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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숲 가득한 순천만으로 이어지는 동천 자전거 여행길.
 갈대숲 가득한 순천만으로 이어지는 동천 자전거 여행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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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順天者存 逆天者亡 - 하늘에 순종하는 자는 살고, 하늘에 거역하는 사람은 망하느니라."

<명심보감> '천명편'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에게는 도리가 있고 하늘에는 순리가 있으니, 도리와 순리를 따르는 사람은 살아서 존귀해지고, 도리와 순리를 거역하는 사람은 망하게 된다는 뜻이다. 전라남도 순천시의 한자 이름도 '順天'이다.

예부터 순천은 사람의 도리와 하늘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고 살아온 백성들의 고장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심성 곧고 자태 수려한 미인들이 많았단다. 전라남도 동부지방에서는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고.

순천엔 도시의 분위기처럼 유순하게 흘러가는 하천 '동천(東川)'이 있다. 요즘 같은 봄날이면 남녀노소의 순천시민들이 모여들고 정겨운 재래시장도 가까이에 있어 자전거 타고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무엇보다 동천의 가장 큰 매력은 하류로 흘러가면서 이사천(伊沙川)과 합류해 남해바다로 향하는데 그 끝에 유명한 순천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부지런한 순천댁들이 모여 있는 역전시장 

매일 새벽 4,5시면 열리는 부지런한 순천댁들의 역전 시장.
 매일 새벽 4,5시면 열리는 부지런한 순천댁들의 역전 시장.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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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변에 있는 역전시장은 이름처럼 기차역인 순천역 앞에 자리한 시장이다. 순천엔 아랫장, 웃장이라는 정다운 이름의 오일장이 있는데 일정이 안 맞아 오일장 날짜에 맞춰 가질 못했다. 아쉬웠던 내 마음을 풀어준 곳이 뜻밖에 알게 된 역전시장이다. 하룻밤 묵었던 순천역 앞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 아저씨가 알려준 이 시장은 매일 아침 4, 5시면 문을 여는 흥미로운 새벽시장이다.

지난 28일 찾은 시장 상가는 물론 직접 재배하고 캐온 채소, 나물 등을 가지고 나온 부지런한 순천댁 들이 펼쳐 보이는 난전이 보기만 해도 풍성하다. 각종 물고기, 해산물이 나와 있는 수산물 골목도 이어진다. 순천 역전시장은 남으로는 남해를 서로는 서해를 끼고 있는 전라남도 수산물의 집합장소다.

떡집에서 갓 만든 따끈한 떡으로 이른 아침밥을 대신하고 후식으로 새콤달콤한 딸기를 사먹었다. 새부리 모양으로 생겨서 언제 봐도 신기한 새조개, 남도의 시장에서만 흔한 갑오징어, 꼬막, 서대회 등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는 것들이 많은 새벽시장. 아낙네들이 모여 앉아 마시는 커피 믹스의 진한 향 또한 절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게 한다.

웃는 인상의 어느 아주머니에게 "어머니, 혹시 주변에 커피 자판기가 있나요?" 물어보니 내 말이 재미있었는지 웃으시며 마시고 가라며 커피믹스 한 봉지와 종이컵을 건네 주셨다. 평소 같으면 한창 잠에 빠졌을 시간, 새벽시장에서 마시는 커피 믹스 맛은 참 특별하다. 더불어 들려오는 순천 할머니들의 질박한 남도 사투리에 웃음 짓게 된다. 새벽시장의 역사를 물어보니 순천댁의 나이와 경륜에 따라 30년 전통에서 50년 전통으로 이어진다.

시장 아낙네들이 수저를 이용해 새부리를 닮은 통통한 새조개를 까고 있다.
 시장 아낙네들이 수저를 이용해 새부리를 닮은 통통한 새조개를 까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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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시장인 만큼 먹거리들이 모두 싱싱하고 저렴한 도매가격이라 순천에서 가게를 하는 상인들과 인근의 고흥, 광양, 여수의 상인들이 주로 찾아온단다.

"오만가지 물건이 싱싱하고 싸고 그러니까 온 천지에서 다 와."

새벽시장 아낙네들에게 '발고기'란 말도 처음 들었다. 물 때에 맞춰 바다 갯벌에 걸어 놓은 발에서 걷어온 고기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따라오는 신선함으로 순천 새벽시장은 발고기전의 대명사란다.

