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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유행어를 남겼다. 바로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이산가족 상봉제안과 맞물리면서 적지 않은 이들에게 남북관계가 개선될 듯한 기대를 주었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 보면 현 정부는 남북경색 국면을 극복하지 못했던 이명박 정부와 다르지 않다. 진지한 고민이나 대북정책의 변화없이 갑작스레 경제적 차원의 이득(이른바 '대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통일 논의가 진정성 있으려면 남북교류 등 민간 차원의 움직임부터 활발하게 보장해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남북교류는커녕 일반인들이 통일을 얘기하는 것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통일을 거론하면서 북쪽에 중립적이거나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가는 '종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하물며 누군가 김일성 북한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장소를 참배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여론의 단죄를 피하기는 어려우리라. 하지만 법적인 판단은 여론과는 다를 수 있다. '김일성 참배'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이 있었다. 물론, 이 판결은 며칠 전 대법원에서 파기되고 말았다. 김일성 참배 행위가 무죄가 유죄로 바뀐 내막을 살펴본다.  

김일성 참배 무죄→유죄, 내막은?
  
유무죄를 다투기 전에 기초 법률지식부터 쌓아보자.

먼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국가보안법.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는 이 법에는 반국가단체를 '찬양'하거나 '고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등)
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여기서 '반국가단체'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말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바로 '북한'이 반국가단체다. 대법원 판례도 일관되게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고 있다.

"북한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남·북한 관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화통일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획책하는 반국가단체로서의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고, 그 때문에 반국가단체 등을 규율하는 국가보안법의 규범력이 상실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08. 4. 17. 선고 2003도758 판결 등)

그러니까 북한을 찬양·고무하는 행동을 하면 현행법상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법의 해석은 엄격해야 한다. 단지 북한의 주장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거나 동조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표현의 자유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다행히 최근 판례는 "어떤 언동이 반국가단체 등의 주장과 일치한다거나 반국가단체 등의 주장·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선전 또는 동조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왜 방북길에 올랐나

여기까지 이해가 되었다면 이제 사건 속으로 들어가본다. 사건 당사자는 조영삼(56)씨다. 그의 기구한 사연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종군기자로 참전했다가 대한민국 감옥에서 34년간 복역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2007년 향년 90세로 북에서 별세)씨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1995년 8월 평양의 이인모씨 집을 방문해 이씨의 가족들과 현관에서 찍은 사진. 정중앙에 서 있는 사람이 조영삼씨다.
 1995년 8월 평양의 이인모씨 집을 방문해 이씨의 가족들과 현관에서 찍은 사진. 정중앙에 서 있는 사람이 조영삼씨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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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는 1991년 한 월간지에 실린 비전향 장기수 기사를 접한 뒤 이씨를 알게 된다. 그 뒤 1993년 이씨가 북으로 송환될 때까지 개인적으로 후원을 해왔다. 서울에서 남북고위급 회담이 열렸던 1992년 5월 조씨는 이씨와 함께 회담장소에 들어가려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출소 후 아르헨티나에 체류하던 그는 1995년 "이씨가 죽기 전에 만나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듣고 밀입북을 결심하게 된다. 

그는 북한 공작원과 만나 방북 방법과 일정을 협의한 뒤 독일, 일본, 중국 등을 거쳐 1995년 8월 평양에 도착하였다. 그는 방북 뒤 20여 일 동안 체류하면서 북에서 개최된 민족통일대축전, 범민족대회 등에 참석하고 북한 내 여러 장소를 방문하였다. 이후 조씨는 17년간 독일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지난 2012년 인천공항을 통해 자진 입국했다.

