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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가 지난 14일 NHK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NHK의 경영위원 가운데 한 명인 작가 햐쿠타 나오키(百田尚樹)의 발언이 이유가 되었다. 일본 주재 미국대사관은 "대사 본인과 워싱턴의 의향이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미대사관이 NHK의 경영위원의 발언을 이유로 인터뷰를 거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햐쿠타는 미군의 도쿄대공습과 원폭투하를 '대학살'이라 규정하고 "도쿄재판은 그것을 덮기 위한 재판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1937년말 난징대학살과 관련해 "1938년에 장제스(蔣介石)가 선전했지만 세계 각국은 무시했다, 그런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3일 도쿄도지사 선거에 입후보한 전 항공막료장 다모가미 도시오(田母神俊雄) 후보를 지원하는 연설 도중에 한 발언이다.

'대학살' 발언과 관련해 미국대사관은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라며 '비상식적'이라고 비판하고 "미국 정부는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인물이 (아시아)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발언을 삼가도록 노력할 것을 바란다"고 경고했다. 난징대학살 관련 발언에 대해서 중국 외교부는 5일 "침략전쟁 하에서 일어난 잔인한 범죄"라며 비난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 인터넷판은 11일 햐쿠타의 발언을 언급하면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은 일본의 역사 재검토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NHK 경영위원을 통해 NHK의 보도 방향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 입장과 동떨어진 것은 방송 않겠다?

지난 2013년 12월 26일, 일본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지난 2013년 12월 26일, 일본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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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쿠타는 우익 논객이자 소설가. 특공대로 출격해서 목숨을 잃은 조부의 인생 행적을 26세 청년이 추적하는 내용의 소설 <영원의 제로(永遠の0)>는 400만부가 팔린 대 베스트셀러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이데미쓰(出光)흥산의 창업자인 이데미쓰 사조(出光佐三)를 모델로 석유회사를 이끌어가며 패권을 다툰 인물의 일대기인 소설 <해적이라 불리운 사나이>는 지난해 7월에 출판되어 80만부가 넘게 팔렸다.

햐쿠타는 트위터에서 과격하고 도발적인 논객으로 유명하다. "매국 민주당", "일본에는 머리가 돈 '반일 저널리스트와 학자'가 많다", "난징 대학살은 거의 날조된 산물이라고 확신했다" 등 넷우익과 비슷한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일본이여, 세계의 한 가운데에서 피어나라>는 책을 아베 신조 수상과 공저로 출판했다. 때문에 햐쿠타는 아베가 공적으로 언급하기 힘든 '자학사관'에 대한 반발을 공공연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햐쿠타는 NHK 경영위원의 일과 개인 견해는 별개라고 주장하면서 문제 발언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는 NHK의 회장 모미이 가쓰토(籾井勝人)의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과 관계되면서 NHK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모미이 회장은 지난 1월 25일 도쿄 시부야(渋谷)의 방송센터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정부가 '오른쪽'이라고 말한 것을 우리가 '왼쪽'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국제방송에는 그런 뉘앙스가 있다, 어디까지나 일본 정부의 입장과 동떨어진 것을 방송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모미이 신임 회장이 NHK를 공영방송으로 생각는가, 국영방송으로 생각하는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발언이었다. 이 발언을 보다 곱씹어 보면 '사실'이라 할지라도 "일본 정부의 입장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방송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선언한 셈이다. 공영방송보다는 국영방송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는 취지에 다름 아니다.

NHK는 세금이 아니라 시청자에게서 수신료를 징수해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다. 정부와 광고주로부터 독립해 다양한 방송을 해야 하는 NHK가 모미이 회장의 발언으로 공영방송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이 쏟아졌다. <뉴욕타임스>는 "아베 정권이 NHK에 정치적 압력을 가해 정권에 가깝게 하려 한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아베는 과거 NHK에 압력을 가해 일본군 위안부 관련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못하도록 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아베는 관방장관 시절인 2001년 도쿄에서 개최된 여성국제전범법정을 다룬 프로그램에 대해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문제 제기해 일부 내용이 삭제되어 방송되기도 했다.

