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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도 무작정 흙을 뒤집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먼저 어디에 무엇을 얼마나 심을 것인가를 결정한다. 다음은 심을 작물의 특성, 예를 들면 키가 큰 식물인지 알뿌리식물인지 혹은 줄기식물인지 등을 고려하여 두둑을 높이 치거나 줄기 뻗을 공간을 확보해주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심을 작물의 위치를 정하고 땅을 분배하는 밑그림을 그린다. 이때는 가급적 연작을 피해 내년에 무엇을 어디에 심을 것인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인데 상당한 농사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본다. 쇠스랑으로 흙을 뒤집는 일은 그 다음이다.

텃밭을 뒤집기 전에 퇴비를 고루 뿌리는 일부터 시작한다.
▲ 퇴비 뿌리기 텃밭을 뒤집기 전에 퇴비를 고루 뿌리는 일부터 시작한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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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마다 밭을 만드는 일종의 성형 시술을 하는 중이다. 자연농법을 지향하는 분들은 아예 밭을 갈지 않은 무경운을 실시한다고 들었다. 무경운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겠지만 나는 밭을 뒤집어 주는 편이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풀 관리도 그렇지만 일단 외형적으로 밭이 단정해 보인다는 점 때문에 선호하는 편이다.

밭을 만드는 일은 경운기나 관리기를 사용하면 쉬워진다. 나 역시 몇 번은 경운기로 밭을 갈았던 적도 있으며, 지금도 기계를 이용한 밭갈이를 반대하지 않는다. 아마 텃밭 면적이 넓다면 금년에도 기계의 힘을 빌었을 것이다.

그런데 금년에 직접 수작업을 택한 이유는 특별한 일도 없는 터라 천천히 운동삼아 해보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 이제 나의 경험을 사주는 곳은 없고, 용돈만 받겠다고 해도 나를 써주는 직장이 없다는 서운한 현실을 고려한 점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 사람의 가치가 저평가된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산다. 때문에 그렇게 텃밭 농사라도 하면서 그야말로 완전한 폐품 신세는 면했다는 자기 위안거리를 만들고자 했던 속생각도 있었던 것이다.

아마 기계를 썼더라면 넉넉잡고 사흘이면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괭이와 삽으로 하는 과정은 더디고도 땀나는 일이었다. 먼저 밭에 퇴비를 흩뿌린 후 쇠스랑으로 흙을 뒤집어 섞어주고 흙덩이는 잘게 부수는 일이 기초를 잡는 우선이다.

쇠스랑은 조금은 거칠게 보이며 또 다른 수작업 농기구에 비해 무거워 아무리 요령을 부려도 열 번만 흙을 찍으면 저절로 팔에서 힘이 빠지게 하는 농기구다. 쇠스랑이나 괭이로 하는 일은 무조건 힘으로 흙을 내리 찍는다고 잘 되는 일이 아니다. 자루를 쥐는 요령이나 두 발의 간격과 위치 그리고 반동의 원리를 응용하여 농기구를 다루는 자신만의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불끈 들어 올려 힘껏 내리치다가는 아마 몇 번 못해 며칠간 몸살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우선 감자 심을 곳과 야콘 심을 곳에 두둑을 만들어 멀칭한 후 잡은 사진이다.  흙을 뒤집는 일은 스스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생략할 수밖에 없다.
▲ 멀칭한 텃밭의 일부 우선 감자 심을 곳과 야콘 심을 곳에 두둑을 만들어 멀칭한 후 잡은 사진이다. 흙을 뒤집는 일은 스스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생략할 수밖에 없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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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흙을 팠으면 땅을 고르는 일과 두둑치는 일은 동시에 해치워야 한다. 이때는 날이 넓은 괭이와 삽을 사용하는데 그런 농기구 역시 잡는 자세와 숙인 허리의 각도에 따라 피로감을 덜 수 있다. 또 초보자일수록 삽질할 때 욕심껏 흙을 많이 퍼올리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건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 삽에 흙덩이 몇 개 얹어 노닥거리는 것은 세월을 우롱하는 처사요 농사꾼 자격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농사는 힘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경험에서 익힌 숙련된 기술로 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심을 작물을 가늠하여 두둑을 쳤다면 다음에는 비닐 멀칭을 하는 일인데 이 과정은 다소 논란이 있다. 비닐 멀칭이 완전한 자연 농법이라고 볼 수 없으며 작물의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풀을 억제할 수 있고 수분 증발을 막는 등 장점도 있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비닐 사용이 토양 오염의 원인 또 아무래도 자연 상태만은 못하리라는 점을 생각하면서도 후자의 주장에 동의하며 비닐멀칭을 해오고 있다. 비닐멀칭에 대신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앞으로 농부의 과제가 아닌가 한다.

비닐 멀칭이 끝났다고 농사 준비가 다 된 것은 아니다. 날을 잡아 씨앗을 넣는 일, 햇볕에 따른 온도와 습도를 살피는 일, 싹이 트면 북돋아주고 귀찮게 하는 풀을 뽑아 주는 일…. 수확하기까지 과정에서 하는 일을 그것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하늘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선 3월은 밭을 밭답게 만드는 달이다. 나는 지금 차갑고 마른 흙바람 속에서 쉬는 듯 노는 듯 그런 일을 하는 중이다.     

완전한 자연농법이 아니기에 숙지원에서는 음식물과 깻묵 발효시킨 퇴비와 함께 농협에서 구입한 가축 부산물을 숙성시킨 퇴비를 사용한다.
우리는 화학비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대신  농협에서 구입한 퇴비는 1년에 100여포 정도 소비하고 있다.
쌓아놓은 퇴비는 든든한 힘이 된다.
▲ 퇴비 완전한 자연농법이 아니기에 숙지원에서는 음식물과 깻묵 발효시킨 퇴비와 함께 농협에서 구입한 가축 부산물을 숙성시킨 퇴비를 사용한다. 우리는 화학비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대신 농협에서 구입한 퇴비는 1년에 100여포 정도 소비하고 있다. 쌓아놓은 퇴비는 든든한 힘이 된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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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농사는 돈 되는 일이 아니다. 겨우 원하는 작물의 자급자족이나 이룰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다. 그렇다고 텃밭 농사는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다. 일이면서 창조적인 놀이다. 온갖 오염 물질과 헛된 욕망이 넘실대는 세상에서 몸과 마음을 지키는 일이다.

비록 쇠스랑으로 흙을 뒤집는 일이 앞질러가는 시간이라는 토끼와 느린 청 부리는 거북이의 경주나 다름없을지라도 그건 절망이 아니라 아직 살아있음을 의식하는 작은 희망의 축제일 것이다.

비교적 춥지 않았던 겨울, 거기에 가뭄조차 심하다. 촉촉하게 흙을 적시는 봄비를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두둑만들기, #퇴비, #농사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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