

책에서는 물질과 현상에 따른 연기, 관계성만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보다 세상만사를 보다 근본적으로 헤아려 볼 수 있는 무형적 관계, 심리적 연기까지를 불교 교리들과 연계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보는 꽃은 그냥 꽃에 불과하지만 꽃이 피어나는 연기적 사고로 헤아리며 바라보는 꽃은 심오한 연기로 맺어진 인연의 결과이니 또 다른 묘미까지를 느끼게 해 줄 것입니다.

똥으로는 향을 만들 수 없어

출가수행자 집단인 승가 또한 세속만큼이나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종단 최고 지도자인 종정 스님 주변에 복면을 한 괴한이 출현했다고 합니다. 어느 쪽에서는 자작극이라고 하고, 어느 쪽에서는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할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음란하면서도 참선을 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으며, 도둑질을 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가득 차기를 바라는 것 같고, 거짓말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같으니,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라도 다 마(魔)의 도를 이루리라. 서산스님, 『선가귀감』 -<연기법으로 읽는 불교> 167쪽-

진실은 하나일진데 주장하는 바가 서로 다르니 둘 중 하나는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설사 수행력이 깊더라도 거짓으로 얻은 도는 입신양면만을 위한 출세의 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세상살이는 만만치 않고 만사는 복잡합니다. 복잡한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의외로 간단할 때가 많습니다. 복잡하기만한 인생사를 간단하게 단순화시키고, 만만하지 않은 세상살이를 오묘함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연기법으로 투영해 보는 세상만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만만치 않고 복갑하기만 한 세상만사 다시금 되새기며 오묘한 맛으로 즐기고 싶다면 <연기법으로 읽는 불교>을 읽음으로 연기법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연기법으로 읽는 불교>(지은이 목경찬/불광출판사/2014.3.26/1만 3000원)



연기법으로 읽는 불교

목경찬 지음, 불광출판사(2014)


태그:#연기법으로 읽는 불교, #목경찬, #불광출판사, #연기법, #선가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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