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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아침(3월 2일), 대학입학식을 앞둔 스무 살 청춘에게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년도에 대학 새내기가 되는 스무 살 **라고 합니다.

수능 이후에 여행갈 곳을 알아보다 <모티프원>을 발견했었습니다. 방학기간 중 머무르려다, 방문 목적을 정하지 못해 결국 방학동안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돌아보겠다'라는 폭넓은 목적만으로 방문했다가, 허탕치고 돌아올까 두려웠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그저 목적 없이도 며칠 간 머무르고 싶어졌습니다. 선생님도 만나 뵙고 싶고, 혼자만의 시간도 원하고, 구속받지 않는 시간도 느끼고 싶구, 이래저래요.  

최근 개봉한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미앤유> 를 보고 더욱, 일상에서 떠난 공간에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고프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대학교 개강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치만 모티브원으로의 여행을 생각합니다.

이 젊은이가 얼마나 치열하게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를 살고 있는지 이 짧은 메일의 겉가량만으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이영대. 또래의 친구들은 올해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이 청춘을 제법 긴 시간 방황을 계속하고 있다. 친구들이 입시에 매진할 때 미국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만난 의형제들과 함께 귀국해서 한국을 한바퀴 도는 자전거 여행을 했다. 60여일 2200km를 몸으로 달렸고 가는 곳에서 여러 어른들에게 삶의 길을 물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똑 떨어지는 답을 얻지 못했다. 다시 집을 나갔다.
 이영대. 또래의 친구들은 올해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이 청춘을 제법 긴 시간 방황을 계속하고 있다. 친구들이 입시에 매진할 때 미국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만난 의형제들과 함께 귀국해서 한국을 한바퀴 도는 자전거 여행을 했다. 60여일 2200km를 몸으로 달렸고 가는 곳에서 여러 어른들에게 삶의 길을 물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똑 떨어지는 답을 얻지 못했다. 다시 집을 나갔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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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졸업과 입학시즌을 맞아 많은 어른들이 청춘들에게 하는 충고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잘하는 일을 하라'고 주장합니다. 나름의 이유에도 불구하고 청춘들에게 이 두 가지는 모두 성급한 충고입니다.

내가 만나본 태반의 청춘들은 아직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어릴 때는 창조주 부모가 희망하는 바가 세상의 절대선(絶對善)으로 알았고, 청소년기에는 제도가 만든 허들(hurdle)을 넘는데 매진해왔을 뿐입니다.

스스로가 주체가 된 고민은 빠져있었고 그 고민에 몰두해볼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입시라는 허들은 상호협력과 공존보다 경쟁과 승리를 부추기는 시스템입니다.

내 옆친구와의 모든 활동이 '내신등급'이라는 숫자로 환산되고 그것이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구분의 도구로 사용되는 입장에서 학교는 친구간의 우정이 자랄 비옥한 토양이 되지못했고 가정조차 전투를 부추기는 전사의 전략캠프일 뿐이었습니다.

스승이 되어야할 분들은 명문대를 향한 '합격로드맵'을 짜는 책사(策士)로의 역할로 빗나갔고 고지를 향한 전력질주에서 열성인자와 우성인자를 감별하고 열성인자를 도태시키는 일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업이 된 그분들의 이 어이없는 일들을 수업료를 내면서 용인하고 부추겼고 말문이 막히는 그 일조차 내성이 생겨 당사자들조차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거나 둔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 인생을 송두리째 휘두르는 '교육'이라는 것에 '제삼자'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학교가 되어야할 마을은 그들의 자명한 문제까지외면하거나 이용하고 있습니다. 사교육은 수익률 높은 시장이고 비즈니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이들을 주눅 들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충고도  잘하는 일을 하라는 조언도 또 다른 강요일 뿐입니다.

그들을 스스로 방황하게 해야 합니다.  그 방황조차 주체가 되지못하는 시대에 청춘들이 방황의 주체가 되게 해야 합니다.

십 수 년간, 제시된 물음에 출제자가 원하는 답을 하는 훈련만을 받아온 그들에게 스스로 문제를 내고 스스로 답을 찾아 집과 학교를 나서는 기회를 주어야합니다.

가정과 학교 그리고 마을은 단지 그들이 광야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지에 대한 방황의 결과를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청춘이여, 방황하라! 나는 방황보다 더 큰 스승을 보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게 포스팅됩니다.



태그:#청춘,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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