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 쇼트트랙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친 가운데,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빅토르 안, 러시아)가 금메달을 따내면서, 빙상계에 대한 국내의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안현수는 한국 쇼트트랙의 역사로 꼽힐 만큼 뛰어난 재능과 스케이팅 실력을 보여줬지만, 대한빙상경기연맹 내 파벌로 인한 악연, 소속팀 해체 등 연이은 불미스런 일로 러시아로 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치올림픽에서 러시알오 귀화한 안현수가 금메달을 따면서 빙상연맹에 대한 비난이 폭주하고 있다. 사진은 안현수의 1000m 시상식 SBS 중계화면 모습

소치올림픽에서 러시알오 귀화한 안현수가 금메달을 따면서 빙상연맹에 대한 비난이 폭주하고 있다. 사진은 안현수의 1000m 시상식 SBS 중계화면 모습 ⓒ SBS


빙상연맹의 부조리, 10년 전부터 이어진 악습

빙상연맹을 둘러싼 잡음은 무려 10년 전인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 쇼트트랙여자대표팀 감독이자 당시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이었던 최광복 코치는 여자 대표팀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해 결국 대표팀 감독에서 해고 당했다. 또 이 사태의 여파로 선수들이 선수촌을 이탈하자, 책임을 지겠다며 김소희 코치가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2년 뒤인 2006년 토리노올림픽 때는 파벌싸움이 절정에 이르렀다. 당시 대표팀은 소위 '한국체육대학파(한체대파)'와 '비한체대파'로 극심하게 나뉘었다. 결국 안현수는 남자 대표팀에서 훈련하지 못하고 여자 대표팀에서 훈련해야 했다. 이러한 모습은 올림픽 경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5000m 계주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직후 안현수만 세리머니에 참여하지 않아 외국 선수들에게 질문을 받을 정도였다.

올림픽 직후에 열린 2006년 세계선수권에선 같은 한국 선수끼리 몸싸움을 벌이다가 일부러 넘어뜨리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레이스로 도마 위에 올랐다. 결국 귀국 현장에서 빙상연맹 관계자와 안현수의 부친 안기원씨가 심한 말다툼까지 했다.

이후 안현수는 국가대표 생활을 이어갔지만 2008년 초 태릉선수촌 빙상장 훈련 도중 펜스에 부딪히며 결국 심한 무릎부상을 당했다. 부친 안기원씨는 국내 언론을 통해 "당시 안현수에게 재정적인 지원이나 적절한 재활치료가 필요했음에도, 빙상연맹은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안현수 선수의 귀화사실이 알려진 뒤 빙상연맹에 대한 잡음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안현수의 부친 안기원씨가 KBS에 출연해 인터뷰를 나눈 모습

안현수 선수의 귀화사실이 알려진 뒤 빙상연맹에 대한 잡음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안현수의 부친 안기원씨가 KBS에 출연해 인터뷰를 나눈 모습 ⓒ KBS


또다시 되풀이된 논란, '짬짜미' '외압', '성추행'까지

이후 빙상연맹을 비롯한 빙상 관계자들은 더 이상 파벌은 없다며 입을 모았다. 하지만 2010 밴쿠버올림픽 직후 올림픽 2관왕이었던 이정수(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고양시청)가 직후에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 진출을 하지 못한 것이 대표팀 코치의 외압 때문이라고 얘기해 또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코치였던 전재목씨가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곽윤기(서울시청)가 이정수가 선발전에서 좋은 등수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준 '짬짜미'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정수 측은 이를 강하게 부정했지만 결국 두 선수는 '선수생활 자격정지 3년'이라는 강도 높은 징계를 받았다. 20대의 두 선수가 3년간 선수로 뛰지 못하는 것은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난 것과 같은 의미다. 추후 연맹은 두 선수의 자격정지 기간을 6개월로 줄이고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외압에서 불거졌던 이 갈등은 짬짜미로 급선회돼 결국 선수만 피해를 입었다.

이 문제로 2010년 4월에 예정됐던 국가대표 선발전은 5개월 가량 미뤄졌다. 이에 안현수를 비롯한 쇼트트랙 팬들이 시위를 펼치기도 하는 등 상황은 급격히 나빠졌다. 당시 안현수는 소속팀이었던 성남시청마저 해체되면서 실업자 신세로 전락해 결국 러시아로 귀화하는 선택을 했다.

이러한 문제는 공정해야 할 국가대표 선발전에까지 번졌다. 안현수의 2008년 부상 이후 2009년부터 쇼트트랙 선발전은 기존 4월, 9월 두 차례에 걸쳐 하던 것을 한 번으로 줄였고, 2010년 짬짜미 파문 이후엔 쇼트트랙엔 맞지 않는 '타임 레이스(선수 한 명이 일정구간을 혼자 경기해 기록을 재는 방식)'를 도입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변수가 많은 쇼트트랙을 단 한 번의 선발전 순위로 개인전과 계주 대표를 나누는 것도 문제다.

이번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빙상계는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대표팀의 장비를 담당하던 코치가 2012년에 한국체대팀 선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결국 코치는 대표팀에서 이탈했고, 올림픽을 불과 20여 일 앞두고 선수들은 코치 없이 훈련해야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일어났다.

그리고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조국인 한국의 선수들과 편치 않은 레이스를 한 안현수가 1500m 동메달과 1000m 금메달을 따낸 것. 이에 국내에선 안현수에 대한 축하 메시지와 함께 빙상연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한국 남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면서 불만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급기야 과거의 일까지 드러나면서 최광복 코치와 김소희 MBC 해설위원에게까지 여파가 미쳤다.

 안현수의 올림픽 금메달로 빙상연맹 사이트가 다운됐다. 사진은 빙상연맹의 안내문 캡쳐

안현수의 올림픽 금메달로 빙상연맹 사이트가 다운됐다. 사진은 빙상연맹의 안내문 캡쳐 ⓒ 대한빙상경기연맹


최대의 피해자는 결국 '선수', 더 이상 놔둬선 안 된다

그동안 빙상연맹의 부조리와 악습은 여러 차례 폭로됐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았고 그 피해는 모두 선수들에게 돌아갔다. 현재 올림픽을 치르고 있는 대표팀 선수들은 부진한 성적과 국내의 여론으로 연일 뭇매를 맞아 분위기마저 좋지 않다. 아직 쇼트트랙은 4종목이 남아 있고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예민한 시기다.

안기원씨는 언론을 통해 이러한 사태가 "한국체대의 교수이자 빙상연맹 고위 임원인 B씨가 독단적인 행정적인 처리를 함으로써 생긴 것으로, 연맹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과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도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감사까지 예상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 선수가 국내에서 자신의 기량을 맘껏 펼치지 못하고 귀화한 것이, 빙상계와 체육계의 부조리와 파벌로 인한 것이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달 특별감사에서 빙상연맹에 대해 지적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자 결국 감사원이 대한체육회에게 빙상연맹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끊임없이 반복된 10년간의 빙상계의 악습. 피해가 일어날 때마다 결국 선수들은 눈물을 흘렸고 제대로 된 훈련도 할 수 없었다. 연맹은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기관이다. 하지만 그동안 빙상연맹은 끊임없는 문제로 팬들의 원성을 샀다. 공정하고 투명해야하는 연맹의 개혁을 위해, 그리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문제를 안일하게 대처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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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 빙상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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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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