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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대 국문과 4학년에 재학중인 표석씨는 학과 통폐합에 반대해 시위하다 유기정학을 받았다. 그 때문에 졸업할 때까지 대학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을 수 없다.
 중앙대 국문과 4학년에 재학중인 표석씨는 학과 통폐합에 반대해 시위하다 유기정학을 받았다. 그 때문에 졸업할 때까지 대학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을 수 없다.
ⓒ 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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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열심히 다녔다는 증거지."

'성적장학금이 대학생에게 어떤 의미냐'는 물음에 한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등록금이 부담되지 않는 학생이라도 장학금으로 '잘하고 있다'는 응원과 격려를 받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이런 장학금을 '당신에게는 절대 줄 수 없다'고 통보받는다면 어떨까?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표석(4학년. 25)씨에게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다. 표씨는 성적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우수한 성적을 받았지만, 장학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됐다. 4년 전 대학 당국의 학과 구조조정에 반발하다 징계를 받은 것이 원인이었다.

지난 17일 중앙대학교의 민주주의를 염려하는 학생들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중앙대 정문에서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민단체와 중앙대 청소노동자, 금속노조 등은 성금을 모아 표씨에게 명예장학금도 수여했다.

26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근처에서 그를 만났다.

너 징계받았어? 그럼 장학금 꿈도 꾸지 마

"'4년 전 일이 주홍글씨처럼 낙인 찍혀 있구나, 배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2013년 2학기 표씨는 평점 4.5점 만점에 4.21점을 받았다. 해당 학기 국문과 4학년 성적 장학금 커트라인은 4.1점. 성적대로라면 표씨는 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홈페이지에 공지된 장학금 대상자 목록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행정 담당자는 표씨가 징계를 받은 탓에 '장학금 지급 제한 대상'이라고 일러줬다. 4년 전, 표씨는 한강대교에 올라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라고 쓴 현수막을 들었다. 중앙대는 그의 시위가 대학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유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공교롭게도 2년 뒤, 중앙대는 장학금 지급 제한 대상에 '학칙 또는 관련 규정에 의해 징계를 받은 자'를 포함하도록 학칙을 개정했다. 적용되는 징계수준이나 기간은 따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징계를 받는 순간부터 졸업을 할 때까지 대학 당국이 지급하는 장학금은 전부 받을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표씨와 함께 한강대교에 올랐던 김아무개(무기정학 처분. 철학과. 25)씨와 같은 날 학교 공사장에 있던 타워크레인에 오른 노영수(퇴학 후 재판 통해 무기정학으로 처분 변경. 독어독문학과)씨에게도 장학금 지급이 중단됐다. 특히 이 둘은 2012년 1학기에 지급받은 복지장학금(김아무개씨)과 국가장학금 2유형(노영수씨)을 환수하겠다는 통보까지 받았다.

"징계받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요. 사회에서 정치범에게도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이 제한되는 것과 비슷한 일이죠. 문제는 한 번 벌을 받았다고 해서 계속 벌 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다는 거예요. 기간에 한정을 안 두니까. 징계 수준도 감안해 주지 않죠. 근신 1주일을 받든, 정학 1개월을 받든, 똑같이 장학금을 못 받게 되잖아요."

실제 많은 대학들이 징계받은 학생에게 장학금 지급을 제한하는 단서 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중처벌이 되지 않도록 기간과 해당 징계수준을 명시하는 것이 보통이다. 연세대는 장학금지급규정 8조에 따라 '유기정학 이상의 징계를 받은 학생에게 당해학기에 한해' 장학금 신청을 불허하고 있다. 중앙대의 규정에는 이런 제한조건이 없다.

연덕원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이 같은 장학금 제한 규정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라며 "특히 학교를 비판하다 징계를 받은 경우에는 징계사유가 명확하지 않을 수 있고, 학교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2010년 그는 왜 한강대교에 올랐나

 8일 오전 중앙대학교 학생 2명이 한강대교 남단 첫번째 아치에 올라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1시간 가량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2010년 4월, 표석씨 등 중앙대학교 학생 2명은 한강대교 남단 첫번째 아치에 올라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1시간가량 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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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씨가 징계를 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시위를 했기 때문이다. 시위를 한 이유는 복잡하다.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이 한마디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당시 문과대 부학생회장이었어요. 학교는 문과대 소속 6개의 과를 통폐합하겠다고 했어요. 판단기준도 명확하지 않고, 그 해 신입생도 받은 상태였어요. 학생들의 의견수렴 없는 결정이었죠. 항의했지만 학교가 학생들을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상황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죠."

