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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돌팡(바위)에 굴도 많았는데, 인제는 철조망 때문에 못 따먹어. 굴도 사람이 밟고 다녀야 잘 되는데 지끔은 사람이 안 다니니께 굴이 딱지만 남고 다 죽어버리는 거야."

48번 국도의 종점인 인화리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올 겨울 들어 제일 추웠다는 지난 월요일(2월 3일)에 48국도의 종점을 보러갔다. 48번 국도는 서울 종로구에서 출발해서 강화도까지 가는 길이다. 대개의 길들은 다른 길들과 이어지면서 끝없이 뻗어나가는 데 이 길은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에서 끝이 난다.

48번 국도는 임금님의 행차 길이었다

길의 한가운데에 노란색 바리케이드가 놓여 있다. 그것은 차량의 진입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 뒤로 군 초소가 덩그렇게 서있고 초소 뒤에는 바다를 따라 철조망이 길게 처져 있다. 오가는 차들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마치 가위로 뚝 잘라서 놔두기라도 한 양 왕복 이차선 도로는 그냥 널브러져 있었다. 

48번 국도 종점 모습입니다. 초소 뒤로 교동도가 보입니다.
 48번 국도 종점 모습입니다. 초소 뒤로 교동도가 보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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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는 수도인 한양과 가까이 있어서 나라에 위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난을 피하거나 항전을 한 근거지였다. 조선시대 정묘년에 후금이 쳐들어 왔을 때 인조 임금은 강화로 몸을 피했다. 또 병자호란 때는 왕실과 조정 백관의 가족들을 강화도로 피신시키기도 했다. 강화도령 원범은 하루아침에 임금이 되어 서울로 올라갔으며 정족산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사고가 있었다. 한양에서 강화로 빈번하게 사람과 물자가 오갔을 그 길이 48번 국도의 모태였을 것이다.

광화문에서 시작된 길은 양천(서울 양천구 목동)을 지나 김포로 접어든다. 그리고 통진(김포시 통진)을 거쳐 강화에 당도를 한다. 리(里)수로 140이라고 하니 말을 타고 달리면 한두 시간 안에 도착할 거리고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하루해가 지기 전에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인조 임금님은 난리를 피하기 위해 이 길을 가마를 타고 왔고 철종은 임금이 되어 이 길을 따라 서울로 갔다. 임금님이 행차를 하던 길이었으니 당연히 경북궁의 광화문에서 시작이 된다. 우리나라 국도 중에서 이렇게 광화문에서 시작이 되는 길이 또 있을까. 오직 48번 국도만이 유일할 것이다.

길의 끝은 바다였다. 썰물이 지자 바다는 몸을 비틀면서 요동을 쳤다. 민물과 짠물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바탕 씨름을 하고 있었다.

"한강물이 여게까지 내려오는 게야."

물살이 거세다는 내 말에 아주머니는 그리 말했다.

바다가 뒤척일 때마다 물이 희번덕였다. 거대한 괴어(怪魚)의 비늘일까. 아니면 바다에 당도한 민물들의 환호일까. 격랑을 이루며 쓸려나가는 바닷물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몸을 뒤틀고 있었다. 마치 쓸려가기 싫어하는 바닷물의 안간힘 같았다.

길의 끝에는 바다를 경계하는 군 초소가 있고 그 뒤로 철조망이 처져 있습니다. 왼쪽에 교동도로 가는 다리가 보입니다.
 길의 끝에는 바다를 경계하는 군 초소가 있고 그 뒤로 철조망이 처져 있습니다. 왼쪽에 교동도로 가는 다리가 보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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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이 지면 강화의 바다는 맨살을 드러낸다. 물이 물러난 자리에 끝없는 갯벌이 펼쳐진다. 그러나 인화리 앞 바다에는 갯벌이 별로 없다. 썰물과 밀물이 들고 날 때마다 일어나는 거센 물살에 개흙들은 안착을 하지 못한다. 대신 갯바위들이 바닷가에 위시해 있다. 마치 밀려오는 바닷물을 맞아들이는 듯 아니면 쓸려가는 민물들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해주는 듯 갯바위들이 바닷가에 늘어서 있다.

바다를 따라 철조망이 끝없이 길게 처져 있다. 철조망 너머는 곧바로 바다다. 48국도는 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바다와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진정한 길의 끝이다.

바다와 철조망이 길을 막고 있었다

겨울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온다. 거칠 것 없이 바다를 누비던 바람이 철조망의 사이를 빠져나와 뭍으로 상륙을 한다. 48번 국도는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한 채 바람에 점령당했다. 바다를 따라 키 높이로 철조망을 두르고 그 앞에 초소까지 두고 밤낮으로 경비를 하건만 바람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길의 끝에는 집이 한 채 있었다. 밖에는 겨울바람이 맵차게 부는데 집 안은 따뜻했다. 감기 기운이 있는 손녀를 데리고 읍내의 병원에 갔다가 막 돌아오던 아주머니는 낯선 사람인 나를 보고 짖는 개를 달랬다. 물지 않으니 걱정 말라는 아주머니의 인정에 끌려 집 안으로 들어가니 햇살도 나와 함께 방 안으로 따라왔다.

"그 전에는 굴도 따먹고 그랬는데 이제는 바다에 못 들어가. 전두환 때 철조망을 두르고 부터 굴을 따러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지."

집 바로 앞이 바다인데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전두환 대통령 때 철조망을 둘렀다고 하니 30년 이상 바다와 뭍은 격리가 되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보고 있는 곳이라 방비를 위해 철조망을 쳤겠지만 집 앞에 바다를 두고도 바라다봐야만 하니 주민들의 애환이 왜 없을까.

