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기사 수정: 21일 오전 9시 38분]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책을 펴냈다. <김승환의 듣기 여행>. 김교육감은 왜 '듣기'와 '여행'이란 방법을 택했을까?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책을 펴냈다. <김승환의 듣기 여행>. 김교육감은 왜 '듣기'와 '여행'이란 방법을 택했을까?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김승환 전북교육감'도' 책을 냈다. 솔직히 선거를 앞둔 후보자들의 '뻔한' 출판기념회 소식과 '스팸' 수준의 문자에 염증이 나는 요즘이다. 때문에 김승환 교육감의 출판소식을 들은 뒤 느낀 점은 '김 교육감도 책을 내는구나'였다. 제목은 <김승환의 듣기 여행>. 하여간 그의 속뜻이 궁금해졌다. 듣기와 여행을 선택한 이유가. 22일 출판기념회를 앞둔 김승환 교육감을 지난 17일 전북도교육청에서 만났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김승환의 듣기 여행>을 읽은 뒤, <화엄경>의 선재동자가 떠올랐다. 53인의 선지식(스승)을 찾아다니며 도를 묻는 선재동자. 김승환 교육감은 이번 듣기 여행에서 6명의 스승을 만났다. 서길원(경기도 보평초등학교장), 박재동(화백), 한홍구(역사학자/성공회대 교수), 안경환(전 국가인권위원장),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안도현(시인)이다. 그들을 만나 '교육'에 대해 물었다. 김 교육감은 주로 듣는 쪽이었다.

안소민(이하 안): "책 재밌게 읽었습니다. 교육에세이, 여행에세이를 읽은 기분이었습니다. '듣기 여행'이라는 기획이 신선한데요. 처음에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요?"

김승환(이하 김): "이 지역에서 저를 가까이 지켜보면서 사안에 따라서는 애정을 가지고 비판도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처음에는 그분들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내가 이런 이런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더군요. 사실 이 맘때쯤 되면 선거를 준비하는 기관장들이 책을 내고 출판회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선출 기관장으로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만약에 하게 된다면 쉽게 하자 생각했죠. 떠오른게 페이스북이었어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야말로 제 생각을 여과없이 내놓은 산물이거든요.

처음에는 3가지 아이디어가 있었어요. 첫째는 페이스북에 쓴 글을 정리하는 것. 둘째는 자서전 내지는 교육 철학서. 셋째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느낌을 정리하는 글. 그래서 세 번째 형태로 결정했죠."

"3년 6개월의 심리적 고갈... 얘기가 듣고 싶어졌다"

 <김승환의 듣기 여행>
 <김승환의 듣기 여행>
ⓒ 휴먼앤북스

관련사진보기

안: "여행에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그런데 왜 하필 듣기 여행이었나요?"

김: "두 가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이유와 이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점. 이 책을 쓴 이유부터 말씀드릴께요. 이 책을 기획했을 당시, 저는 심리적으로 극심한 고갈 상태에 있었어요. 그동안 정말 많은 말들을 쏟아냈거든요. 공식적인 강의만 1년에 100회 정도였으니까요. 머리가 하얀 백지장 같았어요. 이러다 못살겠단 생각이 들었죠. 무장해제의 심정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생각했어요. 간절했죠. 단 중심언어는 '교육'이어야했죠.

이 책을 통해 얻고자 했던 점을 말씀 드릴게요. 내 자신이 전북교육을 이끌어가면서 설정해놓은 중심가치들과 그것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을 누군가로부터 수준 높은 평가를 받고싶단 생각에서였어요. 또한 내가 모르는 것들을 그들을 통해 알고 싶었죠. 제가 지적 탐욕이 좀 많거든요. 지적 욕구를 넘어서는.(웃음)"

안: "6명은 어떻게 선정하게 됐나요?"

