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에 개봉한 <파업전야> 포스터

1990년에 개봉한 <파업전야> 포스터 ⓒ 장산곶매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때가 있었다. 영화를 보기 위해 유치장에 끌려갈 각오를 해야 했던 때도 있었다. 한국독립영화사의 기념비적 작품인 장산곶매의 <파업전야>가 그랬다. 1990년 세계 노동절 101주년을 기념하며 제작된 이 영화는 정부로부터 상영 금지 처분을 당한 뒤 대학가를 중심으로 순회상영을 강행했다.

정부는 <파업전야>의 상영을 막기 위해 영화를 상영하는 대학에 전투경찰을 투입했다. 대학생들은 '사수대'의 쇠파이프로 영화를 지켰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밖에서는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했다. 영화 속 장면보다 더 생동감 있는 스펙터클이 상영관 밖에서 연출됐다. 관객들은 최루탄 연기 속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아마도 <파업전야>는 세계 최초의 4DX영화였을 것이다.

장산곶매의 다음 작품이었던 <닫힌 교문을 열며>(1992)도 마찬가지였다. 교육 문제를 다룬 이 작품은 제목과는 달리 교문을 닫고 상영해야 했다. 경찰은 크레인을 동원해 대학 교문을 뜯어내고 학내로 진입하기도 했다.

상영을 저지하기 위한 정부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30여만 명의 관객이 <파업전야>를 관람했다. 당시에도 대단한 기록이었지만 지금도 독립영화가 관객 30만 명을 동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파업전야>는 용감한 관객들과 사수대의 힘으로 한국독립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아직도 영화를 보려고 싸워야 하나

 <또 하나의 약속>은 2월6일 개봉했다

<또 하나의 약속>은 2월6일 개봉했다 ⓒ (주)에이트볼픽처스

<파업전야>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영화를 보기 위해 싸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교롭게 이번에도 노동자에 관한 영화가 대상이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영화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불온한' 일이다.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작 중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삼성(영화에서는 '진성'이라고 부른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고 우리는 삼성을 삼성이라고 부르지 못한다)의 횡포를 대담하게 고발하는 영화로 개봉 전부터 논란이 됐다.

하지만 롯데시네마를 비롯한 대형배급사(삼성과 재산분쟁 중인 CJ를 제외하고)들은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에도 <또 하나의 약속>을 외면했다. 관객들은 화염병과 쇠파이프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자본의 횡포에 맞섰다.

그리고 개봉 첫날(2월 6일) 160여 개의 상영관을 여는 데 성공했다.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 첫주에 1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주말 관객동원 5위를 차지했다. 흥행 성적은 5위였지만 좌석점유율은 42%로 <겨울왕국>과 <수상한 그녀>에 이어 3위였다. 상영관 수가 300개만 됐어도 첫주에 적어도 3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강철과 같은 자본의 연대는 노동자 영화의 상영관을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파업전야>로부터 20년이 흘렀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또 하나의 약속>이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하다. 냉정하게 말하면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중간지대에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배우들의 연기를 제외하면 전반적인 작품의 완성도는 평균 수준보다 높다고 할 수 없다. 천둥과 벼락이 맞부딪치는 <변호인>의 법정 장면(차라리 <또 하나의 약속>이 법정 장면을 더 압축했으면 좋았을 듯하다)과 같은 '뜨거움'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하나의 약속>은 그 어떤 영화보다 울림이 크다. 학창 시절, 두려움에 떨며 <파업전야>를 봤을 때만큼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지금 돌이켜보면 <파업전야>의 영화적 완성도는 민망할 정도였지만, 그때는 단지 그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파업전야>를 관람하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현실과의 치열한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약속>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변호인>을 떠오르게 한다. 민감한 사회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점에서 그렇고, 전반부가 휴먼 드라마로 후반부는 법정 드라마로 나눠진다는 점도 유사하다. <변호인>처럼 감정을 끓어오르게 하는 힘은 다소 약하지만 묵직한 사실의 무게는 <변호인> 이상의 큰 울림을 남긴다. 흥행 면에서는 다소 손해를 볼 수 있지만, 신파의 유혹을 대담하게 거부하고 비교적 차분한 시선을 끝까지 유지한 것도 <변호인>과는 또 다른 예술적 미덕이다.

<변호인>이 양심적인 지식인의 이야기라면 <또 하나의 약속>은 투쟁하는 노동자의 이야기다. 그래서 거칠고 투박하다. 노동자의 삶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변호인>은 '그분'에 대한 이야기이고 <또 하나의 약속>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그래서 <변호인>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지만 울림의 강도는 더 세다. 이 영화는 꼭 극장에서 보시기 바란다. 때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영화를 봐야 할 때도 있다.

