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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영화 <홍반장>의 김주혁을 보는 듯 하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나이까지 1972년 생으로 같다.
▲ “천직입니다.” 마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영화 <홍반장>의 김주혁을 보는 듯 하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나이까지 1972년 생으로 같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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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직입니다."

오행구(43)씨는 "일이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사람 좋은 웃음보이며 답했다. 오씨의 직업은 '트랜스포터(transporter)', 개인용달차로 배달일을 한다. 하지만 '배달'이라는 단어 하나로 그가 하는 일을 정의내리긴 쉽지 않다. 옮기고, 떼고, 붙이고… 오씨 스스로 "나쁜 일 빼고 전부다 다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경기 산본에서 일어나는 각종 대소사에 관여하고 있다. 마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영화 <홍반장>의 김주혁을 보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나이까지 1972년 생으로 같다.

지난 5일, 오행구씨와 함께 그의 1톤 용달차를 타고 함께 다녔다. 오씨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가 소파를 옮길 때면 함께 들었고, 에어컨을 떼고 붙일 때면 조용히 손을 보탰다. 보조작업원으로 생각한 주인집 아주머니의 '쓰레기를 버려달라'는 요청에도 군소리 없이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 하지만 이내 몹쓸 허리가 또 쑤셔왔다. 요령 없이 힘으로만 밀어붙인 탓이다. 자연스레 기자의 얼굴엔 미소와 구김이 실시간으로 교차했다.

오행구씨를 봤다. 힘든 기색 하나 없었다. '어떻게 웃음기 한 번 잃지 않을 수 있지'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라고 말하며 씩 웃어보였다. 때문일까 떼고 붙이고 옮기는 와중에도 그의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오씨의 남색 다이어리에 3월 예약이 금세 꽉 찼다.

대학생 딸과 탁구 칠 줄 아는 아빠

오행구씨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두 딸이 올해 각각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됐다. 그는 기자에게 사진을 한 장 보여주며 "예쁘지 않냐?"고 물었다. 사진 속엔 이목구비가 뚜렷한 여학생이 있었다. 여지없이 딸 바보 아빠의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보험도 팔아보고, 건설회사에서도 일했다. 남들 부러워하는 대기업에서도 일했었다. 하지만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순간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의 답은 솔직했다. 오씨는 "하는 일이 고되지만 누구한테 간섭받지 않고 내가 하는 만큼 가장 정직하게 벌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일이 가장 좋은 이유로 "무엇을 해도 응원해주는 집사람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오씨 말대로 그는 바쁜 직장 대신 가족과의 생활을 택했다. 그의 취미는 탁구다. 다 큰 딸들과 함께 탁구를 치며 사는 아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인지 아는 사람이다.

붙이고 옮기는 와중에도 그의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 오행구씨의 다이어리 붙이고 옮기는 와중에도 그의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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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양에서 만난 박미선(49)씨의 집엔 이미 이삿짐이 전부 빠져나간 상태였다. 벽에 걸린 에어컨 한 대와 4인용 소파만 자리하고 있었다. 박씨에게 어떻게 오행구씨를 알고 연락하게 됐냐고 물었다.

"지인이 소개해줬어요. 산본에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오행구씨는 우선 에어컨을 벽에서 제거했다. 이어 손잡이 없는 수레에 소파를 실었다. 그러면서 그는 "뭐 더 옮길 것 없냐"고 박씨에게 물었다. 거실엔 정리해 놓은 박스만 몇 개 남아있었다.

물론 박씨가 오행구씨를 부른 이유는 따로 있다. 그가 제시한 가격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른 곳보다 약간 싼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오행구씨는 "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아했다.

"저는 일한만큼 받습니다. 더 싸거나 많이 받지 않아요. 다만 친절하게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실제로 오행구씨가 활동하는 산본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엔 그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다. 열이면 열 좋다는 말 뿐이다. 특히 친절하다, 덕분에 문제가 해결됐다, 감사하다는 말이 많다. 지역 커뮤니티 특성상 30대에서 50대 사이의 꼼꼼한 주부들이 주로 활동하는 걸 감안했을 때, 그의 명성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오씨에게도 애로사항이 있다.

"학생들에게 연락이 많이 와요.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여대생들이요. 그 중 한 명이 학교 게시판에 저를 추천해줬나봐요."

무슨 소리인가 했다. 그는 '추천받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이랬다. 경기 안산, 수지, 용인 등에서 서울에 있는 학교까지 이사를 몇 번 도왔다. 학생들이 부르니까 무엇이든 다 해결해주자는 마음이 또 동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였다. 한 번 다녀오면 기름값도 안 남았다. 그렇다고 딸 같은 학생들에게 돈을 더 받을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학생들의 전화를 조심스레 거절했다. 돈 때문이 아니다. 지역에 있는 다른 개인용달을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말 그대로 경기 산본 뿐 아니라 전국에 퍼져있는 6만여 개인용달 업자를 고려한 것이다. 상생을 생각한 것이다.

시청에서 먼저 부탁하는 남자, 산본 트랜스포터

전라남도 강진 출신인 오행구씨가 경기 산본에 정착한 지는 이제 3년이 됐다. 전에는 경기도 용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의 부인이 직장 관계로 지역을 옮기게 됐다. 그는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신도시 산본에 정착하기 위해 오씨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오씨는 그것을 '지역사람들과의 동화'라고 했다.

오행구씨는 경기 용인에 살 때부터 지역 봉사활동에 빠지지 않았다. 산본에서도 그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시간을 내 '산본 나눔봉사회'에서 주관하는 러브하우스만들기, 무료급식봉사 그리고 독거노인 무료이사에 참여했다. 특히 독거노인 무료이사의 경우, 이제는 시청에서 따로 오씨에게 부탁할 정도다.

군포시청 주민생활지원과 무한돌보미 센터 관계자는 이런 오행구씨에 대해 "2012년에 집중적으로 큰 도움을 줬다"며 "지역일에 관심이 크고 어르신들께 잘한다"고 평가했다. 오씨는 "돈드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하며 "내 주위에 어려운 사람 있으면 돕고 사는 거죠"라며 스스로를 낮췄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있다. 오행구씨가 아파트 상가 1층에 새로 마련한 그의 사무실이다. 밖에서 안이 훤히 보인다. 문은 따로 있지만 사무실을 둘러싼 칸막이가 1m정도로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다. 그가 무엇을 하는지, 그가 어떤 것을 만들고 준비하는 지 오가며 확인할 수 있다. 문턱 낮은 그의 마음을 함께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산본 트랜스포터' 오행구, 그의 행보가 오늘도 기대되는 이유다.


태그:#트랜스포터, #산본, #홍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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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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