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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은 손해배상 소송에 가로막혀 있다. 노조의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사측이 청구하는 손배 규모가 1천억 원을 넘어섰다. 파업 손배소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일상이 돼버렸다.

법원에서도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에게 수십억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쏟아지고 있다. 또한 파업이 발생하면 노동조합만을 상대로 법적인 책임을 묻던 예전과 달리, 최근엔 조합원 개인에게까지 손배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헌법상 권리인 노동 3권도 손배소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사측이 노조와 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법원의 판결 결과는 어떻게 나오고 있을까. 전국의 대표적인 사업장에서 벌어진 파업 사건을 중심으로 파헤쳐본다. 또한 파업과 관련된 법률과 판례 분석을 통해 대부분의 파업이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배경과 수십 억대 손배소가 가능한 원인을 찾아본다.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이라는 기획을 통해 노동조합과 사측, 법률사무소 등을 통해 입수한 통계자료, 판결, 소송서류, 관련논문 등을 분석하여 파업 손배소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 기자 말

2013년 12월, 수서발 KTX의 자회사설립으로 촉발된 철도의 민영화 논란이 세상을 뜨겁게 달궜다.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은 지난해 12월 9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민영화반대' 파업에 대한 여론은 나쁘지 않았다. 노동자, 시민들의 지지·연대도 이어졌다. 파업 20일째(12월 28일)에는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민영화 저지 철도파업 승리 결의대회'가 열렸다. 현 정부 들어 최대 규모(주최측 추산 10만 명, 경찰 추산 2만 명)의 집회였다.  

정치권의 중재로 역대 최장기간(22일) 철도파업은 마무리됐다. 노조는 철도민영화 반대라는 명분을 얻었지만 파업의 후유증은 크다. 파업참가자 약 500명에 대한 징계추진, 지도부 198명에 대한 기소, 그리고 100억 원이 넘는 가압류와 손해배상 소송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노조로서는 파업에 따른 형사처벌과 징계는 어찌보면 예상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파업이 끝나기도 전에 사측이 거액의 손배소와 가압류 집행에 나서자, 노조는 "금전적 압박으로 노조를 죽이려고 한다"며 분노하고 있다.

역대 철도 파업 손배소 청구액만 565억


2000년대 이후 철도노조 파업손배소 사건을 분석해보니, 철도노조는 파업을 할 때마다 사측으로부터 거액의 손배소송을 당했다(<표1>참조). 손배소는 2002년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총 6차례로, 청구액 합계는 565억 원에 달했다. 이중 2002년 파업에 따른 80억원(노조측 주장 46억 원)은 노사 합의로 사측이 청구를 철회해서 실제 판결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2003년과 2006년엔 사측의 손배청구액 일부를 법원이 인정, 철도노조는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특히 2006년 파업만으로 노조는 이자 포함 100억 원대의 거액을 갚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측은 노동조합만을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2009년을 기점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손배소의 피고에 노조 뿐만 아니라 노조 간부 등 개인이 포함되기 시작했다. 즉 노조뿐 아니라 파업을 주도한 이들에게 함께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었다.

사측은 2009년 9월 준법투쟁과 1일간의 파업 책임을 물어 11억 원대의 손배소를 제기했는데 노조 외에도 당시 노조 위원장 등 3명을 피고로 지정했다. 이 소송은 코레일이 1심에서 전부 패소,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2009년 11월 8일간의 파업 손배소는 피고 숫자 규모가 기존 소송과 다르다. 노조 외에 무려 212명이 소송을 당한 것이다. 청구액도 87억 원에 이르렀으나, 사측이 소송 중인 2013년 청구액을 38억 원으로 감축한 상태다. 이 소송은 4년째 1심이 진행 중이다.  
 
파업 도중에 이뤄진 100억대 통장 가압류 "노조 하지 말란 소리"

전국철도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서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 이사회 개최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철도노동자 "민영화 중단하라" 전국철도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서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 이사회 개최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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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2000년대 철도파업 손배소는 초기엔 노사 합의로 종결짓는 형태를 띠다가, 노조 측에 엄격한 책임을 묻는 단계를 거쳐, 최근엔 노조원들에게까지 책임소재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3년 파업손배소는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코레일은 파업이 끝나기도 전인 12월 19일(파업 11일째) 서울서부지법에 소장을 내면서 노조를 압박했다. 코레일은 그때까지 67억여 원의 손해를 보았다며 노조와 김명환 위원장 등 집행부 187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코레일은 파업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청구액을 높였다. 코레일은 청구취지변경신청을 통해 금액을 162억 원으로 늘렸다. 사측은 변호사비용을 제외하고도 순수 소송비용(인지대, 송달료)으로만 법원에 5800여만 원을 납부했다. 

