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작품 무대는 '피스'라고 하는 숲이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숲통령 먹바위 딸과 평화를 염원하는 숲민들의 한 판 대결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숲을 무대로 한 우화소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저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재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필자말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 이난영

관련사진보기


얘야, 웃어도 죽고 울어도 죽는단다

<꽃바람 2호>가 공표되자 숲은 다시 얼어붙었다. 잠시나마 웃고 떠들고 노래하던 숲민들은 다시 입을 닫았다. 입만 벌려도 웃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숲경찰의 엄포는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숲경찰은 실제 하품만 해도 웃는 것으로 인정하여 숲민 여럿을 체포했으며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보여도 척살단이라며 잡아갔다.

숲경찰이 들이 닥치자 숲민들은 척살단이 배포한 유인물을 찢어 버리거나 씹어 먹었으며 더러는 땅 깊숙이 묻기도 했다. 어른들은 또 아이들의 입을 틀어막으며 웃지 말아야 할 이유와 노래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 오래 설명했다.

겁먹은 얼굴로 이야기하는 어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은 와르르 울음을 터트렸다. 어른들은 우는 아이들의 입을 급히 막으며 울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오랜 시간 설명을 했다.

"울지도 말고 웃지도 말고 노래도 하지 말고, 그럼 어떻게 살아요?"

한 아이가 물었다. 맑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지닌 아이였다. 어른들은 그 아이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얘야, 아무도 없을 때 몰래 몰래 하면 되니 걱정 말거라."

누군가 그렇게 이야기 했다.

"그러다 들키면요?"

아이가 또 물었다.

"그러니까 몰래 몰래 해야 하는 거지. 가령 태풍이 부는 날이거나 안개가 밀려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날이거나 천둥 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퍼붓는 날이거나 우박이 쏟아지는 날이거나 폭설이 내려 누구도 움직이지 못하는 날엔 몰래 몰래 웃을 수도 울 수도 있지 않겠니."    

어른들의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꽃바람 1호>와 <꽃바람 2호>가 지니고 있는 가공할 공포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숲얼단 건물로 돌아온 늑대는 집무실에서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늑대는 노래를 부르던 저 아이들이 곧 영문도 모른 채 맞고 끌려가고 그 부모들은 또 울고불고 하겠구나 라고 중얼거렸다. 늑대가 노래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숲얼단 수사팀장이 뛰어 들어왔다.

"단장님, 숲경찰이 느릅나무 후손을 데리러 왔다는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 왔구먼. 느릅나무 후손과 이번 반란에 관련된 자들을 숲경찰에게 다 넘겨줘."

늑대가 팀장에게 말했다.

"아니, 왜요?"

팀장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각하께서 느릅나무 후손에 관한 모든 수사를 숲경찰에게 맡겼으니 그렇게 해."
"고생은 우리가 했는데 그 열매를 숲경찰에게 넘겨주라니요.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팀장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각하께서 결정하신 일이라고 하잖나. 얼른 인계해줘."

늑대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억울해서 그럽니다."
"억울할 거 하나도 없어. 우리가 언제 열매나 따먹자고 이런 일 하고 있나?"
"그, 그런 건 아니지만 숲경찰 따위들에게 느릅나무 후손을 빼앗기는 게 자존심도 상하고 그래서……."
"이 일은 애초부터 실장이 만든 작품이니 넘겨주는 게 우리로서도 맘 편한 일이야. 괜히 가지고 있어 보았자 불똥만 맞고 말아. 알겠어?"

늑대가 팀장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팀장이 여전히 불만스런 얼굴을 하고선 집무실을 나섰다. 수사팀장의 기분을 늑대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느릅나무 후손과 같은 거물을 상대하는 일이야 말로 수사팀장으로선 일생에 단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였다. 그 기막힌 승부를 다른 조직에 빼앗겼을 때의 허탈감이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숲경찰에게 넘겨주는 게 늑대로선 다행스런 일이었다. 답을 정해놓고 문제를 복기하는 일처럼 지루한 일이 없으며 열심히 해보았자 수고했다는 말도 돌아오지 않을 일이라는 걸 늑대는 잘 알고 있었다.

