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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이 교복과도 오늘로 이별이네. 막상 섭섭하네. 입고 싶지 않을 때도 많았는데. 엄마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3년이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어. 그런데 왜 그렇게 길고 지루하게만 생각됐는지 모르겠어. 특히 2학년 땐.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지난 금요일(7일),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하던 날 아침. 몇 달 전 시험 볼 때 입었던 교복을 챙겨 입으며 아쉬운지, 새삼스러운지 이처럼 말한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자니 교복 입는 것을 무척 기분좋아하는 눈치다. 난 미처 신경 쓰지 못했는데, 딸은 전날 집에 들어오며 스타킹까지 사왔던 터다.

이렇게 나갔던 딸로부터 아마도 지하철에 탔을 무렵 '톡!, 카톡이 왔다. 자기가 몇 반인지, 13반이 맞는지 헷갈린다'는 내용이었다. 딸에게 '13'이라고 짧게 답을 남기며 '그렇게 멍청한 애도 아닌데 얘가 왜 이러나? 개그 하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어서 오는 톡을 보니 정말 잊은 눈치다. 그런 딸에게 '학교에 가서 확인해 알려줘라'고 톡을 남겼더니 몇 분 후에 친구 아무개 아무개들에게 물어보니 '13반이 맞다'며 쑥스러울 때 보내는 이모티콘까지 보내왔다.

딸과 카톡으로 주고받은 이야기가 아무래도 재밌어서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동안 웃음이 풀풀 나곤 했다. 평소 '야무지다? 다부지다? 영특하다?' 등과 같은 소리를 주로 듣는 딸이 자신도 모르게 상상조차 못했던 개그를 한 때문이었다.

딸을 모르는 사람들은 "졸업도 하지 않은 애가 지가 몇 반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며 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엄마인 나로선 충분히 이해된다. 그래서 한편으론 딸이 안쓰럽고, 그리고 스스로 서글퍼지기도 한다.

"솔직히 대학 나온다고 행복해 진다는 보장도 없고..."

책상 위의 꽃다발
 책상 위의 꽃다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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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고 또 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고 싶은 '과'가 없어. 그런데도 천 만 원이나 한다는 등록금 내고 대학을 꼭 다녀야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가. 엄마도, 다른 어른들도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불행해지는 것으로 말하는데, 솔직히 대학 나온다고 행복해 진다는 보장도 없고.

엄마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난 대학 나오지 않아도 충분이 내 삶을 꾸려나갈 자신이 있거든. 그러니까 엄마도 생각을 좀 바꾸면 안 될까? 엄마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우리 학년부터 '선 취업 후 진학' 제도가 도입됐거든.

3년을 산업체에 근무하면 3년 후 대학 입학 자격이 주어지는 제도야. 선생님께 취업 의사 말해 취업한 후 3년 동안 고민해보고, 그때 정말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대학에 가면 안 될까? 학자금도 벌고. 그러니까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잠시 미루겠다는 것이야."

"네 말이 맞기도 한데, 네가 생각한 것처럼 세상이, 그리고 살아가는 것이 그리 말랑말랑하진 않단다. 게다가 엄마가 살아보니까 세상 사람들 생각이 참 웃겨요. 내가 볼 때 참 한심해 보이거든. 그런데 무슨 박사니, 어떤 대학을 나왔네. 어떤 상을 탔네 하면 사람들 보는 눈이 단박에 달라지는 것 같더라.

그만큼 대우 받는 일도 많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라는 것이 일단 때를 놓치면 다시 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거야. 나이 한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하는 것하고 나이 먹어 하는 것하고 그 차이도 많고.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엄마로선 믿고 허락할 수밖에 없지만…."

하지만 내게는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것으로 우선 들렸다. 그에 임금 차이부터 사회에서의 대우,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의 범위나 한계 등 대학을 나왔을 때와 그렇지 못했을 때의 차이에 대해 말했지만(물론 내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길 바라며) 딸은 이미 마음을 단단히 굳힌 듯했다.