고공시위를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강대교 아치에 오르는 일이 문제였다.

"아치에는 사람들이 쉽게 올라가지 못하도록 미끄럽게 표면처리가 되어 있어요. 그래서 신발에 스파이크를 달았죠. 두 명이 함께 한쪽으로 올라가서, 그 중 한 명이 아치를 건너 반대편으로 가야 양쪽에서 현수막을 펼쳐들 수 있잖아요. 제가 건너갔는데, 발 아래로 차들이 쌩쌩 지나다니고, 강가라 바람도 세게 부니까 몸이 휘청휘청하더라고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죠."

한강대교 남단 노들 사거리가 자동차로 꽉 막힌 모습을 보면서, 아치 위에 선 표씨는 '세상에서 버려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해지더라고요. 자동차도 많고, 기자들도 많이 왔는데, 그 사람들과 유리된 기분이었어요. 그 이후에 한강대교 아치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을 한번 본 적 있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먹먹하더라고요."

"고공시위 했던 애라는 소문... 불편하죠"

"그때 일을 후회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후회할 때가 많죠. 군대에 가서도 처음엔 GOP로 배치를 받았다가 다른 부대로 전출조치됐어요. 기무사에서 종종 제 신변을 묻는 질문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복학을 하고 나서도, 저랑 먼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고공시위 했던 애'라고 소문이 나 있으니까, 불편하죠. 장학금도 못 받고. 하하."

2010년 중앙대에서는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한 학생 4명에게 정학과 퇴학 처분(퇴학 2, 정학 2)을 내리는 초유의 징계사태가 벌어졌다. 표씨도 그 중 하나다.

그리고 4년 뒤, 현재 중앙대의 학과 구조조정은 애초에 발표했던 안으로 귀결되고 있다. 당시 폐과 대신 전공으로 남겨 두겠다고 했던 청소년학과, 아동복지학과, 비교민속학과에 대해 지난해 전공 폐지 결정이 내려졌다. 그 이전에 사범대 가정교육과가 폐과됐고, 그동안 경영경제계열 입학정원이 증가했다.

"그 일로 학생운동의 입지가 좁아져서 이렇게 됐다는 평도 있고, 그 일이 있어서 조금 느리게 진행된 것이란 평도 있어요. 제 생각에 그때는 끝까지 저항해 보는 일이 필요했던 때 같아요. 그렇게 조금씩 바뀔 수도 있으니까. 제 인생에 가장 큰 용기였던 것 같아요. 자랑스러워요. 그래서 후회하지만,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올라갈 것 같아요."

표씨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은 17일 그에게 명예장학금을 수여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부터 금속노조, 중앙대 청소노동자 조합, 중앙대 민주동문회 등 성금을 낸 사람들도 다양하다.

"유례가 없는 장학금이잖아요. 제가 좋은 성적을 받아서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활동을 위축시키는 대학에 맞섰기 때문에, 튀어나온 돌이 되어서 준 것이라 생각해요. 모아주신 모든 분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가치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사회에 환원할 예정이에요. 아직 그 방법을 결정하진 못했어요."

학교 대신 두산 노동자들이 준 명예 장학금

 학교를 비판하다 징계를 받고 장학금을 박탈당한 표석씨에게 시민단체와 중앙대 청소노동자 조합은 명예장학금을 제공했다.
 학교를 비판하다 징계를 받고 장학금을 박탈당한 표석씨에게 시민단체와 중앙대 청소노동자 조합은 명예장학금을 제공했다.
ⓒ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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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표씨는 자신이 고공시위를 하고 농성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또 시위를 하더라도 그것이 4년간 꼬리표처럼 붙어 있으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가 상상한 대학은 시트콤 <논스톱>처럼 자유분방한 곳이었다. 마음껏 놀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해도 되는 울타리로 여겼다.

그가 원하는 대학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안녕하십니까' 열풍이 불었을 때, 기명 대자보를 쓴 것도 그 때문이다. (관련기사 : 청소노동자는 짠하지만, 노조활동은 민폐... 왜죠?) 누군가를 밟고 희생시켜야 해서 서로를 이해할 생각조차 안 하는 세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비명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공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선배가 '넌 뭘 하고 싶냐'하고 물었어요. 다들 직업을 이야기하잖아요. 국어교사, 소설가, 기자, 회사원 등. 그러면 꼭 '그게 되면 어떻게, 어떤 걸 하고 싶은데?' 하고 다시 묻더라고요. 대학은 직업을 찾는 공간이 아니라,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지 고민하는 공간이잖아요. 저는 지금 그 고민을 하고 있고, 열심히 찾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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