척살단은 친원파 명단에서 찾아야

밖은 이미 조용해져 있었다. 숲경찰이 훑고 지나간 흔적일 것이었다. 늑대는 비서실장의 말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비서실장은 척살단이 느릅나무 후손의 머리에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애꿎은 숲민을 척살단으로 몰아 공포정치를 이어가겠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하지만 늑대는 척살단을 잡을 수 있는 열쇠는 친원파 명단에 있지 느릅나무 후손의 입에 달려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창밖으로 던졌던 시선을 거두며 늑대는 일급 친원파 명단이 들어있는 서류를 꺼내 들었다. 늑대의 짐작이 맞다면 척살단의 움직임은 이들 서류 안에 들어있는 명단에서부터 출발할 것이었다. 늑대의 손에 들려있는 서류는 일급비밀로 분류된 서류로 원숭이가 피스를 강점했을 때 원숭이 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들을 기록해놓은 서류였다.

서류엔 친원파들의 전력과 가계도는 물론이요, 현재의 재산과 재산 형성 과정, 소유하고 있는 땅 그리고 집과 농장에서 부리는 숲민들의 수까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었다.

재산이 가장 많은 이로는 먹바위 딸이 당연 일등이었다. 먹바위 딸의 재산은 먹바위가 숲통령을 할 때 강탈한 것으로 피스 곳곳에 산재되어 있었으며, 규모로는 피스 땅 십분의 일에 해당되었다. 최근 재산이 늘어난 이로는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느릅나무 후손이 체포되자마자 그의 소유인 느릅나무 숲과 열사들의 무덤을 자신 앞으로 돌려놓아 재산증식의 대가임을 입증했다.

늑대는 이 중에서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분류했고, 죽은 자 중에서 척살단에 의해 죽은 자들은 명단에서 제외했다. 이어 죽은 자의 후손 중에서 아비보다 더 비난을 받고 있는 자와 아닌 자를 분류했으며, 살아있는 자들 중에서 현직에 있는 자와 은퇴 한 자를 가려내었다. 현직에 있는 자 중에서 척살단의 표적이 될 만한 자와 아닌 자를 추려내고 은퇴한 자 중에서도 척살단의 표적이 될 만한 자와 아닌 자를 가려냈다.

일급 친원파에 대한 분류를 끝낸 늑대는 원숭이 왕으로부터 작위는 받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숲민 탄압에 앞장섰던 자들에 대한 분류를 시작했다. 특별관리 대상자로 분류된 친원파의 서류에도 이들이 어떤 방법으로 숲민을 괴롭혔는지에 대한 친원 전력과 재산형성 과정, 재산 목록, 가계도, 부리는 숲민의 수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들은 원숭이 강점 시절 원숭이가 되고 싶어 원숭이 노래를 부르거나 원숭이 말을 쓰며 원숭이처럼 살고자 했던 자들로 더러는 원숭이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워 이름만이라도 원숭이로 고친 자도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작위를 받은 자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숲민을 괴롭혀 숲민들의 원성이 큰 자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들 중에서는 이미 척살단에 의해 죽은 자들 또한 작위를 받은 친원파보다 많았다.

늑대는 이들 중에서 원숭이 강점 시절 원숭이 군대에 자진 입대하여 장교로 근무했던 자나 숲민을 악랄하게 괴롭혔던 자와 독립운동을 탄압했던 자 독립군을 고문 한 자 원숭이가 일으킨 전쟁에 직접 참여한 자와 피스 젊은이들에게 전선으로 나가라고 독려한 자 피스의 어린 딸들을 원숭이들의 성노예로 보낸 자 전쟁 군수품을 지원한 자 원숭이를 이용해 권력과 재산을 획득한 자들을 각각 분류했다.

늑대는 또 이들 중에서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가려내 살아있는 자 중에서 현직에 있는 자와 은퇴한 자를 분류했다. 죽은 자 중에서는 척살단에 의해 죽은 자를 제외한 후 후손이지만 돈과 권력을 이용해 숲민을 괴롭힌 자를 따로 추렸다. 늑대는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자 중에서 현직에 있는 자와 아닌 자를 가려내 그 중에서도 척살단의 표적이 될 만한 자와 아닌 자를 구별했으며, 죽은 자의 후손 중에서 척살단의 표적이 될 만한 자와 아닌 자를 가려냈다.

