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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붕붕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다행히 세인트에센 역에서 리옹까지 가는 기차가 1시간에 한 대 꼴로 있었다. 멀끔하고 쾌적하다. 아침부터 또 빵과 유제품을 먹었다. 서둘러 9시 50분 기차를 타고 리옹시내로 가서 고속 공항철도를 타야 한다. 고속 공항철도는 리옹공항까지 곧바로 연결된다. (관련기사 : 구걸하면서도... 참 대단한 프랑스 거지)

표는 기계에서 뽑아야 하는데 말이 죄다 불어라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다행히 무슬림 현지 여성의 도움을 받아 티켓을 손에 넣긴 했으나 본의 아니게 나는 25세 이하 여성, 남편은 28세 남성으로 세월을 10년 가까이 거슬러 젊어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불어를 읽을 수 없으니 문맹이요. 그녀가 우리에게 뭐라고 묻는 듯한데 대답을 못 하니 언어장애인인 셈이다. 우리 부부가 눈만 껌뻑껌뻑하며 쳐다보는 사이, 그녀가 기계를 조작하더니 우리 손에 이와 같은 기차표를 쥐어준 것이다. 그냥 도와주는 것이 감사해서 방실방실 웃고 있었더니 동안처럼 보였나 보다. 그것도 10년이나 젊게. 난감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눈이야 귀엽게 웃고 있으면 된다지만 이 목주름을 어찌할까나."

분명 한국 에이전시 직원은 우리가 있는 곳을 알려만 주면 다음은 알아서 업체에서 해 줄 것이라 말했지만, 그건 대도시나 많은 여행객이 드나드는 곳에서나 해당하는 말인가 보다. 여하튼 우린 우리 위치를 상냥하게 통보했다가 상황이 그게 아님을 알고 업체를 찾아 나서야 했다. "노란 차, 노란 차"를 소리 내어 되새기며 공항 위층, 아래층을 훑었다.

"찾았다. 노란 차"

우린 정말 많이 기다렸는데 업체에서 나온 젊고 반반한 녀석은 5분밖에 기다리지 않았다고 하니 왠지 반가움이 확 줄어든다. 노란차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영어를 서툴게 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서류를 챙겨 주시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렌트카 쪽으로 안내한다. 역시나 입구에 들어설 때 문을 확 열어젖혀 놓았던 그 차가 맞다. '흐홍~ 붕붕아~'

우리 붕붕이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프랑스 자동차 회사인 푸조사에서 만든 SUV로 디젤 엔진이다. 우리가 이 차를 택한 건 여타 다른 이유 없이 행사 상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조기예약 할인 해택까지 받게 되어 90여일 남짓한 기간에 보험(Super Insurance)에 가입하고도 370여만 원에 리스했다.

부연 설명을 더 하자면 리스와 렌트는 다르다. 렌트는 남이 타던 중고차를 빌리는 것이지만 리스는 새차를 받아 타다가 반납하는 방법이다. 한국에서 자동차를 빌려 캠핑하는 많은 사람들이 택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도움이 되시길... 여하튼 엉덩이가 묵직하니 푸짐한 붕붕이가 마음에 든다.

우리를 제외한 몇 고객은 몇 마디 하지도 않고 가 버린다. 그런데 우린 푸조 차도 낯선 데다가 내비게이션(아래 내비)이 한국 것과 너무 달라 도저히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난감하다. 떠나고 싶은데 떠날 수가 없다. 도저히.

아줌마는 얼른 동양인 가족이 본인 눈앞에서 사라져 주길 바라는 듯한데, 기름이 적다는 사실에 차는 출발할 기세가 없다. 주유소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가까운 까르푸 매장의 어떤 정보를 입력해도 유로로 시작하는 이 내비게이션은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곳 이용자 중 역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우린 그곳을 얼른 떠나지 못하고 비비적 대고 있었다. 까르푸 매장 좀 내비로 찾아봐 달라고 해도 아줌마는 시도하는 듯 하다가 안 된다는 표정과 몸짓뿐이다. 그럼 주유소를 찾아보래도 시도하는 듯하다가 이내 손바닥을 뒤집어 올려 안 된다는 몸짓의 반복. 기계 작동에 대한 지식도 없는 듯하고 동양인 가족을 끝까지 책임지고 도와주겠다는 의지는 더더군다나 없어 보이는 그들의 공간에 있는 것이 시간만 허비하는 느낌이다.

당장 운전해야 하는 남편의 불안감과 스트레스, 짜증은 매우 커 보인다. 억지 웃음을 짓고는 있지만, 붕붕이만 데리고 이역만리 프랑스의 아득한 리옹 어느 인적 드문 길가에 덜렁 버려진 느낌이다. 진정 버려졌다.