특이한 건 청구액 중엔 위자료도 포함됐다는 점이다. 코레일 측은 "노조가 불법파업을 강행하여 코레일은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사회 여론과 국민적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며 "그동안 코레일이 쌓아온 브랜드 가치 및 명예에도 크나큰 손상을 입었다"는 이유로 정신적 손해(위자료) 10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뿐 아니다. 코레일은 노조 소유의 부동산(숙소용)과 채권에 대해 총 116억 원이 넘는 금액을 가압류했다. 특히 노조가 사용하는 8개 은행 계좌의 104억여 원을 가압류한 상태다.

노조는 "기본적인 노조 활동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철도해고자와 가족의 생계비와 상조회비마저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며 "법원이 가압류를 받아들인 것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제약하는 횡포"라고 성토했다. 백성곤 노조 홍보팀장은 "한 마디로 노조활동 하지 말라는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노조는 사측의 소송에 대비해 평소에도 파업기금을 별도로 적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코레일은 노조의 통장을 가압류하기 위해 지난 1월 법원에 담보로 현금 35억 원을 공탁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돈은 코레일이 가압류를 해제하거나 승소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회수할 수 없다. 쉽게 말해 노조 재산을 가압류하기 위해 수십억 원의 공금을 사용한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4일 코레일 쪽에 관련 입장을 요청한 상태다. 코레일 홍보문화실은 "담당 부서에 확인 후 답변하겠다"고 밝혔다.

노사간 합의의 여지가 있었던 2000년대 초반과 달리, 최근 코레일은 파업 도중에 가압류와 손배 소송을 제기하는 민첩함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코레일이 거액의 손배소를 거듭 제기는 배경은 무엇일까. 법원이 인정하는 손해액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판결이 확정된 2003년, 2006년 파업 사건을 토대로 살펴보자(<표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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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과 2006년 수십억대 손해배상 판결 근거는

2003년 철도파업은 민영화 법안 철회가 주목적이었다. 철도는 2003년 12월 제정된 철도공사법을 근거로 2005년 1월 철도공사가 설립되기 전까지 국가(철도청)가 관리해왔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는 국가부담 가중, 경쟁력 제고 등을 이유로 철도민영화를 추진했다. 따라서 당시 노사는 철도의 민영화를 두고 치열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노조는 2003년 4월 파업 직전에 사측과 '기존의 철도민영화 방침을 철회하고 법안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룬 후에 대안을 모색한다'는 취지의 노사합의를 한 후 파업을 철회하였다. 하지만 이후 정부가 법안처리를 강행하려 하자 그해 6월 파업에 돌입했다.

사측은 징계절차, 형사처벌과는 별도로 75억 원의 손배소를 제기했다. 법원은 이 파업이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첫째 목적이 정당하지 않고, 둘째 절차상 위법하다는 것이었다.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철도 민영화 법안의 철회는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사항이 아닐 뿐만 아니라, 철도청장(당시 사측대표)이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니므로, 목적에 있어서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법원은 "필수공익사업의 경우 조합원 찬반투표와 조정절차를 거쳐야 함에도, 곧바로 파업에 돌입하였으므로 절차에 있어서도 정당성을 결여했다"고 판시했다.

철도노조는 '민영화방침을 전면 철회한다'는 노사합의를 어긴 사측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법원은 "철도개혁정책은 정부의 정책판단사항으로서 쟁의행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노사 합의는 사회통합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고 아무런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법원은 "입법절차를 강행함으로써 파업을 시작하게 한 커다란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노조의 책임을 전체 손해액에서 40%로 제한했다.

법원의 판결을 요약해본다.

2003년 민영화반대 파업은 목적과 절차에서 정당성이 없는 불법파업이므로 노조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 노사의 민영화 철회 합의는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므로 구속력이 없다. 다만 입법을 강행한 사측의 잘못도 있으므로 노조는 40%를 배상하라.

철도노동자들은 공사가 설립되면서 공무원 신분을 박탈당한다. 이들은 철도청장이 노사합의를 어기고 일방적으로 공사화를 추진하자 파업을 했지만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손해배상 책임까지 지고 만다. 한 발 더 나아가 법원은 '민영화 철회'라는 노사합의를 구속력 없는 정치적 합의로 폄하하면서 파업에 불법의 낙인을 찍고 말았다.  

