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의 남자 선수들은 이번 올림픽의 금메달 후보로 주목받아왔다. 밴쿠버올림픽에서 자신감 넘치는 레이스로 금메달을 따낸 모태범(대한항공), 무려 6번이나 올림픽에 참가한 이규혁(서울시청), 토리노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 이강석(의정부시청), 그리고 평창을 기대하는 샛별 김준호(강원체고)까지. 이들의 역주는 금메달 이상의 가치를 보여줬다.

모태범, 금메달보다 빛났던 4위

 모태범(앞쪽)을 비롯한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단거리 선수들이 1월 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연습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모태범(앞쪽)을 비롯한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단거리 선수들이 1월 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연습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모태범은 남자 500m에서 올림픽 2연패에 도전했다. 0.001초 차이로도 순위가 갈리는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최단거리인 500m를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을 따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네덜란드의 뮬더 형제를 비롯해 일본선수들까지 경쟁에 가세해, 모태범은 지키는 입장에서 더욱 힘이 부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투혼의 역주를 보여줬다. 1, 2차 레이스에서 모태범은 네덜란드 선수들에 비해 100m 기록은 좋지 못했다. 그러나 뛰어난 경기 운영과 안정적인 자세로 34초 후반의 좋은 기록을 냈다. 최종 합산 기록은 69초 69. 4년 전 밴쿠버올림픽에서 우승했을 당시의 69초 82의 기록보다 빠른 것이었다. 3년여간의 슬럼프와 부상을 딛고 일어난 그였기에, 이 같은 기록단축은 그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쟁자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미쉘 뮬더와 로날드 뮬더 형제는 무서운 쾌속질주를 보여줬고, 여기에 새로운 복병 얀 스미켄스는 최고 기록까지 낼 정도로 강했다. 승부욕이 강한 모태범에게 이번 4위는 어느 때보다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4년 동안 다시 준비한 노력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뛴 그의 역주는 박수 받기에 충분했다.

이규혁-이강석, 한국 스피드의 대들보

 이규혁이 소치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투혼의 역주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SBS 중계화면 캡쳐 모습

이규혁이 소치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투혼의 역주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SBS 중계화면 캡쳐 모습 ⓒ SBS


이규혁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다. 무려 6번의 올림픽에 참가했고, 올림픽을 제외한 모든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선수다. 4년 전 밴쿠버올림픽에서 경기 도중 정빙기가 고장나 경기가 지연되면서, 그의 신체리듬은 깨졌고 결국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이규혁의 올림픽과 선수생활은 끝이라고 예상하던 이들이 적잖았다. 그러나 그의 레이스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소치를 준비한 그는 사실 메달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올림픽 메달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번 무대는 올림픽을 그저 '즐기는 것'이었다. 그가 청춘을 다바치고 스피드스케이팅의 얼음판 위에서 이규혁은 마지막 올림픽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이를 악물고 뛰던 500m 1, 2차 레이스에서 이규혁의 모습은 어느 선수보다 빛났다.

이강석은 토리노올림픽 500m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차세대 단거리 주자로 주목받았던 선수다. 지난 밴쿠버올림픽에서는 4위를 하며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모태범에게 많은 기대가 쏠리면서 이강석을 향한 주목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레이스를 펼치며 완주해냈다.

이강석은 레이스 뒤 방송 인터뷰에서 "규혁이형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4년 뒤 평창에서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며 다부진 각오를 다졌다.

김준호, 평창을 위해 뛰는 또 하나의 샛별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의 유망주 김준호. 사진은 SBS 중계화면 캡쳐 모습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의 유망주 김준호. 사진은 SBS 중계화면 캡쳐 모습 ⓒ SBS


김준호는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의 새로운 얼굴로 주목받는 신인이다. 현 국가대표 외국인 코치인 크로켓 감독이 김준호를 "모태범을 이을 주자"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에게 이번 올림픽은 생애 첫 올림픽이었다. 쉽게 얻어지지 않는 기회에서 김준호는 최선을 다했고 중위권의 성적을 냈다. 방송 인터뷰에서 김준호는 "저의 목표는 레이스를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다. 평창에서도 메달보다는 끝까지 레이스를 열심히 달리고 싶다"며 소박한 소망을 드러냈다.

아직 모태범이나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 비해 체력이나 기록에 있어서는 부족한 면이 있지만, 이제부터 시작인 그에게 이번 소치는 값진 경험이었다.

금메달을 기대했던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저마다 사연과 목표를 안고 출전한 4명의 선수는 올림픽 메달을 향해 끝없이 달렸다. 비록 메달 소식은 없었지만, 4명의 선수가 보여준 레이스는 메달보다 더욱 값지고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겨주며 동계올림픽의 첫 감동을 선사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스피드스케이팅 소치올림픽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