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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작품 무대는 '피스'라고 하는 숲이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숲통령 먹바위 딸과 평화를 염원하는 숲민들의 한 판 대결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숲을 무대로 한 우화소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저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재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필자말
저들의 꿈은 커진다
▲ 우리가 침묵할 때 저들의 꿈은 커진다
ⓒ 이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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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후손이 제거되었다니 살판 났습니다

숲통령 후보였던 느릅나무 후손이 반란수괴로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친원파는 그날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친원파 거두 늙은 여우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허허, 앓던 이가 빠진 기분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먹바위 딸 각하를 위협하는 자가 제거 되었으니 이는 우리를 위협하는 자 또한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매우 기쁜 날입니다."

박달나무가 말했다. 그는 원숭이 강점 시절 작위를 받았던 자로 친원파를 이끌고 있는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

"느닷없이 밀려온 안개로 인해 숲이 망하나 싶었는데, 이런 묘수가 있다니요. 각하의 정치력에 놀라울 뿐입니다."

이번엔 온 몸에 금칠을 한 먹구렁이가 나섰다.

"하하, 그렇지요. 세상에 이런 반전이 또 어디에 있답니까. 우리의 목숨을 구해준 각하께 감사의 선물이라도 올려야 하겠습니다."

박달나무가 손뼉을 치며 화답했다.

"하하, 모두의 뜻이 그러시다면 각하께서 좋아하시는 선물을 각자 구해봅시다."

늙은 여우가 꼬리를 쓸어 내리며 말했다. 

긴 하루가 지나고 밤이 이슥해졌다. 소쩍새와 부엉이마저 입을 닫은 숲은 나뭇잎 팔랑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달은 둥글게 떠 있었으나 하늘은 흐려있어 대지를 환하게 밝히지는 못했다.

모두가 숨죽인 밤, 먼 숲에서 나타난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숲을 워낙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어 보초를 서고 있던 숲경찰도 검은 그림자가 날짐승인지 들짐승인지 또는 꼬리가 길었는지 짧았는지 혹은 덩치가 컸는지 작았는지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서쪽을 출발한 검은 그림자는 남쪽을 거쳐 동쪽과 북쪽까지 온 숲으로 퍼졌다. 그들은 이 숲에서 저 숲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준비한 유인물을 숲 곳곳에 뿌렸다. 어둠이 옅어질 무렵에야 임무를 완수한 검은 그림자는 먹빛 강변을 따라 서쪽으로 돌아갔다.

먹바위 딸에게 보내는 척살단의 경고

날이 밝자 숲은 또 다시 술렁거렸다. 숲민들은 간밤 검은 그림자가 뿌리고 간 유인물을 돌려보며 귓속말을 나누었다. 한 사내가 옆 사내에게 속삭였다.

"이봐, 유인물 읽어 봤는가?"

"뭔 유인물?"

"밤사이에 숲 곳곳에 이런 유인물이 떨어졌는데, 놀라운 사실이 많아."

"그래? 어디 나도 좀 보세. 가만 있자……지난 숲통령 선거는 전 숲통령이었던 시궁쥐의 지원 하에 먹바위 딸과 숲 정부기관이 모두 나선 총체적인 부정선거였다……

숲얼단은 선거 결과를 조작하기 위해 투표함을 교체했고 숲경찰은 그 투표함을 제작했고 피스군 정보사령부는 숲군대를 동원하여 투표함을 소각했고 선관위는 투표함이 교체되는 걸 알면서도 눈 감아 주었고 내무장관은 투표장으로 향하는 숲민들의 걸음을 막거나 선거결과 조작에 가담하였으니 이는 명백한 선거반란이자 피스 숲법을 무력화 시키는 반 숲법 행위이다.

이와 같은 모든 사실이 명명백백 드러났음에도 먹바위 딸은 부정선거를 하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하는 등 파렴치한 작태까지 벌이고 있다.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며 가랑잎으로 역사적 진실을 덮으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에 우리는 이번 숲통령 선거결과를 인정할 수 없으며 선거내란의 최대 수혜자이자 내란 주모자인 먹바위 딸을 숲통령으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먹바위 딸은 지금이라도 모든 책임을 지고 속히 숲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그대가 조국이라 칭하는 원숭이 나라로 떠나라.

이는 S·피스의 진정한 독립을 바라는 숲민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며 우리가 염원하는 일임을 명심하라……. 햐, 이거 나쁜 놈들일세. 이러고도 숲통령이라니. 부정선거만 아니었으면 느릅나무 후손이 숲통령이 되었다는 얘기 아닌가?"

옆 사내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당연하지. 숲민 모두가 느른나무 후손이 숲통령에 당선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니. 그것뿐만이 아냐. 여기 또 있어."

사내가 유인물 하나를 옆 사내에게 또 건넸다.