척살단으로부터 표적이 될 만한 친원파를 가려낸 늑대는 다시 이들 중에서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후손으로 분류하고, 이들 중에서 현직인 자와 아닌 자를 떼어 놓고 현직 중에서도 직위가 높으며 축재한 재산이 많은데다 원숭이 강점기 숲민을 악랄하게 탄압한 자들 순으로 명단을 채워 나갔다.

척살단의 일급 표적은 먹바위 딸일 수밖에 없다

늑대가 뽑은 최우선 표적은 어느 모로 보나 먹바위 딸이었다. 아무리 순서를 바꾸려 해도 그 자리에 갈 자는 먹바위 딸 뿐이었다. 두 번째가 숲총리를 맡고 있는 물곰이고 세 번째는 비서실장인 너구리였다. 그 뒤를 궁정장관이 이었고 행정장관이 다섯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여섯 번째로 올린 이름은 보건장관이고 그 다음이 토지장관과 비서실장의 아들인 재무장관이 뒤를 이었다.

다음 올려야 할 명단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늑대는 잠시 숨을 골랐다. 길게 숨을 토해낸 늑대는 아비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만지작거리다가 자신의 이름을 그 다음 순서에 올렸다.

'아버님, 아버님의 영광이 제게까지 이어져 이렇듯 척살단의 표적 명단에 제 이름을 올립니다…….'

늑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허허 웃었다. 어쩌면 부끄러울 수도 있는 아버지의 기억을 되살리며 늑대는 살아생전 아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애비 말 잘 듣거라. 애비는 오늘부터 원숭이처럼 살 것이다. 원숭이처럼 밥을 먹고 원숭이처럼 울고 원숭이처럼 웃고 원숭이처럼 걸을 것이다.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니 혹여 애비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너도 애비를 따라 원숭이가 되거라. 그래야 우리가 산다. 알겠느냐?"

그날부터 아비는 원숭이들의 수족이 되었고, 하루라도 손과 발에 피를 묻히지 않는 날이 없었다. 어떤 날은 원숭이로 태어나지 못했음을 한탄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그 날뿐이라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원숭이 노래를 부르며 집을 나섰다. 나중엔 그 일을 아들에게까지 물려주었으니 아비나 자신이나 척살단의 표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재무장관 다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올린 늑대는 그 다음으로 숲경찰청장과 내무장관, 피스군 사령관 등을 줄줄이 올렸다. 현역에서 은퇴한 이들과 후손들까지 모두 올리니 표적 대상자는 쉰을 훌쩍 넘어섰다.

늑대는 남아있는 명단은 후순위로 밀어 놓으며 피스에 살고 있는 원숭이 왕족 명단을 꺼냈다. 그는 이들 중에서 원숭이 강점 시절 피스 숲민들을 짓밟는 일에 앞장선 자들을 추려냈다. 척살단이 바보들이 아닌 이상 원숭이 왕족을 표적으로 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앞일은 모르는 일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척살단이 원숭이 왕족을 척살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원숭이 나라와의 분쟁은 물론이고 어쩌면 그 일을 빌미 삼아 원숭이 떼가 다시 강을 건너 피스를 점령하려 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기다려라! 우리는 꼭 다시 돌아온다!"

전쟁에 패한 원숭이 왕이 항복을 선언하자 그들은 눈물을 삼키며 배에 올랐다. 원숭이나라에게 있어 피스에 있는 원숭이 왕족 마을은 그들의 전진기지이자 자존심이었다. 그런 원숭이 왕족이 척살을 당한다면 그 다음 벌어지는 일은 늑대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늑대의 몸이 후둑 떨렸다.

'피스는 먹바위 딸 각하의 땅이 아니던가. 우리가 친원파라고 해서 원숭이들을 피스에 다시 들일 수는 없지…….'

늑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숲얼단 사찰팀장을 불렀다. 사찰팀장이 들어오자 늑대는 명단을 던져주며 그들에 대한 특별 경호를 지시했다.

'한 놈이라도 걸려들겠지.'

늑대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창밖을 응시했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로 활동중이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은옥이 1.2>, <개 같은 인생들>, <도둑고양이>,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연산> 등이 있으며, 최근 청소년 역사테마소설 <벌레들> 공저로 참여했습니다.



태그:#국정원, #긴급조치, #박근혜, #친일파, #박정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