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몸에 슈트가 입혀진 것을 받아 들이지 못하던 경관 머피.

자신의 몸에 슈트가 입혀진 것을 받아 들이지 못하던 경관 머피. ⓒ 로보캅


*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한 영화에서 오락과 철학, 시대 풍자까지 모두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은 쉽지만 이런 요소들을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스크린으로 표현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재능을 타고난 이가 있다. 바로 <로보캅, 1987>의 감독 폴 버호벤이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미국식 영화 시스템과 볼거리를 작품 안에 녹여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그는 할리우드식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여타 유럽 감독들과는 달랐다. 관객들에게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되, 그저 감탄이나 웃음이 아닌 미래사회에 대한 경고, 사회 풍자들을 제공했던 것이다. 그 결과물들이 <원초적 본능> <토탈 리콜> <스타쉽 트루퍼스>들로 나타난 것이다.

물론 이런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기본 계기는 <로보캅>에서 출발했다. 시의 재정이 파탄나자, 공적부분인 치안을 민영화시켜버린 디트로이트 시를 배경으로, 뒤틀어진 현실을 비꼬면서도 액션과 오락을 극대화 시킨 <로보캅>으로 명감독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많은 이들의 추억에 강렬한 기억으로 각인된 작품 <로보캅>이 돌아왔다. 27년 만이다. 원작을 사랑했던 이들은 기대보다 우려를 내비치기도 한다. 문제는 기술력이 아닌 '어떤 철학과 이야기'를 담았을까가 아닐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쁘지 않다. 원작의 빼어남이야 두말할 것도 없지만, 리메이크 작품의 고뇌도 충분히 느껴진다.

'로보캅' 시장진출을 위해 '금지 법안'을 폐기하라

 자신들이 만든 로봇이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옴니코프사.

자신들이 만든 로봇이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옴니코프사. ⓒ 로보캅


시기는 2028년, 배경은 원작과 같은 디트로이트다. 원작 OCP의 자회사인 옴니코프사는 치안을 담당할 다양한 로봇을 개발·보유하고 있다. 이미 중동 등 해외에서는 군인들이 맡던 역할을 로봇들이 담당하고 있다. 본인들이 만든 기계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선전한다. 자본에 기댄 언론이 한몫 단단히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시장인 자국 미국시장에서는 아직 써보지 못하고 있다. 치안에 투입해선 안 된다는 방지 법안이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70%가 넘는 국민들도 로봇 경찰에 대해선 부정적인 여론이다. 마음이 급해진 회사는 인간을 로봇 안에 넣으면 저항감이 없어질 것이라 판단하고 적합한 인물을 찾기 시작한다.

디트로이트 경찰인 알렉스 머피(조엘 킨나만 분)은 가정에선 다정다감하지만, 일에는 냉철하고 불의를 못 참는다. 결국 썩어빠진 경찰 조직과 범죄 집단의 희생양이 된다. 그는 회사가 찾던 인물이 된다. 아내는 남편을 되살릴 수 있다는 회사의 제안에 흔들린다.

석 달 후 잠에서 깬 머피는 자신의 모습에 경악한다. 그냥 잠들 수 있게 해달라고 하지만, 결국 아내처럼 설득 당한다. 로보캅의 활약에 시민들은 환호하고 우호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법안은 폐지되고 만다. 하지만 뇌의 기능은 온전했기에, 회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말 잘 듣는 로봇을 원했던 회사는 그의 감정을 억제하려 한다.

자본과 손잡은 정치권력과 언론에 대한 경고

 로보캅의 활약에 환호하게 되는 시민들.

로보캅의 활약에 환호하게 되는 시민들. ⓒ 로보캅


2014년 판 <로보캅>이 안고 있는 숙명이라면, 원작이 담고 있는 철학과의 비교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자본이 저지를 수 있는 부도덕과 그것을 비호하고 한 패가 되는 정치와 언론에 대해 긴 시간에 거쳐 경고한다. 특히 부당한 언론권력은 달콤한 말로 포장하고 회유하며, 시민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또 뿌리부터 썩어버린 경찰조직은 물론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정치게임을 벌이는 이들을 조준하기도 한다. 자신들과 손잡은 언론에 출연해 홍보에 열 올리고, 기업은 그런 이들에게 뒷돈을 대주는 물고 물리는 관계는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심각한 독이 될 것임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영화 속 철학부재를 논하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 다만 보다 효율적으로 전해졌는지, 혹은 보다 명확한 적시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지적이라면 감수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서로 뒤 봐주는 권력들에 대한 풍자는 원작보다 규모가 커지고, 보다 확실해 진 것으로 보인다.

원작의 무대를 옮기지 않고 디트로이트로 삼은 것도 옳은 선택으로 보인다. 1987년 당시도 그랬지만, 시 전체가 파산을 맞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뒤뚱거리는 디트로이트의 모습은 영화가 그려내고자 하는 디스토피아의 현실판으로 보인다. 물론 원작의 혜안이 뛰어났다.

멋진 연기... 액션 등은 호불호 갈릴 듯

 주연 조엘 킨나만의 열연이 돋보였다.

주연 조엘 킨나만의 열연이 돋보였다. ⓒ 로보캅


영화를 돋보이게 만든 건 주연인 조엘 킨나만이다. 차분한 고뇌는 지적이지만, 때론 싸늘한 미소를, 때론 광적인 분노를 사실적으로 표현해 냈다. 역할이 로봇 슈트처럼 몸에 딱 맞는 듯하다. 뒤를 받치는 사무엘 L 잭슨, 게리 올드만, 마이클 키튼 등 명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게리 올드만의 경우 악역만 어울리는 배우가 아님을 보여준다.

원조 <로보캅>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특유의 '끼~' 하는 기계음을 떠올릴 것이다. 2014년 판도 그 반가운 소리를 들려주고, 일상에서는 특유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슈트 색이 검은색으로 달라진 것에 대해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초중반에는 예전과 비슷한 색과 모습이 보이니 아쉬움을 덜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액션은 달라졌다. 당연히 부드러워졌고, 날렵하고 민첩하다. 현재의 기술로 1980년대가 담아내지 못한 장면들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예고편을 통해 알려졌듯이 일부 장면이 게임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도 분명 있다. 이 역시 관객들 입맛에 따라 평가가 크게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한편으로 무모하고 한편으로 영리하다. 어떤 좋은 작품이 나와도 평가를 바꾸지 않으려 하는 원작을 리메이크 한 것이 그렇고, 그럼에도 현재 시대에 맞게 철학을 담아내고 포장을 적절히 바꾼 것이 그렇다. 원작을 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즐겁게 감상할 수 있고, 원작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월이 흘렀으니 달라짐을 지켜봐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2월 13일 개봉.
로보캅 게일 올드만 조엘 킨나만 마이클 키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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