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천장'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천장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학력 차별이나 성 차별 등으로 능력과는 상관없이 승진에서 누락되는 사태를 두고 사용되는 용어다.

아이는 엄마의 품이 그립거나 배가 고파서, 혹은 똥오줌을 싸서 찝찝할 때 많이 운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가 아무리 울어도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거나 우유를 주지 않으면 아이는 이내 무력해지고 우는 빈도가 줄어들고 만다. 울어 봐야 듣는 이도, 보살펴주는 이도 없다는 걸 말도 하기 전에 깨달아버려서다.

요즘 개봉한 영화 속 몇몇 주인공은 살기 위해, 자유를 찾아, 혹은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기 위해 제도권을 넘어서고자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천장이 있는 것 마냥 탈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불합리한 제도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들

노예 12년 의 한 장면

▲ 노예 12년 의 한 장면 ⓒ 판씨네마


영화 <노예 12년>의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 분)은 흑인이지만 자유인의 신분을 가진 이다. 하지만 인신매매의 마수에 걸려 자유인이라는 걸 증명하지 못한 채 남부에서 목화를 따는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했다..

삶의 방향타가 잘못된 방향으로 틀어졌다면 솔로몬 노섭이 할 수 있는 일은 둘 중 하나다. 자유인이라는 걸 증명하든가, 남부에서 탈출해서 가족들이 살던 뉴욕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남부를 탈출할 기회가 있기는 했다.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가는 주인 마나님의 심부름을 틈타 도망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도피행을 가로막는 건 따로 있었다.

그가 심부름을 가는 길에는 한 무리의 백인 남자들이 있었다. 이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장총 혹은 밧줄이 있었다. 흑인 두 명이 목에 밧줄이 걸린 채 서 있었다. 이들 백인 남자의 정체는 백인 사냥꾼. 도망치다 잡힌 노예를 사형시키기 일보 직전의 상황을 솔로몬 노섭이 목도한다.

자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증명하지 못한 채 탈출을 감행하다가 이들에게 붙잡히는 날에는 교수형을 당할 게 뻔한 일인지라, 그는 억울한 노예 생활을 12년이나 감당해야 했다. 백인 사냥꾼은 솔로몬이 노예에서 벗어나 자유인의 신분을 얻을 유일한 기회인 탈출을 가로막는 폭력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또 하나의 약속 의 한 장면

▲ 또 하나의 약속 의 한 장면 ⓒ OAL


또, 삼성 직업병을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방진복이 반도체를 만들 때 제품에 먼지 같은 이물질이 노동자의 몸에서 스며 나오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지 근로자의 건강을 위한 옷이 아니라는 걸 지적했다. 반도체를 만들 때 나오는 유독가스나 화학 물질에 노동자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영화를 통해 목도할 수 있었다.

반도체는 '경쟁'을 통해 만들어진다. 각 작업조마다 경쟁을 시키면 다른 작업조보다 많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안전보다는 빠른 공정을 따라야 한다. 노동자의 안전은 당연히 뒷전으로 밀린다. 손놀림을 빨리 하다 보면 정상적인 속도로 일할 때보다 약품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하나의 약속>과 같은 소재의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분모는 '인간 소외'다.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건강보다는 제품이 우선시되어야 하고, 효율저인 생산성을 위해서라면 일정 부분 노동자의 건강을 담보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탐욕의 제국>이 담았듯, 건강을 잃고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참상으로 나타난다.

백혈병이나 뇌종양 등의 질병이 동일한 노동 환경에서 일어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건강을 상실한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성가신 목소리로 치부하고 만다. <탐욕의 제국>은 건강을 상실한 노동자의 가족이 어떤 방식으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지 못하는지 보여줌으로 <또 하나의 약속>보다 확장된 의미로서의 인간 소외를 보여준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의 한 장면

▲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의 한 장면 ⓒ 루믹스미디어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도 개인이 시스템을 뛰어넘는 건 버거워 보인다.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 분)가 문란한 성생활로 얻은 건 에이즈라는 형벌. 에이즈로 목숨을 잃는 걸 연기하기 위해서는 AZT를 복용해야 한다. 하지만 론은 에이즈 환자들이 복용하는 AZT가 에이즈 세포뿐만 아니라 멀쩡한 세포도 공격한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멕시코에서 본인과 에이즈 환자를 위한 치료제와 비타민을 들여오는데 이건 불법이란다.

미국 식약청의 승인을 받지 못한 '야매 처방'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로렌조 오일>에서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그의 부모가 개발한 치료제 마냥, 론이 만든 처방전은 제약회사가 개발한 AZT보다 부작용이 덜하고 효과가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FDA와 제약 회사에게 태클을 당한다.

미국인의 보건을 담당해야 할 FDA가 에이즈 환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보다는, 검증되지 않은 처방이라는 이유로 론의 효과적인 치료 방법에 아웃 판정을 내린 결과다. 론이 싸워야 하는 건, 악수만 해도 에이즈 바이러스가 옮는다는 현대판 흑사병 에이즈에 대한 편견만이 아니다. FDA와 제약회사의 견고한 카르텔을 론이라는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지 관찰해야만 한다.

누군가는 자유인에서 노예로 전락하고, 누구는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이 서서히 좀 먹는 걸 안타깝게 지켜보아야 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현대판 흑사병에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넘어야 할 산은 멀고도 험하다. 총부리를 들이대기 바쁜 백인 사냥꾼이나 FDA와 제약회사의 견고한 카르텔, 근무 환경이 건강에 치명타를 안길 만큼 위험한 사업장이라는 걸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근로복지공단은 골리앗처럼 궤를 같이 한다.

불합리한 시스템이 가로막고 있을 때, 개인이 시스템의 위압에 밀려 안주하고 있었다면 솔로몬 노섭은 평생을 노예로 살았을 것이고, 삼성반도체 황유미씨의 죽음은 산업재해 판정을 받아내지 못했을 것이며, 론은 법원으로부터 일부 승소 판결을 얻지 못했을 테다.

<노예 12년>과 <탐욕의 제국> <또 하나의 약속>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불합리한 제도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다윗처럼 불합리한 시스템에 맞설 것인가를 관객에게 묻는다. 만일 분연히 일어서지 못하면 서서히 삶아지는 솥 안에서 삶아져 죽어가는 개구리 신세마냥 불합리한 시스템의 밥이 되고 말 것이라는 걸 이들 영화들은 주인공을 통해 교훈처럼 보여주고 있다.

노예 12년 또 하나의 약속 탐욕의 제국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