강화도와 교동도를 이어주는 '교동연륙교'는 올해 6월에 개통이 된다고 합니다.
 강화도와 교동도를 이어주는 '교동연륙교'는 올해 6월에 개통이 된다고 합니다.
ⓒ 박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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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안에 고기가 가득할 거야. 안 그래도 저기에 고기가 많았는데, 지금 저 안에는 아무도 못 들어가니까 고기들 세상일 거야."

친정아버지도 또 남편도 어부였으니 인화리 앞바다 사정은 손금 보듯이 잘 알고 있을 아주머니였다.

그러고 보니 바닷가인데도 고깃배도 없고 바닥에 늘어놓은 그물도 보이지 않는다. 바닷가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매기도 날아다니지 않는다. 인화리 앞바다는 전쟁 이후로 60여 년 이상 고기잡이 배가 드나들지 못하는 금단의 바다가 되었다.

예전에 인화리는 꽤 큰 포구였다. 바닷물과 민물이 뒤섞이는 기수역이라 고기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한강과 예성강으로 들어가는 길목이기도 했다.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간 어부들은 연평도까지 가서 새우를 잡아 와서 새우젓을 담갔다. 바다 근처 평지에는 새우젓을 보관하던 창고가 수두룩했다.

그때는 물길이 살아있을 때였다. 남북이 갈라지지 않고 하나였을 때, 그때 인화리 앞바다는 지금의 8차선 고속도로보다 더 넓은 길이었고 인화리는 배와 사람들로 북적이던 선창가 마을이었다. 민물이 들면 밀려들어가는 물을 타고 상선들은 한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황포 돛을 올리고 배들은 물길을 따라 마포나루까지 갔다. 물자도 성했고 사람들의 왕래도 분주했다. 그러나 지금 인화리 앞바다는 배 한 척 볼 수 없다. 그 많던 집들과 새우젓 창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바닷길과 물길이 막히면서 사람 길도 막혀버린 것이다.

서울 종로에서 출발해서 김포를 거쳐 강화까지 이어지는 48국도는 총연장 65킬로미터의 짧은 국도다. 그 길의 끝을 여기 인화리에서 본다. 철조망에 걸려 있던 검정 비닐이 바람이 불적마다 펄럭인다. 비닐은 어디로 가려고 나섰다가 철조망에 발이 묶인 걸까.

외통길 48번 국도의 처연한 끝이다. 바다가 앞에 있어 단절된 길은 철조망으로 한 번 더 끊어졌다.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바닷길을 따라 가면 서해를 넘어 태평양까지 갈 수 있고 물길로는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을 따라 뭍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그러나 예서 멈춰야 한다. 남북이 하나가 되면 끊어졌던 물길이 다시 열릴 것이다. 아니, 물길이 열리면 남북이 하나가 되려나. 인화리 앞바다는 그 날을 기다리며 저리 뒤척이는 것일 게다. 

48번 국도를 통일의 길로

강화도와 교동도 사이의 바다 물살이 세어서 다리를 놓는데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강화도와 교동도 사이의 바다 물살이 세어서 다리를 놓는데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 박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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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국도는 외통길이다. 바다를 앞에 두고 끝이 난 길이다. 언젠가 부터 그 길은 대륙을 꿈꾸었다. 저 바다를 넘어 황해도로 가리라. 해주를 지나 평양도 들릴 것이다. 내친 김에 시베리아로도 나아가 볼 터이다. 48번 국도는 그렇게 대륙을 꿈꾸었다.

대륙을 향한 그 꿈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48번 국도는 지금 새로이 태어나고 있다. 강화본도와 교동도를 연결 해주는 '교동연륙교'가 놓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설 연휴에 며칠간 임시개통을 하였는데, 연휴 4일간 약 2만 명의 인원과 약 6500대의 차량이 통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48번 국도는 다리가 개통이 되면 교동도까지 연장이 될 것이다. 그러면 교동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게 된다.

교동도의 옛 어른들은 교동도는 섬이 아니고 육지라며 자부심을 가졌다. 황해도의 연백반도와 바다 밑으로 닿아 있기 때문에 육지라고 생각을 했다. 썰물이 들어 바다 물이 빠지면 걸어서 연백으로 장을 보러 가기도 했다고 하니 과연 그 어른들의 말씀처럼 연백과 닿아 있나 보다.

연백과 한 몸이었던 교동도는 전쟁 이후로 떨어졌다. 물이 빠지면 걸어서도 갈 수 있었던 곳을 쳐다만 봐야 했다. 그러나 통일이 되면 48번 국도는 강화군 교동도에서 황해도 연백군 연안까지 이어져 50번 국도와 연결이 될 것이다.

50번 국도는 지도상에 이름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 있는 길은 아니다. 그 길은 통일을 대비한 길이다. 황해도의 옹진에서 해주와 연백을 지나 개성에서 1번 국도와 만난다. 1번 국도는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출발하여 평안북도 신의주시까지를 잇는 길이니 길의 엄지요 허리라 할 수 있다. 통일이 되면 48번 국도는 황해도 연백으로 나아가 50번 국도와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1번 국도를 타고 사방팔방 다 나아갈 것이다. 그때가 되면 48번 국도는 대륙으로도 나아가는 길이 되는 것이다.

인화리가 길의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끝이 아니라 대륙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었다. 그곳은 꿈을 안고 있었다. 지금은 비록 초라하지만 통일이 되면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화리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대륙을 꿈꾸었다. 그 날을 기다리는 듯 인화리 앞바다는 속으로 꿈틀대고 있었다.


태그:#48번 국도, #강화도, #교동도, #인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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