결국 딸은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다. 스스로 취업을 선택, 지난해 7월부터 모 법인 쇼핑몰에 근무 중이다. 지난해 4월, 3학년이 된 후 얼마 되지 않아 취업이냐? 입시냐?를 결정해야 했는데, 딸은 내게 이렇게 스스로 소신을 밝혔고, 얼마 되지 않아 학교에서 추천하는 몇 곳에 이력서를 넣은 결과 지금 근무하고 있는 법인 쇼핑몰에 합격해 근무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4월, 딸이 소신을 밝혔을 때 많이 놀랐다

사실 지난해 4월에 딸이 이처럼 소신을 밝혔을 때 많이 놀랐다. 동시에 서글펐다. 이런 말을 하기 전까지 딸은 한동안 틈만 나면 컴퓨터에 앉아 선배들에게 들은 대학교의 누리집에 들어가 학교들을 샅샅이 훑어보거나, 전공과목 위주로 대학을 선택해 장래성까지 따져보는 등 대학에 꽤나 많은 관심을 보였기에 '대학입학'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4년 화재 이후 급식비까지 날짜를 넘겨 내는 날이 많을 정도로 한동안 매우 힘들었었다. 아이들이 한창 자라던, 중학생과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였다. 상황이 상황인만큼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는 그늘을 만들어 주고 말았다. 힘들게 살았던 시간들이 많았던 만큼 이처럼 제 앞날을 스스로 심사숙고해 정한다든지,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스스로 해결 하려곤 하는데, 엄마로선 대견한 한편 서글퍼지기도 한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지만, 아이들에게 구김살을 너무 깊게 패이게 한 것은 아닌가, 때론 부모 사정 헤아리지 않아도 좋으니 메이커 옷 사 달라 투정도 부리는 등 제 또래 아이들처럼 좀 천진난만하며 이기적이면 좋겠다의 생각도 들 정도로 그간 부모의 궁핍한 사정을 먼저 헤아려 온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딸은 오빠보다 헤아림이 더욱 세심하고 깊었다.

아이가 정말 선택하고 싶은 전공과목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아직도 그리 풍족하지 못한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입학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것은 아닌지 판단이 쉽지 않았다. 가정 형편 때문에 미술에 대한 꿈을 접어야만 했던 내 청소년기가 떠올라 마음이 더 착잡해졌다.

이에 학자금 마련에 저나 나나 좀 고생하더라도 몇 년 만 참고 공부해 대학을 졸업하면 훨씬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까지 겹쳐 쉽게 포기되지 않았다. 내 마음이 이렇거나 말거나, 딸은 모 쇼핑몰에 근무하는 지난 몇 달간 "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며 너무나 즐거워했다. 물론 일을 배우던 얼마동안 힘들어 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가끔 일에 지쳐 힘들어 할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

퇴근해 돌아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나 동료 간에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끊임없이 재잘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런지라 정말 딸에게 맞는 일이란 생각도, 딸의 선택이 맞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부모로서 이제 갓 성년이 된 딸이 일을 한다는 사실이 마음 편하지 못했(하)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 몇 달 동인 딸이 안쓰러워 우울해질 때도 많았다.

또, 왠지 떳떳하지 못했다. 형부와 오래 전에 사별한 후 조카 둘을 대학에 보낸 언니 앞에선 특히 움츠려 들곤 했다. 이런저런 대학에 보냈다는 친구들 앞에서도 공연히 주눅이 들곤 했다. 그리하여 일부러 묻지 않으면 애써 말하지 않았다. 딸의 선택을 믿으면서도 부모로서 무언가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는 것. 그런 죄책감 때문이었다.

"M이가 OO대학 대기 3번이었거든. 합격했는데 갈 거래. 글쎄? 부천에 있는 대학이라던데. 그래도 M이는 이해가 가. 지방이지만 사는 곳서 가깝고 가고 싶어 한 과라서. 그런데 H는 전주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나봐. 그것도 대기 5번으로. 그런데 갈 건가봐. 친척? 몰라? 아마도 없다는 것 같은데? 자취를 하던지 기숙사 생활 하겠지? 그런데 H는 정말 이해가 안가.