법원 "2003년 민영화반대 철도파업은 불법" 판단

2006년 파업 손배소의 결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사간 교섭이 결렬되자 노조는 철도상업화철회, 해고자복직, 신규사업외주화 금지, 비정규법안 반대 등을 내걸고 3월 1일부터 4일까지 파업에 돌입했다. 코레일은 파업기간 15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며 손배소를 냈다.

법원은 이번에도 불법파업으로 간주했다. 파업의 목적이 정당했는지는 판단하지 않은 채 절차상 위법을 지적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직권중재회부결정을 했는데도 쟁의금지기간에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여 위법하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제도는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2007년 폐지됐을 정도로 불합리한 제도이며, 당시 중앙노동위는 파업 4시간 직전에야 중재안도 없는 직권중재회부결정을 내렸다"고 반박했다.

파업 직후 노사는 '파업관련 징계 및 민형사상 책임의 최소화 노력'에 합의한다. 하지만 실제 손배소 재판에서는 거의 반영이 되지 않았다. 법원은 노사합의를 감안하더라도 60%의 책임이 노조에 있다고 판단한다. 법원은 심지어 "파업 철회 다음날 시민들이 전철, 고속철도 이용을 꺼려하여 이용률이 떨어질 것임은 경험칙상 충분히 인정된다"며 파업 기간 뿐 아니라 다음날 수입감소분까지 노조가 배상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철도 파업 손해 배상 산정 방식은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 이사회 개최 중단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열차 승강장에서 무궁화호 한 대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 철도노조 총파업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 이사회 개최 중단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열차 승강장에서 무궁화호 한 대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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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철도파업의 손해배상액은 어떻게 산정되었을까. 법원이 불법파업임을 전제로 인정하는 손해는 운수수입(영업손실) 결손분과 대체투입비용에서 절감된 인건비와 연료비, 기타 비용을 공제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노조의 책임비율을 곱하면 손해액이 나온다는 것이다. 손해액은 (A+B-C)×○○%가 된다. 쉽게 말해 파업기간동안 전년보다 감소한 수입만큼 배상해야 한다는 논리다.   

A : 운수수입 결손분(전년도 같은 기간 여객+전철+화물 운수수입-파업기간 수입)
B : 대체인력투입비용 등(초과근무수당, 퇴직자, 군인 등 외부 인력 인건비)
C : 감축운행으로 절감된 비용(연료비, 인건비 등)

공공운수노조 권두섭 법률원장은 이런 계산법이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권 원장은 "운수수입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는데도 단순히 전년도와 비교해서 영업손실 차액을 손해액으로 산출하는 것은 사측의 입증책임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 원장은 "법원이 코레일의 내부문서에 기재된 사항을 그대로 손해로 인정하는 점, 파업과 무관해보이는 내부직원들의 초과근무수당까지 손해액에 포함하는 등 타당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며 "법원이 좀 더 엄격하게 원고에게 입증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말했다.  

"파업은 감수되어야 할 손해"

사상 최대 청구액이 걸려있는 이번 손배소에서도 쟁점은 파업의 정당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목적과 절차가 정당하다는 점이 밝혀진다면 노조는 책임을 전부 면하게 될 것이고, 그 반대라면 거액을 물어주게 될 수도 있다. 사법부의 합법과 불법 판단이 당사자에겐 마치 천당과 지옥을 가르는 기준과도 같다.  

파업 등 단체행동권은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파업=불법'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철도노조의 경우도 임금인상 등 근로조건 개선을 하면 귀족노조의 밥그릇 싸움으로 매도되고, 민영화 반대 등 공공성을 목표로 내걸면 불법파업이 되는 현실과 싸우고 있다.

파업은 자제해야 할 일인가? '감수되어야 할 손해'다. 이건 노조의 주장이 아니라, 1979년 법원의 판례에 나오는 내용이다.   

"헌법의 단체행동권의 행사란 근로계약상 근로의무있는 경우에 그 근로의무의 제공을 거부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며 이를 시민법의 원리에서 본다면 위법된 행위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헌법이 이를 허용한 이유는 노동력을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하고 있는 경제적 약자인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법이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행해지는 한 사용자는 근로자들의 그 위법된 행위를 용인하고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헌법에 규정하여 제도적으로 보장한 것이다."(대법원 1979. 3. 13.선고 76도3657 판결)


태그:#파업손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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