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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이나 과외 없이 아이들 키우기 힘든 세상. 그 비용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하는 엄마들도 많습니다. 학원 교육을 염두에 두고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도 있고 학원을 장려하는 교사도 있는 현실이지요. 공교육이 그만큼 무너졌다는 말이겠지요. 그런 세상에, 그런 공교육에 아이를 보내면서 아이의 자유의지만을 믿고 아이를 키우는 '간 큰 엄마'가 되려고 합니다. 그렇게 키워도 망하지 않을 듯한데, 저와 제 아이를 격려해 주실는지요? - 기자 말

아이가 생사고락을 같이 하고 싶어하는 아이돌 그룹이다. 멤버들이 작곡하고 노래하는, 나름대로 실력파 가수들이란다. 노래하고 싶어서 지방 여기저기서 왔다는. 아이가 그들에게서 꿈을 향한 기나긴 노력과 열정을 배우길 바란다.
▲ 비포군들, 내 아이를 부탁해 아이가 생사고락을 같이 하고 싶어하는 아이돌 그룹이다. 멤버들이 작곡하고 노래하는, 나름대로 실력파 가수들이란다. 노래하고 싶어서 지방 여기저기서 왔다는. 아이가 그들에게서 꿈을 향한 기나긴 노력과 열정을 배우길 바란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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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내내 아이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앞에 놓인 과제가 있는지 하등 상관없이 그저 B1A4의 열혈 팬으로 살았다. 오전 11시 전에는 항상 꿈나라에 가 있고 일어나 밥 먹고 나면 핸드폰으로 B1A4 SNS 발자취를 더듬었다. 그게 끝나면 그동안 갖가지 채널과 방송에 나온 그들의 모습을 다운받아 보았고, 일정을 확인해 그들이 잠깐 얼굴 비치는 프로그램이라도 꼭 챙겨보았다.

오늘 산들이 다크서클 심하다. 피곤한가봐.
엄마, 신우 귀요미 춤 봐봐. 으흐흐흐.

그들이 한 말, 그들의 표정, 그들의 모든 움직임을 눈에 담고 싶어했고, 가족들이 같이 그 아이돌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같이 지켜봐 주길 원했다. 급기야 엄마는 '하루에 5번 이상 B1A4(이하 비포) 얘기하지 마'라며 짜증을 내고 말았다. 언니가 같이 보자고 하는 쇼 프로, 동영상, 사진에 관심 갖던 동생들도 나중에는 '언니나 봐~'라며 외면했다.

나가서 친구들하고 놀아. 만날 집에 있지 말고!
애들 지금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바빠. **이는 아침에 학원가서 밤에 온대. 죽을 지경이래. 미친 거 아냐?

꿈을 위해 뭔가 알아서 하라고 무언의 지침을 내렸건만

아이 말은 사실에 가깝다. 겨울방학과 신학기 준비기간 동안 집에서 빈둥거리는 아이는 없다.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신학기 성적 앞자리 숫자를 바꿀 수 있고, 그럴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더라도 방학동안 아이를 마냥 놀게 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그저 빈둥거리라고 한 게 아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자유시간이 보장되는 동안 자신을 위해, 꿈을 위해 뭔가를 알아서 하라는 무언의 지침을 하달한 것이었다. 방학 무렵 아이가 작성한 목록대로 책을 대량 구입해 주었으니 밑천은 두둑하다고 생각했다. 무언의 지침은 전달되기도 전에 폐기되었다. 아이가 한 것은 그저 비포를 사랑하는 일! 

방학이 겨우 한 달임을 한탄했지만 엄마는 그 30일이 인고의 세월이었다. 어찌 참았는고 하니! 1단계는 마인드 컨트롤. 중3때 저러는 것보단 낫다, 고등학교 가서 저러는 것보단 낫다. 1단계만으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2단계는 반추하기. 엄마도 뭔가에 정신 팔렸을 때 '멘탈'이 약간 삐긋했다, 학창시절 이종환님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 빠져 모두 잠든 밤에 라디오 껴안고 이불 뒤집어쓰고 지샌 밤이 얼마나 많았던가.

1단계를 거치고 2단계를 하루하루 견디는 동안 아이의 방학은 열흘이 채 남지 않았다. 엄마의 마인트컨트롤은 2단계를 건너자마자 바닥으로 곤두박질.