김: "4명은 평소 친분과 인연으로 하게 되었고 2명은 주변의 추천이 있었죠. 정혜신 박사는 이전까지는 칼럼을 통해서 보기만 했지, 개인적으로는 잘 몰랐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잘 알게 됐죠. 박재동 화백은 저랑 동갑이에요. 토론회에서 2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저는 박 화백이 참 재밌는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박 화백도 저를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대요. 어쨌든 6명 모두 즐거운 만남이고 여행이었지만, 박 화백은 동갑이라 그런지 무척 편했어요. 특히 둘 다 대학시절 같은 신당동에서 살던 인연이 있어요. 박 화백이나 나나 대학시절 장발이었는데 저는 불심검문에 걸리고 박 화백은 안 걸렸더라고요. (웃음)"

제대로 된 역사교육, 전북부터 시작하자

김 교육감은 서길원 교장과의 만남에선 '혁신학교'를, 박재동 화백은 '창의적 감수성'을, 한홍구 교수는 '역사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다.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과는 '인권'을, 정혜신 박사는 '치유'를 그리고 안도현 시인과의 만남에선 '시를 통한 소통'을 이야기했다. 그 중심에는 '교육'이 있었다. 교육이야말로 김승환 교육감이 추구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종착지였다. 

안: "저는 여섯 명의 만남 중 한홍구 교수와의 만남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몰랐던 우리 지역의 역사를 알게 되었거든요."

김: "제 전공이 법학이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알고 보면 법이라는 것도 역사 속에 존재하는 것 아니겠어요. 개인과 개인의 분쟁에도 역사가 있습니다. 역사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서는 법 해석을 제대로 할 수 없죠. 제가 신림동에서 헌법학 강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곳은 고시합격만을 위해서 모인 곳이거든요. 그곳에서조차 저는 수강생들에게 역사의 필요성을 강조했거든요.

한홍구 교수는 2006년 제가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으로 있을 당시 자문위원을 맡았어요. 정말 한 치도 빈틈없는 분이라는 걸 그때 느꼈죠. 그 후로 인연이 되어, 전북도교육청에서 초청해 역사 특강을 했죠. 학부모도 역사를 알아야 하고 교사도 역사를 알아야 하니까요. 그때 특강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역사가 이런 것이었나?'는 것과 '왜 우리는 학창시절, 이런 역사를 배우지 못했나?'라는 것이었죠."

안: "올해 전북교육청에서는 <동학농민혁명 길라잡이>라는 교과서를 발행했습니다. 저도 미리 훑어봤습니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해서 다시 공부하게 됐는데요. 이 책을 내신 이유는 뭔가요?"

김: "저는 역사학, 문학, 체육, 음악, 미술이 학문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역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배워야하는지 등을 알지 못했거든요. 전북교육에서만이라도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하자는 취지로 시작했죠.

저희가 할 일은 역사적 팩트를 필요한 정도로 체계를 잡아서 학생들에게 제공해주는 거예요. 그 속에서 어떤 역사적 진실을 찾아내는지는 자라나는 학생들의 판단에 맡기자는 생각이죠. 역사에 대한 느낌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쓸 만한 자료가 없더군요. 그래서 역사 교과서 편찬사업을 시작했죠. 첫 번째가 동학농민혁명 교과서였어요. 동학농민혁명은 잘 알다시피 전라북도 고부, 무장, 백산 봉기로 이어지는 농민혁명이었죠. 하지만 이것은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나라 전체의 운동으로 확산됐습니다.

이 운동은 뒷날 의병운동으로 이어지고 독재치하에서는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고요. 그런 의미에서 동학농민혁명 정신은 아직도 살아있다고 볼 수 있죠. 저는 이러한 역사적 흐름과 의미를 학생들이 볼 수 있는 시각과 안목을 갖도록 하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동학농민혁명>에 이어 전라북도의 일제수탈 역사를 짚어보는 <일제 강점기의 전라북도(가제)>도 작업할 예정이에요."

