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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지난해 6월 전남 목포에 문을 열었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지난해 6월 전남 목포에 문을 열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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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가 진영 대 진영으로 나뉘었다. 포용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민주적 리더십도 사라진 지 오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회자되는 이유다. 김 대통령은 평생 반대파를 끌어안았다. 소통의 리더십도 발휘했다. 제2의 김대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연유다.

지난 5일, 목포에 있는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을 찾았다. 건물 앞의 연못이 바다에 떠 있는 건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기념관에 들어서니 인형으로 만들어진 김 대통령이 반긴다. 노벨평화상을 받는 모습도 영상과 사진으로 만난다.

이곳에서는 민주화를 향한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엿볼 수 있다. 김 대통령은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투옥을 당하면서도 민주주의와 인권·평화통일을 향한 꿈을 놓지 않았다. 군사독재의 위협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김 대통령의 굳은 용기와 신념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집무실 체험도 재미를 더해준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전경. 흡사 물 위에 떠있는 것 같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전경. 흡사 물 위에 떠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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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도공원. 옛 삼학도를 복원하고 바닷물을 끌어들여 물이 흐르고 있다.
 삼학도공원. 옛 삼학도를 복원하고 바닷물을 끌어들여 물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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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진미', 여기 다 모여있다

기념관을 보고 밖으로 나오니 삼학도 공원이다. 오래전 둑을 쌓고 바다를 메워 뭍과 연결했던 세 개의 섬을 복원해놨다. 중삼학도와 소삼학도 사이에 물길을 내고 바닷물을 끌어들였다. 섬과 섬을 다리로 잇고 산책길도 내놨다. 그 길을 따라 걷는 맛이 괜찮다. 며칠 매서웠던 바닷바람의 기세도 많이 무뎌졌다.

어린이 바다과학관도 이 길에서 만난다. 바다를 체험하며 교감할 수 있는 전시관이다. 눈높이에 맞는지 어린이들이 좋아한다. 과학관 건너편으로는 목포여객선터미널이 자리하고 있다. 항구를 드나드는 여객선이 부산해 보인다. 뒤편의 유달산도 항구의 배경으로 잘 어우러진다.

요트 수십 척이 정박해 있는 바닷가를 따라 동명동 물량장으로 간다. 주택가를 지나는 철길이 눈길을 끈다. 목포역에서 석탄과 곡물·목재를 싣고 삼학도를 오갔던 철길이다. 지금은 그 기능을 잃었다. 금명간 철거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목포 종합수산물시장과 해산물 거리에서는 목포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목포 요트마리나. 삼학도공원에서 동명동 물량장 방면에 있다.
 목포 요트마리나. 삼학도공원에서 동명동 물량장 방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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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항 전경. 유달산이 배경 무대로 펼쳐져 있다.
 목포항 전경. 유달산이 배경 무대로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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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역을 거쳐 오거리로 간다. 온금동 쪽으로 가는 길에 붉은 벽돌건물 하나가 시선을 붙잡는다. 옛 일본영사관이다. 1897년 10월 목포 개항 이후 일본의 영사업무를 위해 지어졌다. 목포에 처음 지어진 서구식 근대 건축물로 목포의 아픈 근대사를 보여준다.

지금은 목포근대역사관 본관으로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3월 1일 문을 열 근대역사관 본관은 상설전시관과 방공호 갤러리로 꾸며진다. 여기에 목포진과 목포의 근대건축 모형이 재현되는데 이곳에서 개항 전후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건물 밖에는 일제가 미군의 공습에 대비해 한국인을 강제 동원해 판 방공호가 있다. 굴의 길이가 82m나 된다. 여기서는 태평양전쟁 때 일제에 의해 노동력을 착취당했던 조선인의 모습을 디오라마로 보여준다.

옛 일본영사관. 오는 3월 목포 근대역사관 본관으로 일반에 개방된다.
 옛 일본영사관. 오는 3월 목포 근대역사관 본관으로 일반에 개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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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현재 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현재 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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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 만난 '아픈 역사'의 흔적

근처에서 만나는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 지점도 한국인 착취의 상징이다. 1920년에 문을 열었다. 일제는 토지를 사들였다가 다시 빌려주며 높은 소작료를 받아 챙기는 수법을 썼다. 당시 가장 많은 소작료를 거둔 지점으로 악명이 높았다. 철문이 달린 대형 금고도 옛 모습 그대로다. 이 금고는 군사독재 때 헌병대의 유치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일반인에 개방됐다. 3월부터는 근대역사관 별관으로 운영된다. 이곳에는 일제의 농산물 수탈과 농정자료들이 전시된다. 나라를 빼앗긴 우리 선대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는 곳들이다.

숙연한 마음을 안고 유달산으로 향한다. 성옥문화재단을 훑어보고 유달산 일주도로를 따라 걷다가 조각공원을 만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문을 연 야외 조각공원인데 조각작품이 바다와 자연을 형상화하고 있다. 해양도시 목포와 잘 어우러진다.

목포 유달산 산책로. 철거민탑 옆으로 난 길이다.
 목포 유달산 산책로. 철거민탑 옆으로 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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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목포대교와 다도해. 유달산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해질 무렵 목포대교와 다도해. 유달산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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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공원에서 달성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이 깔끔하다. 길옆으로 돈나무·붓순나무·굴거리나무가 지천이다. 히어리·모감주나무·후박나무·구상나무도 보인다. 빨간색으로 수줍은 듯 피어난 동백꽃에선 이른 봄내음이 묻어난다. 자생식물원 앞에 돌로 쌓은 철거민탑도 서 있다. 공원을 만들면서 철거된 집의 주춧돌을 모아서 쌓았다고 한다.

달성사를 거쳐 비탈을 조금 올라가니 유선각이 나온다. 유달산에 있는 다섯 개 정자 중 하나다. 조금 전 둘러봤던 삼학도가 내려다보인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과 어린이 바다과학관도 그대로다. 목포 시가지도 오밀조밀 모여 있다.

해 진 뒤 목포대교와 다도해. 목포 유달산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해 진 뒤 목포대교와 다도해. 목포 유달산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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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밤풍경. 유달산 일등바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목포의 밤풍경. 유달산 일등바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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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점점이 다도해가 떠있다. 이순신 장군이 수군통제영을 설치하고 수군을 재건했던 고하도(高下島)가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고하도를 육지로 만들어 준 목포대교도 웅장해 보인다. 그 위로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닌다.

중천에 있던 해가 서편으로 기운다. 하늘도 깔끔하다. 걸음을 서둘러 일등바위(228m)로 간다. 모처럼 제대로 된 해넘이를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등바위에서 올라서니 다도해가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금세 사방이 어두워진다. 시가지의 불빛도 하나씩 밝히기 시작하더니 황홀경으로 변한다. 바람이 차가워진 것도 잊고 한동안 넋을 잃었다. 다도해 풍광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 안에서 김 대통령의 모습이 희미하게 그려진다. 눈 속에서 한 송이 인동초가 피어난 것처럼 반갑다.

목포대교와 다도해의 밤풍경. 유달산 일등바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목포대교와 다도해의 밤풍경. 유달산 일등바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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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광주-무안간 고속국도를 타고 무안공항 방면으로 가다 함평분기점에서 서해안고속국도(목포방면)를 타고 목포나들목으로 나간다. 영산로를 타고 목포역 앞에까지 가서 좌회전, 삼학도로 가면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태그:#목포대교, #목포야경,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삼학도공원,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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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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