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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학교 식당의 식재료 납품은 최저가격을 제시하는 사업자에게 돌아간다. 반대로 학생들에게 간식을 판매하는 매점의 운영권은 최고가격을 제시하는 사업자에게 낙찰된다. 학생들의 먹거리가 가격경쟁으로 결정이 됐을 때, 사업자는 최대의 이윤을 올리기 위해 원가 절감을 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친환경' 도입했을 뿐인데 학교가 달라졌다

영림중학교(서울시 구로구)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친환경 학교매점을 운영한다.
 영림중학교(서울시 구로구)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친환경 학교매점을 운영한다.
ⓒ 영림중학교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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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과 경기도의 학교에서 식중독 사고가 발생했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학교 급식 안전사고와 더불어 학교 매점의 먹거리도 우려스럽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시교육청의 친환경 식재료 비율 50% 축소 방침에도 굴하지 않고 70%대를 유지하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친환경 학교매점 '여물점'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영림중학교(서울시 구로구)는 학생들의 건강권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교육환경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 영림중학교는 학교와 학부모운영위원회에서 교장공모제를 통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의 평교사를 교장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는 심사과정의 절차를 문제삼으며 임명을 계속 거부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공모제를 통해 선출된 박수찬 교사는 현재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기자가 살고 있는 동네에 있는 학교이기도 해서 기자는 출근길에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는 박수찬 교장을 자주 본 적이 있다.

학교 매점의 먹거리 문제와 관련해 지난 14일 영림중학교 김윤희 협동조합 이사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이사장은 친환경 매점을 만드는 과정에서 교장의 도움이 많았다고 전했다.

"친환경 매점을 만들려면 책임의 주체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여럿이 운영하는 협동조합 형태가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교사와 학부모의 좋은 뜻이 모이자 교장이 더 많이 공부하면서 도와줬다."

매점수입이 학생복지에 쓰이는 학교

매점에서 판매되는 친환경제품들은 낱개포장으로 나눠서 저렴하게 판매도 한다
 매점에서 판매되는 친환경제품들은 낱개포장으로 나눠서 저렴하게 판매도 한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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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림중학교 친환경 매점 설립은 학교 매점 먹거리의 품질을 조사하게 된 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학교 매점에서만 판매한다는 제품들은 제조업체나 재료가 신뢰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고, 두 해 정도의 모니터링 결과 갈수록 품질이 떨어졌다.

학교는 공개입찰을 통한 사업자 선정 기준에 '친환경 제품으로 80% 이상을 판매할 것'을 명시했다. 하지만 낙찰을 받은 사업자는 '친환경 제품으로는 이익이 나지 않는다'며 포기했고, 두 번이나 유찰됐다. 결국 학부모들은 학교와 매점운영권을 수의계약했고, 교육부로부터 사회적협동조합 인가를 받았다.

'여유롭고 물좋은 매점'이라는 뜻을 담은 이름 '여물점'은 학생들의 공모를 통해서 선정됐고, 간판과 외벽 인테리어는 학부모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어머니들이 무보수 자원활동을 하면서 운영의 묘를 터특했다. 김윤희 이사장은 학교 안에서 쓰이는 돈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다시 학생들의 교육복지로 돌아가는 순환이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이젠 아이들이 더 좋다고 이야기해요"

- '여물점' 운영을 시작한 지 1년 6개월이 됐다. 수익금은 어떻게 쓰이는가.
"처음에는 유통과 판매에 대한 경험을 쌓기 위해서 3개월간 자원봉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보수를 받는 상근 활동가 두 명이 있다. 임대료·인건비·공과금 등을 제외하고 남는 수익은 모두 학생복지에 쓰인다. 학생들에게 간식이나 쿠폰을 제공하기도 하고, 지역 아동복지센터와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나가는 기관에도 지원해 주고 있다."

- 학생들이 얼마 못 가서 문을 닫을 것이라고 걱정했다는데.
"화학첨가물이 안 들어가서 맛도 없고 비쌀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램(g) 당 가격과 재료를 분석해 비교해 줬더니 학생들이 안 좋은 과자를 비싸게 사 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생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매점에 친환경 제품이 있어 더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 학생들에게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교육이나 홍보를 하는가.
"매점에서 활동가들이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교육하고, 책 읽어주는 학부모 모임에서도 음식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홍보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사회적 경제에 대한 수업도 한다. 매점을 누가, 왜 운영하는지도 알려 협동조합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가 높아졌다."

"매점을 학부모들이 운영하다 보니 학교폭력도 ↓"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영림중학교 매점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영림중학교 매점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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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학교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일 텐데, 성과가 있는가.
"지난해 방문객들을 맞느라 무척 바빴다. 특히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친환경 매점을 설립하고 싶어한다. 이런 매점을 설치하는 데에는 행정적인 절차뿐만 아니라 학교장의 의지, 행정실·교사·학부모의 참여가 있어야 실행된다. 하지만 '기존의 것을 바꿔야 한다는 번거로움' 그리고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나서기를 부담스러워하는 학부모들의 생각'이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경기도에 친환경 매점 설치를 준비하는 학교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 교육청과 관련 행정기관의 도움은 있는가.
"서울시교육청만 봐도 학교 급식에 들어가는 친환경 식재료 사용을 오히려 줄이라고 하지 않느냐. 교육청에서 학생들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시장경쟁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하면 안 된다. 급식 재료의 최저 입찰이나 매점 임대료의 최고가격 입찰 방식을 유지한다면 학생들은 안 좋은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 우리 학교는 급식 재료에 친환경 재료 포함 비율을 70%대로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좋은 음식을 학생들에게 주기 위해서 친환경 매점을 시작한 것이다."

- 매점 이익을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것 외에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매점의 수익금을 다시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순환이 여러 번 이뤄져 공적자금의 효율이 높아졌다. 사회적협동조합 인가를 받을 때 교육부의 담당자에게 공적자금의 순환을 설명했더니 관심을 보였다.

매점을 협동조합 형태로 학부모들이 운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교가 깨끗해지고, 학교폭력도 사라지는 등 교육환경이 많이 좋아졌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접수되는 폭력 유형에도 우려할 만한 내용이 없어졌다. 교사들도 아이들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다른 학교에도 우리와 같은 운영방식의 친환경 매점이 많이 전파되면 좋겠다."

급식·매점에 '이윤'이 끼어들면 복지는 후퇴

영림중학교의 친환경 급식과 매점운영은 학교와 학부모들의 관심과 참여 의지가 높았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학교가 알아서 하도록 맡겨두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행정·제도상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교육부의 의지와 교육감의 재량으로 학생들의 건강한 먹거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학교 급식과 매점이 경쟁을 통해서 이윤을 만들어내는 시장으로만 기능한다면 바람직한 학교 교육의 가치와 목적 달성은 점점 멀어질 것이다.

친환경 먹거리를 보장하는 것은 교육 복지의 기본이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은 '농약은 과학!'이라는 학교 급식 강연 내용 때문에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인식 전환을 위해 영림중학교의 사례를 관심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태그:#영림중학교, #여물점, #친환경급식, #학교매점,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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