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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임시국회의 막이 오르며 정치권은 '입법 전쟁'에 돌입했다. 여야는 6월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4월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어렵다는 판단에, 2월 임시국회 법안 처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6.4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에게 '생색 낼'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정부가 발의한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처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의료 영리화 논란을 촉발시킨 '서비스발전법 제정안'과 관광숙박 시설의 입지 제한을 완화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모두 민주당은 반대 의견을 명확히 밝힌 법안이다. 더불어 새누리당은 국정원의 휴대폰 감청설비를 의무화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견인 반면 민주당은 감청허용을 반대하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여야 간 첨예한 대립을 벌이게 될 2월 국회의 쟁점 법안을 살펴보았다. 정부·여당과 야권이 각각 어떤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들어본다 [편집자말]

'통신비밀보호법(아래 통비법)'을 둘러싼 여야의 입법전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통신비밀 보호와 통신의 자유를 신장한다"는 좋은 입법 취지에도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을 합법화하는 '도구'로 쓰인다는 불신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9년 8월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한 국정원의 '패킷감청' 사실이 밝혀지면서 거센 논란이 인 바 있다. '패킷감청'이 인터넷 전용회선 전체를 실시간 감청한 만큼 감청 대상이나 내용을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사찰'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국정원은 "이것이 통비법에 따라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뤄진 것"이라며 위법 논란을 일축했다.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통비법 일부개정안을 둘러싼 갈등 양상도 이와 맞닿아 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서 의원은 지난 1월 국정원의 휴대전화 감청을 지원하도록 이동통신사의 감청 장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통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에는 감청 장비 설치에 드는 비용은 국가가 부담하고, 이동통신사가 장비를 설치하지 않을 경우, 연간 최고 20억 원의 이행 강제금을 물릴 수 있게 했다. 또 사생활 침해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 장비 운용시 권한 없는 자의 접근 방지, 접근기록관리 등 보호조치를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사실 이는 4년 전에도 제기됐던 법안과 유사하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은 2010년 9월 당정협의를 거쳐 전기통신사업자(이동통신사)가 의무적으로 감청 설비를 갖추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통비법 개정안 처리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당시 이 개정안은 "사실상 '휴대폰 도청법'이 될 수 있다"는 야권과 시민사회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계류되다가 18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이 개정안을 '서상기법'으로 부르면서 처리 불가를 외치고 있다. 더욱이, 지난 18대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마저 겹쳐져 논의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이 법안을 국정원 개혁특위 '2라운드 의제' 중 하나로 올려 논의하자는 의견이다. 민주당 등 야당 특위위원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정보기관 불신할 필요 없어... 선량한 시민들 '감청' 괜찮다 할 것"

지난 1월 국정원의 휴대전화 감청을 지원하도록 이동통신사의 감청 장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통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
 지난 1월 국정원의 휴대전화 감청을 지원하도록 이동통신사의 감청 장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통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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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기 의원은 "일각에서 '휴대폰 감청법'이라고 오해하는데 감청은 이미 허용됐고, 개정안은 '감청을 할 수 있는 기계를 설치하자'는 것"이라며 "법을 만들었으면 입법취지에 맞게 시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리에 맞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의 감청을 더욱 용이하게 만드는 법으로 사생활 침해 등이 우려된다는 야권의 지적에 "이미 합법 감청은 법으로 허용돼 있다"고 일축한 것이다.

서 의원은 "반국가범죄, 간첩, 테러, 납치 등 범죄 혐의를 (휴대폰) 감청하는 것은 모든 선진국에서 오랫동안 해온 것"이라며 "일부에서는 사생활 침해 등을 우려하지만 공공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건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법원의 영장 발부'라는 전제조건을 강조하며 "감청요건은 이미 법에 규정돼 있는 만큼 손댈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례로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 체포영장 등 각종 영장을 1년에 7만 건 발부하고 있는데 그 모든 영장이 '사생활 침해 우려' 때문에 중단돼야 하느냐"면서 "사법부나 정보기관을 불신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법부를 믿고 더 심각한 문제가 안 생기도록 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면서 "정보기관의 범죄행위가 겁난다고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을 막는 건 잘못됐다"고 말했다.

