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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녀 동반자살'을 보도하며 '정부 복지 정책'을 강조한 <MBC 뉴스데스크>.
 '세모녀 동반자살'을 보도하며 '정부 복지 정책'을 강조한 <MBC 뉴스데스크>.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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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언론이 세 모녀의 죽음을 두고 복지 제도를 잘 몰라서 기초생활수급자, 비상생활지원금 신청을 안 한 것처럼 보도했다. 기초생활 수급 신청이 얼마나 어렵고 또 까다로운지 모르면서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말하는 시민단체와 무지한 언론에 화가 난다. 언론은 이 기회에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어떤 사람이 할 수 있는지 자격요건, 신청 절차, 자격 심사를 거친 수급자 인정 과정 등을 심층 취재해서 제대로 알려주길 바란다.

[관련기사] 세 모녀의 비극...제가 처했던 상황입니다

나는 세 모녀가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더라도 수급자 인정이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내 경험에서 비추어 봤을 때 하는 말이다. 세 모녀의 가장이던 어머니가 예순한 살, 두 딸은 삼 십 대이니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테니까. 현재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면 부양가족이 전혀 없는 고아, 독신이거나 적어도 장애등급 4등급 이상이어야 한다.  

설령 장애 등급 판정을 받았더라도 두 딸은 어머니 부양의무자이고, 어머니는 두 딸의 부양의무자가 된다. 당뇨나 척추질환 같은 질병은 노동 능력이 없는 질병이지만 장애등급이 안 나온다.

2013년에 '노원 나눔의 집' 신부님 조언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려고 한 적이 있다. 우리 집 구성원은 거동이 불편하신 여든일곱이신 시어머니, 척추환자인 예순네 살 남편, 당시 군인이던 아들, 지체장애 6등급인 오십대 후반의 여성 가장인 나, 넷이었다. 

그나마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체 장애 6급인 나뿐이었다. 고정 수입이 없는 상태였고, 담보 대출금을 낀 15평 연립주택은 시어머니 명의로 되어 있어, 나는 빚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결심하고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러 가서 보니...

기초생활 수급에 필요한 서류가 만만찮다.
 기초생활 수급에 필요한 서류가 만만찮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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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결심하고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러 가니, 갖춰야 할 서류가 만만찮았다. 우선 본인인 내가 갖출 서류는 사회복지서비스 및 급여 제공 신청서, 근로능력 평가용 진단서, 소득재산 신고서, 지출실태 조사표, 임대 계약서나 무료 임대 확인서, 금융정보(금융, 신용, 보험정보) 제공 동의서였다.

부양의무자에 해당하는 모든 이들의 금융정보(금융, 신용, 보험정보) 제공 동의서, 소득 재산 신고서, 임대계약서, 통장사본 등도 필요했다. 부양의무자는 수급을 신청하려는 이의 처나 남편 자녀와 부모 등이다. 

예순이 넘은 척추환자인 남편의 의무자는 거동이 불편한 여든일곱 시어머니고, 시어머니의 부양의무자는 5남매와 사위였다. 아들 3남매 중 1억5700만 원 이상의 전세나 집을 소유한 자식이 있으면 시어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된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라 남편과 나라도 신청을 하기 위해 시어머니를 둘째 아들 집으로 주민등록을 분리하였다.

나의 부양의무자는 여든이 넘은 친정엄마라고 했다. 나는 이미 친정에서 출가한 딸이다. 친정에 가서 친정엄마에게 금융제공 동의서와 소득 정도, 주택 소유 여부를 서류로 작성해 달라고 해야 했다. 친정엄마가 금융정보 공개 동의 서류를 작성해 줄 것 같지 않아서 말도 못 꺼내고 망설이다가 열흘이 넘어갔다.

고민 끝에 사회복지사에게 서류를 작성해 가면 내가 확실히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을지 물었더니, 서류가 들어가도 장애 등급 3급 이상 정도여야 기초생활 수급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의 경우는 장애가 6급이어서 주 5일 근무 8시간 기준으로 한 달에 60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는 일을 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나마 시키는 일만 해야 하고 선택할 여지조차 없다고 했다. 결국, 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부딪혀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포기하고 말았다.

서류가 들어가도 확실히 기초생활수급자가 될지, 안 될지 모르는데, 따로 떨어져 사는 아들이나 딸, 사위 혹은 부모 등 가족들중 금융정보(금융, 신용, 보험정보) 제공 동의서와 주거 형태, 소득을 공개하려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부양의무제'라는 것은 사회의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요즘 따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자식들은 추석이나 설 명절, 생신 등 일 년에 한두 번 얼굴 보는 정도다. 서글프지만, 자식이 있어도 꼭 그들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으려면 월세 단칸방에 장애 등급이 있거나 자식이 없이 홀로 늙어가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제도의 허점으로 사각지대에 내몰린 사람들에 대해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생각할 때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의 혜택을 받으려면 인간의 최소한 자존심마저 버리고 가난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일을 안 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잠시 허기를 면하기 위해 밥이나 쌀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아 살아갈 방법과 길을 알려달라는 것이다. 또 불의의 사고나 질병, 연로함으로 생활 능력이 없을 때 사회공동체가 보호의 울타리가 되어 달라는 의미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대한민국은 사회안전망에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니라 사회안전망 자체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젊은 작가 최고은씨가 2011년 생활고와 질병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을 때 우리 사회가 그 죽음을 아프게 받아들여 사회안전망을 만들었더라면 이번 세 모녀의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무늬만 복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하다.


태그:#세 모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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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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