전국적으로도 큰 시장인 순천 아랫장을 비롯 순천의 재래시장엔 이렇게 싱싱생생한 물건들로 넘친다. 순천댁들에게서 들어 보니 순천은 예부터 호남 교통의 요지였으며, 몇 년 전만 해도 고흥이나 여수에서 순천을 지나지 않고는 광주나 서울 같은 대도시로 나갈 수도 없었단다. 지금도 남도 구석구석으로 가는 경전선 기차는 순천역에서 갈아타야 하는 일이 잦다. 그래서인가 기차도 순천역에서 한참을 쉬어간다.

순천시민들의 안식처, 동천

벚꽃, 들꽃들이 피어나 봄 기운이 완연한 동천.
 벚꽃, 들꽃들이 피어나 봄 기운이 완연한 동천.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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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동천은 서면 청소리에서 발원하여 순천 도심을 관통하여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길이 27.8㎞의 하천이다. 하류에서 이사천과 합류하여 순천만까지 느릿느릿 이어진다. 강변의 벚나무, 무성한 갈대, 징검다리, 산책로··· 언뜻 보면 다른 동네의 하천들과 다를 것도 없어 보이지만,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동천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동천변을 얼마간 달리면서 비로소 그 매력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의 하천처럼 주로 산책로 밑에 하천이 흐르면서 내려다보게 되는데, 동천은 사람의 눈높이와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로 발치 아래 가까이에서 흐르고 있었다. 동천이 더욱 정답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이유였다.

하천길은 유순하고 평탄해서 순천 시내에서 동천의 상류지역까지 올라갔다가 하천 반대 방향으로 건너가 다시 순천만이 있는 하류까지 달려가도 두어 시간이면 된다. 확실히 남녘의 봄은 마음까지 따스하게 하고 4월 초순에야 보았던 벚꽃이 활짝 피어나 눈이 즐겁다. 하천변의 노랑 개나리꽃과 연둣빛 나무들도 동천에 찾아온 봄의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인근 유치원에서 소풍 나온 귀여운 아이들이 선생님과 동네 어른들의 손을 꼭 잡고 줄지어 징검다리를 건너는 모습은 흐뭇한 웃음을 짓게 했다.    

하천 특유의 정다운 풍경이 남아있는 동천.
 하천 특유의 정다운 풍경이 남아있는 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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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불알꽃에서 이름을 바꾼 봄까치꽃, 빨간 때깔이 예쁜 자운영, 노랑 민들레 등 들꽃들이 천변에 가득하고 겨울이 지나도 북녘으로 떠나지 않고 텃새가 된 오리들, 댕기머리를 한 해오라기, 까치들도 동천에 나와 봄을 한껏 즐기고 있다. 산책로와 그 옆에 자전거도로까지 만든 도시 하천은 너무 인공화 되어 자칫 무색무취한 곳이 되기 십상인데, 동천은 하천 특유의 풍경과 정취가 남아있어 다행이다. 순천 시민들의 안식처가 될 만했다.

현재의 정답고 편안한 동천의 모습이 되기까지는 순천시민들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1990년대 중반 시에서 동천 하류의 하도를 정비하고 골재를 채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시민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시민들은 개발로 인한 동천과 순천만 생태계의 파괴를 우려했던 것이다.

이후 시민들은 대책 모임을 꾸려 순천만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들을 펼쳐나가게 된다. 순천만 생태계에 관한 조사를 진행하고, 생태자원으로서 순천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나갔다. 10년에 걸친 지루한 싸움 끝에 시민들은 골재 채취 허가를 취소시키고, 하도 정비 사업도 축소시키는 성과를 이뤄내게 된다.

순천역과 버스터미널 앞에 있던 무인 자전거 대여소가 동천변 곳곳에도 설치되어 있어 인상적이다. 하루 이용료가 단돈 천 원이라 동네 주민들은 물론 타지에서 찾아온 여행자들도
손쉽게 이용하기 좋겠다.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앞에도 무인 자전거 대여소가 있어 어디서나 빌려타고 반납하기 편하게 되어있다. 자전거 도로와 함께 시내에도 이런 무인 자전거 대여소가 곳곳에도 설치되어 있다니 순천은 자전거 타기 참 좋은 도시다.