이야기 들어보니까 꼭 원하던 전공도 아닌 것 같던데. 그리고 지방에는 알바도 별로 없다며. 그렇다고 걔네가 형편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니고…. S(H남동생)도 있고, 아빠 없이 엄마 혼자 버니까 친구로서 좀 걱정돼. 좀 이야기 해봤는데, '대학은 무조건 가고 봐야 한다'인 것 같아.

엄마 그런데 내가 느낀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들이 그러니까 큰 확신 없이 나도 그렇게 한다는 쪽이 많은 것 같아. 특히 대학입학은 더 그런 것 같아. 다들 가니까 나도 가야한다는 분위기랄까. 뚜렷한 목표도 없이 대학만 나오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그런 막연한 생각들도 하는 것 같고.

이야기 들어보니까 H나 M같은 친구들이 많더라고. 또, 가기 싫은데 부모들이 대학은 무조건 가야 한다고 떠밀어서 할 수 없이 간다는 애들도 있고. 그래서 등록금이 그리 비싼 것 아닌가 생각도 들고 그래."

졸업을 이삼일 정도 앞둔 어느 날 딸에게 나도 알고 있는 딸의 친구 몇몇의 근황을 물으니 이처럼 말한다. M과 H는 딸의 친한 친구들이다. 딸은 무엇을 공브하고 싶은지 목표도 없이 대학졸업장만을 위해 입학을 하는 듯한 H가 영 안타깝고 이해가 안된다는 눈치다.

"엄마한테 이제 말하는 건데 어른들 눈 때문에 상처를 받을 때가 좀 많아. 사람들이 물어봐. 몇 학년이냐고. 그래서 3학년이라고 하면 "대학에 가느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대학에 안 간다고 하면 눈빛이 싹 달라져 버려. 뭐랄까? 한심해 하는 눈빛? 니 인생 뻔하다? 그런 느낌? 그래서 취업했다고 하면 그나마 다행이란 눈빛으로 바뀌는데, 그래도 좀 좋지 않은 쪽으로 생각해버리는 것 같아.

또, 나의 계획과 생각을 말하면 내 앞에선 좋은 쪽으로 이야기 하면서 막상 자기 자식은 그러면 안 된다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 나처럼 취업을 한 친구들 이야길 들어보면 다들 나 같은 느낌과 상처를 많이 받고 있더라고. 대학에 가고 안가고로 그 사람의 미래를 자기들 맘대로 생각해버리는 것이 기분 나빠. 그리고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잖아.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찾을 때까지 잠시 미루겠다는 거잖아. 그런데 왜 다들 고등학교 졸업하면 바로 대학입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사람이 다 다른데, 사는 것도 다 다른데 말이야. 

또…, 정말 듣기 싫은 이야기만 뭔지 알아? 미안하다는 말. 애들이 물어봐. 그래서 취업했다고 하면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왜 나에게 미안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대학에 엄청 가고 싶은데 돈도 없고 실력이 안 되어 못가는 것으로 생각해 그러나? 아닌데 그치?"

졸업 전날 밤, 딸과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이야길 했다. 계획대로 3년 후 공부에 대한 생각이 여전히 있는지도 궁금하고, 또 졸업을 앞둔 감회도 듣고 싶고, 격려도 해주고 싶어서였다. 딸은 그간 겪은 상처를 이야기 한다. 처음 들었다.

나 역시 대학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하루가 고단했나 보다. 딸은 어느새 잠들고 말았다. 그런 딸을 보며 마냥 안쓰럽고, 미안해 잠이 쉽게 오지 않았었다. 새벽 가까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말로는 딸의 소신과 계획을 믿고 응원하겠다고 했지만, 지난 몇 달간 딸에게 한 번도 말 한적 없지만, 나 역시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눈빛으로 상처를 주는 어른들 중 하나였단 생각에. 그리하여 "취업을 했노라"고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딸이 졸업하던 날, 스스로 약속했다. 말로만 믿고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젠 마음으로 믿고 응원하겠노라고. 제 소신과 계획대로 3년간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 자극을 하겠노라고. 그리고 공부에 대한 꿈을 놓지 않도록 응원과 성원을 다하겠노라고. 


태그:#대학입학, #입시, #선취업 후진학, #특성화고,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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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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