"그래? 어디 보자……먹바위 딸이 「꽃바람 1호」를 공표한 것은 부정선거를 감추기 위한 술수로 숲민들의 입을 막음과 동시에 반 먹바위 딸 세력을 말살하려는 추접한 음모이며 이는 독재로 점철하다 살해된 1급 친원파 출신 먹바위가 시도했던 긴급명령보다도 한 발 더 나아간 것으로 먹바위 독재의 부활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것은 울지 못하면 후대를 이을 수 없다는 숲민들의 가장 큰 약점을 이용한 비겁한 정치이므로 먹바위 딸은 반 피스적 음모를 즉각 멈추고 「꽃바람 1호」또한 당장 폐기하여 억울하게 죽어간 숲민들을 위무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울고자 하여 들고 일어난 저항을 반란으로 매도하여 평화를 갈구하는 숲민들의 숭고한 정신을 체제전복세력이니 N·피스 지령을 받은 간첩의 짓이니 공작하는 것도 부족하여 아무런 죄도 없는 느릅나무 후손을 반란의 수괴로 지목한 먹바위 딸은 공작정치를 즉각 중단하고 느릅나무 후손을 당장 석방하라.

만약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전 숲민이 들고 일어나 먹바위 딸을 비롯한 숲정부 인사들 모두를 척살하여 물고기 밥으로 만들 것임을 이 자리를 빌어 천명 하니 우리의 요구를 반드시 기억하고 실천하길 바란다…… 와, 누군지 우리가 바라는 내용 일색이네. 이 유인물은 대체 어디서 누가 만든 거야?"

유인물을 읽던 옆 사내가 흥분을 감추며 물었다. 유인물을 건넸던 사내가 쉿, 하며 옆 사내의 귀에다 말했다.

척살단은 우리의 희망

"친원파 척살단이 떴어."

"척살단이?"

"그렇다니까."

"하, 척살단이 공개적으로 유인물을 다 뿌리다니. 먹바위 딸 가슴이 철렁하겠구먼."  

"그리고 유인물 말미에 이런 글도 있어."

사내가 유인물을 펼치며 말했다.

"뭔데?"

"방귀 뀐 년이 성낸다고 먹바위 딸이 우리보고 울면 물고기 밥으로 던져준답니다. 숲민 여러분, 오늘부터는 마음껏 웃고 노래합시다!"

"하하, 그렇지! 생각해 보니 웃고 노래하는 건 괜찮은 거였구먼?"

옆 사내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먹바위 딸이 울지 말라고 했지 웃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거든."

"맞네, 맞어! 지금껏 그걸 왜 몰랐을꼬!"

"하하, 지금부터라도 마음껏 웃어보자구."

말을 마친 사내들이 목젖이 보일 정도로 소리 내어 웃었다. 사내들의 웃음소리가 컸다 싶었던지 숲경찰이 달려왔다.

"이봐, 무슨 일이야?"

"하하, 별 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마슈."

"이 새끼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잖아?"

"하하, 웃고 싶어서 웃는데 그것도 죄요? 하하."

사내가 그렇게 답하곤 더 큰 소리로 웃었다. 숲경찰은 저 놈들이 미쳤나 하며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사내는 손가락을 돌리는 숲경찰을 보며 숲이 떠나가라 웃었다. 웃음소리가 숲으로 퍼지자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음소리는 숲 전체로 퍼졌고 급기야 숨죽이고 있던 새들이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꽃들이 활짝 웃으며 꽃잎을 열었고 매미들도 맴맴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벌과 나비가 콧노래를 부르며 꽃술로 날아드는 시간, 두 마리의 양이 뿔을 곧추 세우곤 상대를 향해 날았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웃음소리가 우습기도 하여 주변에 있던 염소들이 턱수염을 흔들며 낄낄 웃었다.

한번 터진 웃음은 멈출 줄 몰랐다. 숲얼단과 숲경찰이 곁에 있어도 개의치 않았다. 숲민들은 그동안 억눌린 한을 풀기라도 하듯 입이 아프도록 웃고 떠들며 노래했다. 그들은 짝짓기를 할 때도 웃었고 아이를 낳을 때도 웃었다. 어쩌다 울고 싶은 순간이 있어도 웃었으며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웃고 노래했다.

 척살단은 우리의 희망
 피스를 구한다네
 먹바위 딸은 우리의 원수
 물고기 밥이 된다네

 먹바위 딸은 친원파 두목
 물고기 밥이 된다네
 척살단은 우리의 희망
 숲민을 살린다네

숲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자 아이들은 깨금발을 뛰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한 번씩 끝날 때마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 어른들은 껄껄 웃으며 아이들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숲이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로 떠들썩하자 그 소리가 먹바위 궁에까지 전해졌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로 활동중이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은옥이 1.2>, <개 같은 인생들>, <도둑고양이>,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연산> 등이 있으며, 최근 청소년 역사테마소설 <벌레들> 공저로 참여했습니다.



태그:#부정선거, #박근혜, #국정원, #긴급조치, #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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