결국 방학을 이렇게 끝내려고?
응?
작가된다며, 되고 싶다며? 너가 좋아하는 비포 애들도 자기 꿈을 이루려고 꽤 노력했을 거란 생각 안 들어? 너는 뭐냐. 네 꿈을 위해 이 많은 시간동안 한 일이 뭐냐고?

목소리 크기만으로 본다면 물음표가 백 개는 붙을 것 같은 엄마의 질책과 비난을 아이는 조용히 들었다.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그 뒤 아이는 바빠졌다. 방학숙제를 해야했으니까. 그런 와중에도 3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아 손을 바들바들 떨며 비포 콘서트표 예매에 성공했고 뿅이봉(응원봉)을 사들였고 비포의 음원차트 상위권 입성을 위해 매일매일 같은 노래를 들었다.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도.

엄마는 얼추 해탈의 지경에 이르렀다. 해탈하든지, 아이를 잡든지 해야 했는데 아이를 잡는 것이 더 힘들게 느껴졌으니 별 수 없다.

지금 맘껏 즐겨라. 나중에 행복해지란 말은 헛소리다.
엄마, 왜 그래?
생각해보니 그런 거 같아서. 지금 너가 하고 싶은 일하고, 나중엔 너가 하고 싶은 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행복한 거지.
엄마, 왜 그래? 무섭게.

계속 맛있는 것만 먹기, 그게 제대로 사는 법

아이는 글 쓴다며 요새에 들어앉으면 3시간, 4시간이 지나도 노트북을 붙들고 있다. 아이는 간간이 요란스럽게 자판 누르는 소리만 들려줄 뿐 누구에게도 자기 글을 공개하지 않는다. 엄마의 검열 욕구는 매번 거절당한다.
▲ 노트북, 너는 아는거니? 아이는 글 쓴다며 요새에 들어앉으면 3시간, 4시간이 지나도 노트북을 붙들고 있다. 아이는 간간이 요란스럽게 자판 누르는 소리만 들려줄 뿐 누구에게도 자기 글을 공개하지 않는다. 엄마의 검열 욕구는 매번 거절당한다.
ⓒ 한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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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 때, 내 친구 중 하나는 식탐이 참 많았다. 그 친구가 어느 날, 떡볶이와 순대, 쫄면과 김밥을 앞에 두고 물었다.

계속 맛있는 것만 먹는 방법 있다. 알려줄까?
그런 것도 있어?
먼저 제일 맛있는 것을 먹는 거야, 그걸 다 먹으면 그 다음으로 맛있는 거 먹는 거지, 또 다 먹으면 그 다음 맛있는 거 먹으면 계속 맛있는 것만 먹는 셈이지!

맛 타령을 그리 해대던 내 친구는 나중에 소문난 맛 집을 돌아다니며 신분을 위장한 채 음식을 맛본 후 깐깐하게 별 점수를 매기는 음식평론가쯤은 되었어야 맞는데 실상은 그저 평범한 주부가 되었다. 다만 동창들 중에 제일 손 크고 음식을 잘 만드는 축이기는 했지만.

하지만 내 친구는 어린 나이에 인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계속 맛있는 것만 먹는 방법'은 행복한 인생을 사는 방법과 같다. 현재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것, 지금 맛있는 거 먹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 말이다. 현재의 고난을 그러모아 미래의 행복을 만든다며 행복을 미루는 일은 슬프다.

아이의 방학은 끝났고 비포의 노래는 3개 방송사 음악프로에서 1위를 했다. 아이는 새학기 교과서를 받아온 후 수학문제집을 풀기 시작했다. 또 만 명이 운집한 비포의 콘서트에 다녀오고 아이는 무대 위에서 눈물 흘린 비포 멤버들의 말과 행동을 며칠동안 가족들에게 생중계했다.

1학년 종업식날은 반 아이들이 돌아가며 써준 편지에서 몇몇 아이들이 '네 소설 참 재밌었어. 꼭 작가가 되길 바라'라고 한 것을 보고 창작열이 급작스럽게 불타오르기도 했다. 늦은 밤 불을 끄려는데 '지금 글이 막 떠오르는데 쓰고 자면 안 돼?' 라며. 이것도 저것도 아이가 하고 싶은 것들이다. '계속 맛있는 것만 먹는 방법'을 아이는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부럽다.

(계속)


태그:#삶의 비밀, #맛있는 것, #꿈,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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