모미이 회장 취임 후 달라진 'NHK의 보도'

일본 공영방송 NHK 모미이 가쓰도 신임회장의 위안부 관련 발언 논란을 보도하는 <아사히신문> 갈무리.
 일본 공영방송 NHK 모미이 가쓰도 신임회장의 위안부 관련 발언 논란을 보도하는 <아사히신문> 갈무리.
ⓒ 아사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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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 모미이 회장은 "어느 나라에도 있었다"라고 발언해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비판을 받았다. 이 발언에 대해서는 지난 달 27일 "개인적인 의견이라도 발언해서는 안 됐었다, 매우 부적절했다"며 해명했다.

후쿠오카현 출신인 모미이 회장은 규슈대학 경제학부 졸업 후 미쓰이물산에 입사해 부사장까지 역임했다. 이후 일본유니시스 사장을 거쳐 특별고문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방송 경험은 전무하고 상세한 경력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2013년 12월 20일 NHK 경영위원회에서 회장에 선임된 모미이는 기자회견에서 NHK에 대해서 "공정 중립, 불편부당을 확실하게 실행할 필요가 있고, 방송법 제1조에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미이 회장은 '불편부당' 문제 대해서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과의 인터뷰에서 "NHK만이 아니라 모든 TV보도가 이상하다"면서 "'반대'한다는 쪽만 보여주고 '주민이 반대한다'라고 말한다"고 찬반을 모두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방송 내용이 '편향되어 있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는 아베 정권의 의향을 정확하게 담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달 모미이 회장 취임 후 NHK의 보도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특정기밀보호법의 보도에 있어서 '강행'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방송한 일이 있었는데, 이는 보도국 간부들이 정권의 의향을 판단해 한 조치임이 분명하다는 보도도 나고 있는 상황이다.

<슈칸분슌>에서는 이번 NHK 회장 선임이 '규슈인맥'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이라 추측했다. 아베 수상은 지난해 12월 10일 NHK와 관계 있는 재계 인사와 저녁 식사를 했다. NHK의 회장 인사를 장기간 취재했던 한 신문기자는 "정권이 NHK 회장 인사에 이만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개입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일본 저널리즘의 위기다"라며 탄식하기도 했다.

NHK 회장의 임명권은 보도기관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경영위원회가 가지고 있다. 이번 회장 인사 때는 수신료 인하, 인건비 삭감 등을 성실하게 수행한 마츠모토 마사유키(松本正之) 현 회장의 재임을 지지하는 위원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베 수상은 11월께 작가인 친구 햐쿠타 나오키 등 4명을 신임위원으로 결정했다. 4명은 모두 수상 관저의 의지였다.

마츠모토 회장은 12월 5일 돌연 기자회견을 열고 임기가 만료되면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마츠모토 회장은 "3년간의 업적이 평가되지 못해 편안하지 못하다", "관저에서 교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주변에 토로했다고 한다. 정부와 자민당의 입장에서는 원전, 미군기지문제 등에 대한 보도에 불만이 컸다고 한다.

아베 정권의 NHK 장악을 위한 역사

아베 정권의 NHK 장악을 위한 역사는 2006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총무상에 취임해 수신료 인하 등 개혁을 주도했다. 2007년에는 아베 수상과 가까운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 후지필름홀딩스 사장을 경영위원장에 내정했다. 그는 경영위원장을 하면서 "이익이 대립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국익을 주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권위적이고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NHK 회장은 '명예직'이었지만 프로듀서의 제작비 유용 등 연이은 불상사가 터지면서 경영위원회를 강화해 경영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아베 정권은 경영위원회를 통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NHK의 관계자는 "NHK의 통제 강화라는 이름 아래 정치가 경영에 직접 개입할 여지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국회가 NHK의 예산을 통제하고 있고, 경영위원을 임명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자민당 체제 하에서는 정권에 순응적인 방송이 되고 있다는 우려인 것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는 모미이 신임 회장의 역사 발언에 대해서 아베 수상은 개인적인 견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국회 답변으로 내놓고 있다. NHK는 공정성, 중립성의 문제에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이미 '일본 정부의 어용 미디어'가 되었다는 극단적인 평가도 있다.

NHK 직원은 말한다. "모미이 회장의 발언이 남긴 상처는 깊다, 현장은 위축되었다." 정치에 민감한 경영 간부들의 통제와 직원들의 침묵이 지속된다면 NHK의 공정성은 깊은 상처를 남길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일본 공영방송의 위기다.


태그:#아베 신조, #모미이 카쓰토, #NHK, #햐쿠타 나오키, #고모리 시게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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