하늘이 내린 정원, 순천만

소설 <무진기행>에 나온다는 정취있는 갈대숲속길 '무진길'.
 소설 <무진기행>에 나온다는 정취있는 갈대숲속길 '무진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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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의 아름다움은 용산 전망대에서 보이는 S자의 거대한 물굽이 풍경으로 유명하지만, 자전거 여행자에겐 또 다른 곳이 있다. 동천과 하류지역의 이사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돼 순천만까지 4㎞에 걸쳐 형성된 갈대밭이다. 말끔한 도시 하천이었던 동천의 풍경도 언제 그랬냐는 듯 원초적이고 야성적인 하천 풍경으로 바뀐다. 하천의 형태도 점점 갯벌의 모양새로 변해 흐른다. 순천 시내 쪽에선 기세등등하던 보행로와 자전거도로가 눈치 보듯 한쪽으로 좁게 나있다.

흔히 순천만을 생태계의 보물이라고 하지만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감성의 보고다. 바람에 서걱이는 갈대는 이미 식물이 아니라 서정의 언어다. 갈대를 악기삼아 내는 바람 소리, 갈대 숲속에서 먹이를 찾는 귀여운 새들의 지저귐 소리를 감상하며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고 드넓게 펼쳐진 길을 달려갔다. 얼마 후에 도착한 순천만에서 해설사에게 들은 얘기로는 흔히 갈대밭으로 알려진 이곳엔 갈대와 비슷하게 생긴 형제뻘인 물억새, 달뿌리풀, 모새달 등이 같이 살아가고 있단다. 덕분에 갈대와 구별하여 알아볼 수 있게 된 좋은 공부가 되었다.

길섶에 나와 있는 안내 팻말에 '무진길'과 함께 써있는 설명이 눈길을 끌었다. 1960년대 전남 순천 출신 작가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의 무대가 바로 이 갈대밭 일대라고 한다. '무진(霧津)'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안개가 자욱한 듯 몽롱한 느낌을 주고, 작품이 의도하는 일탈과 도피의 무대로 더없이 어울려 보인다. 이에 순천시는 이사천 교량교에서 갈대밭 중심인 대대포구까지 3킬로미터의 둑길을 '무진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순천만 갯벌길에서 만난 앞발이 인상적인 농게.
 순천만 갯벌길에서 만난 앞발이 인상적인 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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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의 물흐름에 순응해 동그랗게 모여사는 갈대숲.
 순천만의 물흐름에 순응해 동그랗게 모여사는 갈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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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길을 지나면 순천만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로 가는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입장료 2천원)이 나타난다.  공원 앞에 마련된 거치대에 자전거를 묶어놓고 용산 전망대까지 오가는데 약 1시간 40분이 소요된다. 갈대숲 사이로 길게 놓여있는 나무 데크 산책로와 등산로를 걸어 올라가다 보면 마침내 순천만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부지런히 걸어 올라간 용산 전망대에서 바라 본 순천만은 누군가 정성 들여 가꾸어 놓은 정원 같았다. 가히 하늘이 내린 정원이다.

세계 5대 연안 습지 중 하나인 순천만은 드넓은 갯벌에 갈대 군락과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거대한 갯벌이요 습지다. 국내에서 경관이 가장 아름답고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강 하구를 비롯 갈대밭·염습지·갯벌·작은 무인도 등이 그림같은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는 광활한 논(간척지)·양식장·갯마을·수로·낮은 구릉 등이 어우러져 있어 계절별로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려낸다. 드넓게 펼쳐져 있는 갯벌과 나지막한 산, 농경지, 마을, 강이 함께 어우러진 경관은 세계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이곳만의 매력이지 싶다.

커다란 망원경이 설치된 전망대에서 두 분의 해설사가 상근하며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순천만에 대해 잘 설명해 준다. S자로 흐르는 순천만 곁에 형성된 동그란 모양의 갈대숲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는 얘기가 생각나 물어 보았다. 갈대들이 물이 흐르는 흐름에 순응해 살다보니 자연스레 동그란 모양을 이루게 된것이라고 한다. 순천만을 구성하는 다양한 자연공간들은 자연스럽게 하천과 갯벌로 이어지고 서로를 보듬으며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었다.



태그:#자전거여행, #순천, #동천 , #역전시장, #순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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