3월 6일에는 삼성과 맞서는 또 한 편의 영화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홍리경 감독의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이다. '삼성 왕국'의 추악한 실상을 보다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아마도 상영관을 확보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탐욕의 제국>은 <또 하나의 약속>만큼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진지한 관객들에게는 조금 더 만족스러운 영화가 될 것이다(<탐욕의 제국>에 대한 자세한 기사는 개봉 직전 기고할 예정이다).

아무튼 '불온한' 노동자 영화들의 연이은 개봉으로 당분간 회장님의 심기가 조금은 불편할 듯하다. 시간이 되신다면 회장님께서도 둘 중에 한 편 정도는 꼭 감상하시기 바란다. '아버지'는 적어도 자신이 '가족'들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알 필요가 있지 않겠나.

'삼성왕국'에서 안녕들 하십니까

 진성반도체 앞에서 시위하는 한상구, 사원들에게 끌려 나간다.

진성반도체 앞에서 시위하는 한상구, 사원들에게 끌려 나간다. ⓒ 또 하나의 가족 제작위원회


지난 1월 삼성 신입사원 채용 시 적용할 예정이었던 '대학총장 추천제'가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공개된 대학별 총장추천 인원수에 대학들이 반발했다. 하지만 그들이 반발한 이유는 대학까지 줄 세우는 재벌의 오만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은 추천인원을 배정받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비록 삼성이 '신입사원 채용방식을 전면 유보하겠다'고 밝혀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어느 대학도 삼성의 횡포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을 '삼성왕국'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흔히 '삼성공화국'이라고 하지만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 지배하는 국가는 '공화국'이 아니다. 상속되는 권력이 지배하는 국가를 일반적으로 왕국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일개 기업이 사실상 국가를 지배하는 기형적인 권력독점은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대한민국에서 삼성은 기업, 그 이상의 존재다.

기업평가기관인 'CEO스코어'는 2012년 한국의 GDP에서 삼성그룹의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3%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2012년 삼성전자의 매출은 201조 원으로 GDP의 18%를 기록했다. GDP와 기업매출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일개 재벌의 매출이 국가총생산의 1/4에 육박한다는 것은 결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2012년 삼성그룹의 연매출은 300조 원, 총자산은 500조 원을 돌파했다. 삼성의 자산은 정부 보유 총자산 약 1500조 원의 1/3에 육박한다. 정부 자산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건희 회장은 '대한민국의 최대주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국민경제에서 한 기업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그 자체가 문제(엄밀히 말하면 그것도 문제지만)라고 할 수는 없다. 한때 '노키아가 핀란드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경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삼성과 같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삼성의 자본집중이 권력독점과 남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 의해 알려진 것처럼 삼성은 정·관계에 이른바 '삼성장학생'을 육성하며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손'을 자처하고 있다. <또 하나의 약속>에서 한상구(박철민 분)는 백혈병으로 사망한 딸 윤미(박희정 분)의 진단서를 발급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가지만 원무과 직원(맹봉학 분)은 이를 거부한다. 한상구는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언론에 알리려 하지만, 언론사들은 삼성의 광고 압박 때문에 윤미의 이야기를 외면한다.

심지어 삼성 변호사들이 근로복지공단의 대리인으로 공공연하게 재판에 참여하지만, 판사(정진영 분)는 이를 제지하지 않는다. 이처럼 삼성은 유형무형의 로비와 압력으로 기업(혹은 회장님)의 이익을 방어하며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패가망신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삼성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른바 '삼성X파일'을 폭로한 노회찬 전 의원은 2013년 2월 대법원에서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의 유죄가 확정돼 당선 9개월 만에 의원직을 잃었다. 김용철 변호사는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지만 벌이가 신통치 않아 빵집(공교롭게도 그의 빵집은 삼성에서 분가한 기업의 프랜차이즈였다)을 냈다고 한다. '삼성장학생'들로 가득 찬 법원에서 삼성에 도전한 용감한 '변호인'을 고용할 둔감한 의뢰인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유치장에서 나오는 유난주를 위해 한상구는 두부를 준비한다.

유치장에서 나오는 유난주를 위해 한상구는 두부를 준비한다. ⓒ 또 하나의 가족 제작위원회


삼성의 오만과 횡포 그리고 권력남용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수많은 젊은이들은 삼성을 선망한다. 그들은 공화국의 자유로운 시민이 되기보다는 삼성 왕국의 '또 하나의 가족'이 되기를 원한다. 백혈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삼성의 가족이라는 자부심보다 크지 않다.

한상구는 수임을 주저하는 노무사 유난주(김규리 분)에게 느닷없이 '멍게가 동물이냐, 식물이냐'고 묻는다. 그는 '멍게는 원래 동물이지만 바다에 뿌리를 내린 이후에는 뇌가 녹아버려 식물이 됐다'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도 뇌가 녹아 버린 삼성왕국의 멍게가 돼버린 것은 아닐까. 뇌가 녹아 버리는 것은 백혈병에 걸리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나홀로연구소> http://blog.naver.com/silchun615에 중복 게재됩니다.
또 하나의 가족 한유미 황상기 박철민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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