어쨌든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 판단되어 아줌마에게 "여러모로 수고해 주어서 고맙다"란 말을 남기고 우린 길거리로 붕붕이와 함께 나왔다. 그녀의 표정에서 '나 머리털 나고 이렇게 수고한 거 처음이야. 고맙게 생각해'하는 느낌이 묻어났다. 어쩌란 말인가.

어, 간다. 자동차가 간다!  우리 붕붕이, 푸조 5008
▲ 어, 간다. 자동차가 간다! 우리 붕붕이, 푸조 5008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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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세한탄하기 좋은 날이야

일단 시동을 걸면 자동차야 굴러는 가는 것이고. 서서히 감을 익힐 즈음 전혀 의도하지 않았으나 우린 고속도로에 올라왔다. 기름이 간당간당하는 차를 끌고 달리면 큰일난다는 생각에 가장 먼저 발견한 간이 휴게소로 얼른 들어갔다. 식사 때가 되어 허기진 배에 뭐라도 채워넣으려고 들어갔지만, 식사의 종류와 가격 때문에 마음이 더 착찹해진다.

비싼 값에 너무나 소박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신용카드도 에러가 나는 상황에 우린 어쩌자고 고속도로에 올라왔는지 심란하기만 하다. 뭘 먹은 들 배가 부를까 싶다. 마음이 헛헛하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해 할 때 사장 아저씨가 다정한 눈빛으로 우리 쪽을 보며 방긋 웃는다. 별안간 마음이 울컥한 나는 인사한 후 다가가 만난 지 10분도 안 된 처음보는 프랑스 남자에게 주저리 신세 한탄을 시작했다.

나: "우리 가족은 어제 프랑스에 왔어요. 오늘 처음으로 차를 받았는데 업체 직원은 잘 알려주지도 않아요. 심지어 내비게이션도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안 가르쳐주고. 정말 당황스러워요."

'처음 만난 사람을 붙잡고 나만 줄기차게 떠들고 있구나'를 알아챈 순간 사장님을 보니 "그래서 내가 무엇을 도와주어야 할까요?"란 느낌의 황당하고 불쌍한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우앙 친절하시다.

나: "아, 그래서 말인데요. (순간 집나간 정신을 붙잡아 앉히고 머뭇거리며 뜸을 들이다 주유소 쪽을 가르키며) 우리 차는 디젤인데 어떤 색깔 주유기에서 기름을 넣어야 해요?
사장님: (좀 어이없어 하시며) 검은색이요. 디젤차는 프랑스 어디에서나 무조건 검은색을 넣으시면 됩니다."

주유소까지 왔다. 검은색 기름을 넣으면 된다는 것도 알았다. 혹시라도 기름을 넣었는데 카드 오류로 계산이 안 되면 아까 그 착한 사장님에게 카드를 빌려 계산한 후 우리의 현금을 주면 되겠다는 계산이 섰다.

일단 들이댄다. 그러나 역시 친절한 사장님은 자신의 가게에서 두 번이나 주유소 쪽으로 오셔야 했다. 먼저 용량이 작은 자동차 주입기에 서 있는 우리를 큰 차량용 쪽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나오셨다.

또, 기름은 내가 넣지만 한국의 셀프주유소와는 다르게 계산은 사무실에 가서 직원에게 수납하는 '중간자동화시스템' 방식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는 우리를 보시고는 왠지 신세한탄 해도 괜찮을 것 같은 편안한 미소를 짓는 사장님이 함께 또 나오셔서 남편을 사무실로 인도했다.

잠깐 들렀다 각자의 길로 가는 사람들을 수년간 대하는 곳이건만 사장님의 따뜻한 배려와 도움은 십여 년 같은 자리에서 장사하며 단골손님을 대하는 정성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린 프랑스 고속도로를 타고 달린다. 요금 정산은 우리도 모르겠다. 일단 지금은 달린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새 차 냄새가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한국을 떠나 호텔 생활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이리저리 치이고 고단했던 두 달간의 생활을 청산하고 우리만의 오롯한 공간이 생겼다.

붕붕이와 함께 우리의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달리니 신이 난다. 점점 신 난다. 그날 햇빛이 참 좋았어.

 구름도 많지만 파란 하늘이 더 많다. 우리의 여행도 파란 하늘 같길.
 구름도 많지만 파란 하늘이 더 많다. 우리의 여행도 파란 하늘 같길.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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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맞벌이 가족 리씨네 여행기'는 2012년 다녀온 유럽여행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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