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를 시청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불륜과 이혼, 그로 인한 불화와 반목 등으로 주인공들의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데다,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복잡다단한 관계 또한 좀처럼 풀릴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 피곤하고 불쾌한 느낌을 주는, 그래서 극심한 감정의 소모만을 부르는 '나쁜' 드라마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시청하기에는 조금 힘들지만 영 가치 없는 시간은 아니다'라는 정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뻔한 드라마들 속, 다양한 인물들의 행태 잘 그려내

'따뜻한 말 한마디' 송민수가 나은진을 만나 뺑소니 등,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 '따뜻한 말 한마디' 송민수가 나은진을 만나 뺑소니 등,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 SBS


한 가정 내에서 누가 채널 선택권을 가졌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에서 별다른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공중파와 케이블, 종편을 통틀어 일정한 시간대에 일제히 아주 비슷한 내용의 드라마나 예능을 방영하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말이다.

그렇게 한 주에 수십, 수백 편씩 쏟아지는 드라마들 중 옥석을 가려내는 일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수많은 드라마들이 무차별적이며 때로는 함량 미달일지라도, 결국 '중독성' '궁금증 유발' 등을 미끼로 많은 시청자들을 낚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드라마들은 그 어떤 이해와 성찰, 객관적 시선 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각 등장인물들에 깊이 감정이입하게 만들어, 그들에 반목하는 이들에는 대항하고, 한 편에 선 이들에게는 무비판적으로 친밀감을 느끼게 만든다. 한마디로 깊은 '감정적 시선'을 요구받게 되는 것.

<따뜻한 말 한마디> 또한 그런 점에서 아주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매우 현실적이어서 우리의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사건이 중심이기에, 많은 시청자들이 개개의 인물들의 감정에 깊숙이 개입하기 쉬운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뜻한 말 한마디>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둘러싼 인물들의 '다양한 태도'를 잘 다루고 있어서 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섣부른 약속, 일방적 시선, 미숙한 대응, 이기적 판단 등, 인물들의 매우 인간적이지만 미성숙한 삶의 방식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여러 각도에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인물들의 성찰 통한 성장 돋보여

'따뜻한 말 한 마디' 송미경의 미세한 감정변화는 이 드라마의 큰 동력이다.

▲ '따뜻한 말 한 마디' 송미경의 미세한 감정변화는 이 드라마의 큰 동력이다. ⓒ SBS


그렇다고 이 드라마에 매우 많은 사건들이 드라마틱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입부의 불륜으로 벌어진 일들이 아직까지도 지지부진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아주 답답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일파만파. <따뜻한 말 한마디>의 진행상황은 한마디로 말해 바로 그렇다. 나은진(한혜진 분)과 유재학(지진희 분)의 불륜으로 시작된 불행은 그들의 주변으로 한없이 퍼져나가고 있다. 급기야 그것은 그들이 매우 아끼는, 그리고 서로 몹시 사랑하는 이들의 결혼까지도 방해하는 일이 되었다.

나은진(한혜진 분)과 유재학(지진희 분)이 서로의 배우자에게 내뱉은 말들은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불륜에도 이유가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 참으로 구차한 일로 여겨지기도 했다. 피해자가 오히려 더욱 피폐해지는 상황, 당사자들의 억울함은 시청자들에게도 충분히 전해졌다.

그러나 감정의 배설, 그것은 일시적인 통쾌함을 주기는 하지만 아주 좋은 문제해결의 방식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따뜻한 말 한마디>는 위의 경우에도 일방적 시선-자칫 감정적, 주관적으로 흐르기 쉬운-을 내보이지 않았다.

대신 드라마는 송미경(김지수 분)의 분노, 체념, 반성, 통찰 등, 여러 단계의 감정 변화를 심도 높게 보여줌으로서 인간적 성숙이란 무엇인가를 잘 풀어내고 있다. 그로 인한 주변인들의 감정과 상황 또한 앞으로 유기적이며 긍정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

수많은 성찰을 통해 인물들은 새로운 관계의 정립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처음의 아름다웠던 시작점일지, 전혀 뜻밖의 것이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바라건대는 모두가 생각 없이 웃고 끝나는 '잘 먹고 잘 살았더래요' 식의 결말만은 아니었으면. 아마도 이 드라마가 여태 보여준 정도의 견조함이라면 그것을 한낱 기우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마지막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만의 차별화된 엔딩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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