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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

두통이 찾아왔다. 근래에 들어 체기를 동반하고 찾아오는 두통인지 아니면 혹여 내 몸에서 몹쓸 병이 자라는 건 아닌지 하는 불안감은 벌써 새드 엔딩의 소설 한 편을 써내려 간다.

작년까지 내 직업은 '직장맘'이었다.

이것이 직업일까 싶지만 서른이란 나이를 전후해서 갖게 된 이 이름 때문에 난 때때로 많이 울컥하고 서글프고 또한 그래서 억울할 때가 있었다. 글쎄 누군가는 말하겠지. 밥 벌어 먹고 사는 게 다 그렇지, 누군 얼마나 여유 있게 사는 것 같냐고.

그럼에도 난 내 힘으로 아이 낳아 기르며 직장을 다닌다는 것이 많이 버거웠었다. 출산 후 수술할 일도 몇 차례 생겼고 평생 친구로 함께 가야 할 병도 그때 모두 얻었다. 쉼과 회복이 필요했기에 휴직을 결정했다.

아침마다 맞벌이 부모를 둔 이유로 눈곱도 떼지 않고 억지로 숟가락을 들어야 했던 아이들도, "경제생활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여자도 경제적 책임을 함께 지는데 당신은 '남자로 사는 게 힘들다'는 소리만 하고 가사를 도와주지 않느냐?"고 주기적으로 앙앙대고 대드는 마누라 덕에 안팎으로 심신이 지쳤을 남편에게도 쉼과 사랑의 회복이 필요했다.

그렇게 다섯 살, 일곱 살 딸을 데리고 우린 5개월의 여행을 감행했다. 태국과 터키 등지에서 2개월을 여행한 후 유럽으로 건너와 3개월 동안 천천히 캠핑을 했다.

대한민국 여자들은 나보다 더 진중히, 요란스럽지 않게 현실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듯하다. 무던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그네들이 아닌 '한 번 사는 내 인생에 대한 애착이 넘쳐나는, 올바른 삶의 방향에 대해 늘 고민하여 얻은 나름의 답을 실천하고자 애쓰는 사람'과 리씨네 여행기를 함께 하고 싶다.

안녕, 숨가뻤던 일상~

일단 가자. 숨가뻤다고 힘들었다고 징징대던 나의 일상을 뒤로 하고 도전하자.
 일단 가자. 숨가뻤다고 힘들었다고 징징대던 나의 일상을 뒤로 하고 도전하자.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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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과 터키에서 호텔생활을 해야 하는 고로 캠핑 장비는 때가 되면 현지에서 모두 구입하기로 했다. 한글 해득이 시급한 큰 딸을 위해 들었다놨다를 반복하며 선별한 얇은 책 20여 권에, 남편과 내가 읽을 책 10여 권을 넣으니 트렁크 반이 찼다. 부피는 반이라지만 무게가 너무 묵직해 바퀴가 얼마나 힘들어할지 느껴진다. 어쩌면 여행의 중간에 유럽 어느 모처의 쓰레기장에서 바퀴 빠진 채 발견될지도 모르겠다.

국제 미아가 발생되지 않게 나는 중간 크기의 배낭 하나를 책임지고 두 손은 항상 아이들을 챙기기로 했다. 그렇다면 그 무거운 트렁크와 엄청 큰 배낭은 남편 차지다. 이 남자와 대학 캠퍼스 커플로 시작해 가정을 꾸리기까지 많은 추억을 쌓았지만 가장 짠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나와 같은 체급임에도 남자란 이유로 무거운 짐을 어쨌든 혼자 감당하려고 애쓸 때였다. 이번 여행에도 남편의 어깨와 팔은 너무 고단할 것 같다.

새언니를 통해 얻은 고춧가루 500g 두 팩이 트렁크 속의 책 사이에 끼워졌다. 호텔생활을 하는 두 달 동안엔 트렁크 속 짐 사이에서 완충작용을 할테지만, 두 달이 지나 본격적인 유럽캠핑이 시작되면 어느 날은 닭도리탕으로 변하고 어느 날은 김치가 되어 우리의 입맛을 위로할 테지.

일단 가자. 숨가뻤다고 힘들었다고 징징대던 나의 일상을 뒤로 하고 도전하자. 어린이집으로 각자 직장으로 번잡스럽게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제대로 가족같이 살아보지도 못했던 우리의 일상을 뒤로 하고.

덧붙이는 글 | '맞벌이 가족 리씨네 여행기'는 2012년 다녀온 유럽여행기 입니다.



태그:#유럽캠핑, #맞벌이가족,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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