해당 감청설비를 이동통신사에 설치하는 것도 '안전장치'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서 의원은 "정보기관이 직접 감청설비를 운용하면 불법적인 도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면서 "통신회사라는 중간 단계를 거치면 법원의 영장 없이 감청설비를 작동시킬 수 없다, 해당 장비가 오용되면 통신회사 입장에서 자기들이 망하는 길 아닌가"라고 말했다.

서 의원은 "그렇기 때문에 누구 좋으라고 (통비법 개정) 못하게 하느냐, 반국가세력 아니냐고 과하게 비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개정안의 취지를 정확하게 설명하면 99.9%의 일반 서민들은 문제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선량한 시민들은 정보기관이 자신들의 통화내용을 감청하더라도 '민망'한 것 빼고는 별다른 피해가 없지 않은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보기관 감청 더 쉽게 하자고? 국정원 제도개혁부터 해야"

"공권력에 의한 통신제한조치(감청) 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다 철저히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통신비밀보호법 전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송호창 무소속 의원.
 "공권력에 의한 통신제한조치(감청) 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다 철저히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통신비밀보호법 전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송호창 무소속 의원.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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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서상기법'에 상반되는 통비법 개정안도 있다. 송호창 무소속 의원이 대표 발의한 통비법 전부개정안은 "통신비밀 보호와 통신의 자유를 신장한다"는 현행법의 취지를 더욱 강화한 법안이다.

제안 이유에서도 "(현행법이)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목적으로 하나 여전히 국민의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라며 "특히 공권력에 의한 통신제한조치(감청) 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다 철저히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통신제한조치 당사자에게 집행사실과 기간, 허가서 세부 내용 등을 통보토록 했다. 위치정보추적 자료의 요청도 피의자가 범죄를 계획·실행했다고 의심할 이유가 충분하고 이를 저지하거나 증거수집이 어려움을 소명한 경우에 한해서만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횟수 제한 없이 남발되던 통신제한조치를 최대 2회까지만 연장토록 했고 최대 6개월 안에 혐의를 파악, 기소하지 못하면 더 이상의 통신제한조치를 취할 수 없도록 했다. 통신회사 직원이 감청 집행 현장에 입회하도록 해 '견제장치'를 더 두기도 했다.

이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 취지와도 일치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0일 수사 목적으로 열람이 가능한 통신자료의 제공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의결한 바 있다. 현행법상 수사기관이 법원의 영장 없이 위치정보 추적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 송호창 의원은 "서 의원의 개정안은 정보기관의 감청을 보다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그동안 정보·수사기관이 (휴대폰 등을 포함한) 감청을 안 한 게 아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통화내용을 감청한 게 4만 건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즉, 이동통신사에 감청설비를 설치하지 않더라도 국정원 등이 무분별하게 감청을 진행했다는 얘기다. 지난 1월 열린 국정원 개혁특위 공청회 당시 참석한 전문가들도 이동통신사에 감청설비가 없더라도 감청이 가능하다는 요지의 주장을 편 바 있다. 당시 오길영 신경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통신회사에 설비를 장치하지 않아도 감청된다"면서 독일의 IMSI(CATCHER) 감청기를 일례로 들었다.

송 의원 역시 "(휴대폰 감청을 못하고 있다는 서 의원의 주장은) 영장의 정상적인 허가를 받아서 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라며 "그를 못 믿겠다는 것이다, 용산상가 등에만 가도 (감청) 장비 등을 팔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송 의원은 "감청설비를 두더라도 정보기관에 대한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면서 "국정원이 지난 대선 당시 개입한 것을 두고 문제되는 상황에서 감청을 더욱 용이하게 하는 건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감청설비 설치 의무화를 논하기 앞서 국정원이 불법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정비부터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통신비밀보호법, #서상기, #휴대폰 감청, #국가정보원, #송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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