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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에 걸린 원창연 시민기자가 자신의 컴퓨터 도전기를 보내왔습니다. 일주일이 걸려 썼다는 이 글을 최소한의 편집만 하고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루게릭 환자에게 초기에 나타나는 증상은 대체로 세 가지 유형이다. 구 마비, 손과 팔의 근력 약화, 그리고 두 다리 근력 약화. 이중 나는 세 번째에 해당된다.

어쨌든 발병 후 초기에는 팔에 힘이 남아 있어 컴퓨터를 하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건강할 때 우리가 보통 컴퓨터 하는 모습은 책상에 앉아서 두 손으로 자판기를 두드리며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이다.

처음엔 보통의 사람들처럼 컴퓨터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다리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혼자서는 의자에 올라가 앉는 것도 힘에 부쳤다. 그래서 딸아이 책상 위에 있던 컴퓨터와 모니터를 거실 텔레비전 옆으로 옮겨 바닥에 앉아서 했다.

그러나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두 팔의 힘이 떨어져 자판기를 두드릴 힘마저 없었다. 컴퓨터는 고사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결국 침상 생활을 준비하게 됐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루게릭병을 앓는 환자를 연기한 김명민.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루게릭병을 앓는 환자를 연기한 김명민.
ⓒ (주)영화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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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이젠 더이상 혼자서는 컴퓨터도 할 수 없을 거라 포기하려 할 때 우연히 '정보통신보조기기 지원 사업'이라는 걸 보게 되었다. 그 품목 중에 '스마트나브'라는 게 있었다. 목을 가눌 수만 있으면 컴퓨터를 할 수 있다는 설명과 동영상을 보면서 '잘만 하면 1, 2년은 컴퓨터를 더 할 수 있겠다' 싶어 간절한 마음으로 신청을 했다.

그렇게 신청 후 관계 공무원이 조사를 나왔다. 얼마 후 선정이 되었으니 본인 부담금 20%를 입금하라는 연락을 받고 입금하자, 몇 달이 지나서야 제품이 도착했다. 기다리는 동안 애간장이 타기도 했지만 막상 설치를 해주니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약간의 머리 움직임만으로 손가락 하나 쓰지 않고 컴퓨터를 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신기했다. 더불어 24시간 침상에서 생활하는 나에게 침상에서 큰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게끔 받침대 제작과 모니터까지 연결해 주었다.

거기에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클리키'라는 프로그램은 화면에 키보드를 띄울 수 있었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해 그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클리키는 자판 기능을 뛰어 넘어 예측 기능이란 게 있어서 예를 들어 '원창연'이란 글을 쓰려면 '우'정도만 써도 상단에 '원창연'이 뜬다. 그런 아주 유용한 기능으로 그나마 이렇게 글을 수월하게 쓰고 있다(물론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데 일 주일이 걸렸다).

우리집에 온 사람들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컴퓨터 하는 나의 모습에 엄청 신기해 하며 놀라워 했다. 그리고 네이트온을 통해 문자까지 주고 받으니 마냥 신기해 했다.

이렇게 한동안 컴퓨터를 잘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스마트 나브가 말썽을 부려 작동이 잘 안돼서 애를 먹고 있다. 그러던 중에 대전에 사시는 김광섭님이 그동안 카페에 내가 올렸던 글을 보시고 안구 마우스를 직접 만들어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 아직 목을 조금 가누는 나의 상태를 보시고 스마트 나브 대용으로 쓸 수 있게끔 카메라 마우스를 설치해 주셨다.

아OO 안구 마우스는 낯설고 초점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 많은 분들이 신청해 테스트를 했으나 적응하고 잘 사용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도 아OO 안구 마우스 사용은 엄두도 못내고 아직까지는 목에 어느 정도 힘이 남아서 카메라 마우스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김광섭님이 대전에서 이곳 천안까지 열차와 버스등 대중 교통을 이용하고 자비를 들여서 카메라 마우스를 사서 설치해 주었다. 그후로도 간간이 들러서 컴퓨터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봐주시고 문제가 생겼을 땐 손봐 주시고 고쳐 주시고 가셨다. 정말 천사가 따로 없다. 부담을 줄까봐 항상 식사도 하고 오시고 교통비라도 드리려 하면 절대로 받지도 않으신다.