그는 입국 직후 체포되어 기소된다. 법정에 선 그는 2013년 7월 1심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잠입·탈출, 찬양·고무등, 회합·통신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법원은 조씨가 ▲ 이인모씨의 뜻밖의 초청에 따라 방북했고 ▲ 방북 후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에서 지난한 세월을 보냈으며 ▲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귀국한 점을 감안하여 3년간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2심 "단순 참배 행위는 찬양, 고무로 보기 어려워... 무죄"

같은 해 9월 항소심에서 조씨는 징역 1년 6개월(집유 3년)로 감형되었다. 유죄 중 일부가 무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조씨가 방북기간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 참배를 한 행동을 2심 법원(서울중앙지법 제2형사부 재판장 박관근 부장판사)이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우선 "조씨의 평소 성향과 이인모와의 친분 관계 등에 비추어 볼 때 편향된 정치적인 목적이나 신념 때문이 아니라 나름대로는 '인도주의'의 차원에서 이인모를 방문하기 위하여 방북을 결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법원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국가보안법이 제한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 뒤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서 평소 이념적 편향성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의 단순한 참배 행위는 망인의 명복을 비는 의례적인 표현(예식)으로 애써 선해될 여지도 있을 뿐만 아니라 이념의 장벽을 초월하여 한겨례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대승적 견지에서는 그것이 조금 더 선해될 여지도 있다"고 판시했다.

김일성 사건 판결 비교
 김일성 사건 판결 비교
ⓒ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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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또한 "북한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은 방북자들이 의례적으로 방문 또는 참배하도록 요구받는 장소로 조씨가 소극적인 참배 이외에 적극적으로 북한 체제를 미화·찬양하는 발언·연설을 하거나 방명록 등에 그러한 취지의 글을 남겼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참배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심 판결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단순한 김일성 참배 행위는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국가보안법 찬양·고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 "김일성 참배는 북한 찬양 수준"... 유죄 취지 파기 환송

하지만 그로부터 4개월 뒤인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판결을 뒤집는다. 대법원이 보기에 참배행위는 "반국가단체 수괴 시신에 대한 참배"이자 "북한의 활동에 대하여 찬양·선전과 같이 평가될 정도로 적극적으로 호응·가세한다는 의사"였다.

대법원은 "조씨의 당초 방북 목적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인모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구체적인 북한 방문 일정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민족통일대축전과 관련한 각종 행사 등에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유럽본부 관계자 등과 함께 참여할 수도 있고 이를 통하여 북한이 피고인의 행위를 자신들의 체제 선전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방북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참배 행위를 포함한 조씨의 일련의 행위는 북한의 선전활동에 이용되었는데, 자신의 행위가 북한의 선전·선동 활동에 이용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계속한 점"을 지적했다.

또한 대법원은 "금수산기념궁전은 반국가단체의 수괴였던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북한이 그 시설에 부여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보아 그에 대한 참배 행위는 망인의 명복을 비는 단순한 가치중립적인 의례행위로 용인될 수 있는 범주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조씨가 방북한 1995년 당시의 남북관계 및 시대 상황 등을 종합해보면 북한의 체제 선전 수단으로 활용되는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참배한 행위는 결국 북한의 활동에 대하여 찬양·선전과 같이 평가될 정도로 적극적으로 호응·가세한다는 의사를 외부에 표시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평가를 내리면서 항소심 판결을 파기했다.

김일성·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북한 금수산태양궁전.
 김일성·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북한 금수산태양궁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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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다시 2심으로 내려갔다. 노모와 함께 살고자 고국으로 돌아온 조씨는 지리한 법정공방을 다시 벌여야 한다. 참배행위에 대해서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만큼 이 부분은 유죄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까

독자들에게 묻는다. 조씨의 '김일성 참배'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만큼 위험한 행동이었을까. 1990년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찬찬히 들여다본 뒤 대답해보라.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한다는 의미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협·침해하고 영토를 침략하여 헌법과 법률의 기능 및 헌법기관을 파괴·마비시키는 것으로 외형적인 적화공작 등일 것이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의미는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는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체제를 파괴·변혁시키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1990. 4. 2. 89헌가113 결정 참조).


태그:#김일성,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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