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젊은 여성이 백혈병에 걸렸다. 본인과 가족은 깊은 슬픔에 빠진다. 감정의 밀물 뒤에 이어지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들. 치료를 위한 병원비는 평범한 서민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이에 발병 직후 거들떠보지도 않던 회사에서 갑자기 찾아와 거액의 돈을 주겠다고 한다. 단 한가지 조건, "산재 신청을 하지말라"는 말과 함께.

'시한부 인생'과 '권력을 쥔 대기업의 권위주의적 탄압', 이 두가지 소재는 한국의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인공이 겪는 고난을 설정하기 위해 숱하게 쓰여왔다. 주인공의 위치와 성격만 다소 재편집되었을 따름이고, 이러한 역경을 발판 삼아 끝내 성공하는 등장인물의 모습이 다양한 장르에서 '신데렐라 스토리'를 완성하는 퍼즐의 조각이 되곤 했다. 그렇게 재탄생된 이야기들이 수십년간 이어졌기에 2010년을 훌쩍 넘긴 이제는 다소 진부하고 또 식상한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줄거리가 뻔하지 않은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영화 시나리오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영화를 다 보고난 관객이 스크린에 투영된 글자들로 확인할 수 있듯이, 이것은 한국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또한 슬프게도 그 배경이 현실이기에 결말은 '모든 것을 이겨낸 주인공의 해피엔딩'도 아니었다.

<또 하나의 약속>이 고발한 현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 OAL(올)


영화가 고발하는 것은 현실의 뒤틀린 모습들이다.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서 노동자의 안전을 내팽개친 반도체 공장, 발암물질을 무방비 상태로 다루다가 병에 걸린 노동자를 돈으로 입막음하려는 기업, 그런 회사의 편에 서서 노동자더러 "산재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는 비합리적인 법 체계.

주인공이자 실존인물 '윤미(박희정 분)'가 백혈병에 걸려 죽어갈 동안, 이 모든 요소들이 종합되어 그녀와 아버지 '상구(박철민 분)'를 무력하게 만든다. 거기다 회사에서 찾아온 사람들로부터의 '돈으로 입막음'이나 '사직서 작성 종용'은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다.

자기들의 책임이 아니라며 쉬쉬하고 입을 다물 것을 요구하는 기업의 행태, 그 기업의 공장 특정라인에서 백혈병 및 희귀질병 발병자가 속출한 것은 자연스럽게 의문을 자아낸다. 의문과 분노가 만난 지점에서 이들의 싸움은 시작된다. 무고한 딸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생각에 상구는 '승산이 없다'며 모두가 만류하는 재판을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재판 과정에서도 힘든 상황은 이어진다. 진성 기업의 광고를 빌미로 한 압박을 받은 언론들은 대부분 기업 측에 유리한 기사를 내보낸다. 돈으로 회유하여 증인이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을 막거나 원고 측에 참여한 반도체 노동자 가족들을 포기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자본권력의 '독재' 여실히 보여준 영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 OAL(올)


진실과 산업재해 보상을 요구하는 피해자 가족에게 겉으로는 '책임없다'며 거부하고 뒤에서는 돈으로 흥정하는 극 중 기업의 행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정치의 '독재'가 자본권력의 탈을 쓰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기업의 영광스러운 업적을 위해 노동자들의 노력을 요구하면서, 스스로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약한 개인을 희생시키는 모습. 이는 지난 역사에서 볼 수 있었던 '권위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정치세력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착취와 희생을 당연하다는 듯이 강요하는 태도 말이다.

민주화 운동으로 '국가는 곧 국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런 인식이 정치계에서는 조금씩이나마 사그라들고 있지만, 경제계에서는 여전한 것 같다. '기업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이윤 창출'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퍼져나감과 동시에 그 어떤 것을 희생시키더라도 정당화 되는 현실 아닌가.

'노동자'는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편견은 자본권력의 지위 유지를 위해 손쉽게 이용된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연한 일'로 주입되고, 그 결과로 대기업의 횡포는 비난대상에서 제외된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이런 일련의 과정, 자본권력의 '독재'를 여실히 보여준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실화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스틸컷.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스틸컷. ⓒ OAL(올)


'경제적이다'라는 말로 귀결되는 모종의 논리는 친기업적인 언행을 옹호하는 간편한 도구가 되었다. 사실 그 배경에는, '대기업 입사'가 서민의 '꿈'이자 '탈출구'로 묘사되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영화 초반, 졸업을 앞둔 주인공이 고등학교에서 진성기업 면접을 보고나서 기뻐하던 그 장면처럼. 하지만 고인이 된 황유미 양은 그녀의 아버지가 몰던 택시의 뒷자석에서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알던 사람도 있을테고, 영화가 끝난 뒤에 알게된 사람도 있겠지만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실화를 다룬 영화이다.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삼성이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몇 년에 걸친 재판 끝에 산재를 인정받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만약 삼성이 처음에 황유미씨의 발병이 산업재해임을 인정했더라면, 혹은 그 뒤 작업현장의 문제점을, 노동자의 노고와 죽음에 애도를 표했더라면 이 영화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말이다. 하지만 삼성은 그 중 어느 쪽에서도 멈추지 않았고, 지난 6일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아무것도 보태지 않았지만 이 영화는 삼성이 있었기에 만들어진 셈이다.

사과나 보상은 커녕 잘못을 시인하지도 않는 대기업이 여전히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군림하는 오늘날, 과연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을까? 영화 예매율이 매우 높은데도 불구하고 턱없이 적은 상영관 수에 '외압설'이 나오는 추세를 보면, 이 영화가 단지 영화로 끝맺음 되지 않을 것 같다. 반성없는 권력이 살아있는 한, 어느 아버지가 짊어질 '또 하나의 약속'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약속 삼성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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