교육감이라는 이유만으로 침묵... 답답했다

안: "정혜신 박사와의 만남에서 교육감님의 인간적인 고뇌가 두드러지게 보였습니다.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과의 만남에선 같은 공직자로서 겪는 갈등도 엿보았고요. 김 교육감 스스로 얘기한 '절대고독'이라는 단어에서 그 고충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재임 뒤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김: "교육감이 되기 전, 대학교수로 살면서 글을 쓰고 책도 많이 읽었죠. 지적 고갈이나 황폐함을 느낄 수 없었죠. 쓰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가 없었어요. 한마디로 자유롭게 쓰고 말했죠. 그런데 교육감이 되고 보니 자유로운 쓰기와 말하기가 안 되는 거예요. 규모가 약간 큰 새장에 갇힌 느낌이랄까요.

교육감 재임기간 3년 6개월 사이에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중요한 쟁점들이 많았습니까. 교육감도 지식인의 범주에 들어가는데, 왜 지식인의 탈을 쓰고 아무 소리없이 침묵해야하나... 그 점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주요 사회쟁점이 있을 때마다 그 사건을 꿰뚫는 핵심이 되는 말 한마디를 왜 아무도 안 하나 싶어서요. 그런 점들이 정말 답답하고 힘들었죠. 하루는 한 선배에게 이 고충을 털어놓으면서 신문에 칼럼을 쓰면 어떻겠냐고 물으니, 그 선배가 '자네는 교수가 아니라 교육감이야'라며 만류하더군요."

안: "전북지역은 참 보수적인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4번째로 학생인권조례를 탄생시켰습니다. 반대도 많았죠. 또 김 교육감은 시국발언 교사들의 징계를 거부해서 기소당하는 등 전북 교육계 인권측면에서 하나의 족적을 남겼습니다. 김 교육감의 성과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단연 '인권'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교육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김: "감수성의 반대말은 불감증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인권 불감증에 걸린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작년에 전북교육청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다고 했더니 학생에게 무슨 인권이냐, 교권이 난린데 그러면서 격렬히 반대했어요. 하지만 저는 하루아침에 학생인권조례를 만든 게 아니거든요. 취임 초부터 두발자유화, 휴대폰 규제 철폐, 현수막 게재 금지 등을 실천했어요. 하지만 인권 현실에 잘 스며 들어가서 실현돼야 발전합니다. 저는 이걸 방사선 효과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데, 마치 방사선이 깊숙이 투과되듯이, 인권 조례가 우리의 인권현실에 스며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안: "어렵게 싹 틔운 이 '인권 감수성'을 계속 지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김: "'인권감수성'을 키워야 됩니다. 인권감수성은 어렸을 때부터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돼야 길러져요. 제가 초등학생들로부터 편지를 받아요. 그 편지를 제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싶다면 전 그 학생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올려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하나의 존재로 존중받고 있다는 것 보여주는 거죠. 이건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일이죠."

 여행 이야기를 하다 김교육감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보여준 남도해양관광열차 티켓. 날이 풀리면 낭만적인 기차여행을 할 거라고 했지만... 아뿔싸! 기한이 지났다.
 여행 이야기를 하다 김교육감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보여준 남도해양관광열차 티켓. 날이 풀리면 낭만적인 기차여행을 할 거라고 했지만... 아뿔싸! 기한이 지났다.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이 책은 한 편의 여행 에세이다. 서길원 교장을 만날 때 낙엽이 깔린 가을풍경은 정혜신 박사와 안도현 시인으로 갈수록 어느덧 차가운 겨울 기운으로 변해 있다. 길 위에서 듣는 이야기이기에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여행지에는 전북지역의 초등학교가 소개돼 있다.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김승환 교육감. 그래서 그가 선택한 여정도 초등학교였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김 교육감에게 물었다.

안: "학교란 어떤 곳인가요?"
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즐거운 곳. 웃음이 나오는 곳. 지적욕구가 끊임없이 분출되고, 채워지고 관계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곳이어야 되죠."

현재 우리 자녀들은 즐거운 학교에 다니고 있을까? 또한 그런 학교가 만들어지기까진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려야될까?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부르는 이유를 새삼 알 것 같다. 올해 6월. 한편으로 걱정스럽고 한편으론 기대되는 이유다.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