현재 목에 힘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그 밑의 모든 신체는 전혀 움직이지 않아서 오랫동안 카메라 마우스를 이용해 컴퓨터를 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카메라 마우스를 사용하기 위해선 앉는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 자세를 맞추려면 상체를 끌어올려 최대한 컴퓨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자세를 만들어 주는 등 보호자가 이것 저것 신경을 써야 한다. 나 또한 오랜 시간 앉아 있기도 힘들고 자세도 침대 등받이를 완전 세우고 침대와 등사이에 베개를 끼워야 간신히 몸은 축 늘어진 채 1~2시간을 할수 있다.

그러니 정작 컴퓨터를 하는 시간은 길어야 하루 중 서너 시간이고 대부분 그냥 누워서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하루 하루를 보낸다.

그래도 몇몇 환자들은 이마저도 못하고 계속 누워서만 지내는 것을 알기에 불평, 불만보다는 그들에게 왠지 미안하고 이렇게 컴퓨터를 하고 좋은 사람까지 보내 주심에 신께 감사하다.

그런데 많이 속상하고 안타까운 것은 컴퓨터에 익숙치 않은 어르신들이나 눈조차 깜박거릴 힘마저 없는 환자는 어쩔 수 없지만, 안구 마우스란 게 있으면 컴퓨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바둑 같은 취미 생활을 할 수도 있다. 심지어 게임이나 직접 주식을 사고 팔기까지 할 수 있지만 그 안구 마우스가 천만 원이 넘는다고 하니 선뜻 구매는 쉽지 않다. 막말로 내 아들 녀석 전문대 2년간 등록금에 해당되는데, 당장 먹고살기도 벅찬 나는 절대 못 살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서라도 루게릭 환자에게 컴퓨터를 한다는 건 삶이 의미가 훨씬 커지고 투병시 훨씬 힘이 덜 들지 않을까. 내가 아는 몇몇 환우 중에 5년 이상 고가이지만 구입해서 그 안구 마우스로 위에서 말한 것들을 하며 지루한 투병 생활을 견뎌내고 있다.

심지어 30대 후반에 발병해 2년 후에 전신마비와 위수술과 기도절개를 해서 말도 못하고 눈만 깜박거릴수 있는 상황에서 안구 마우스를 구입해서 자신의 취미 생활을 넘어 어린 딸을 공부를 시키는 사람도 있다.

김광섭님이 나처럼 천만 원이 넘는 안구 마우스 구입을 주저하는 사람의 부담을 줄여 주려고 루게릭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 주시고 신경을 써서 정말 애를 많이 쓰신다. 며칠 전에 덴마크에서 개발했다는 운송비 포함 12만 원 들었다는 제품을 직접 구매해 가지고 오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사양이 그 제품과 호환성을 갖기 위해선 사양이 높은 컴퓨터로 바꾸거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웃기는 얘기지만 아직 목에 힘이 조금 남아서 카메라 마우스로 컴퓨터를 하니까 절박함이 없다보니, 컴퓨터를 새로 사거나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 들어가는 몇십만 원이 선뜻 내키지 않아 망설이고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 이것이 얼마나 루게릭 환자에게 유용한지 말을 못하고 있어 많은 분들에게 죄송하다. 빠른 시간 내에 테스트를 해보고 자세히 설명을 할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기능성과 편리함이 천만 원이 넘는 안구 마우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근접하길 바라고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당장 내가 알고 있는, 나보다 상태가 안 좋은 그래서 단절된 몇몇 환자들과 소통도 할 거라 기대한다.


태그:#루게릭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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