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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행은 다른 철과 달리 준비할 게 많다. 보온을 위한 모자와 장갑은 필수이고 눈길이나 빙판길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주는 아이젠 역시 꼭 챙겨야 한다. 또 한기가 스며들지 않도록 목도리도 두르고 눈이 신발 속으로 들어오거나 바지에 묻지 않도록 해주는 스패츠 역시 챙겨야 한다. 그 외에도 구비해야 할 것들은 더 있지만 방수 등산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기본 아이템 중의 하나이다.

그런 걸 잘 알면서도 나는 아직 방수신발도 스패츠도 갖추지를 못했다. 어쩌다 한 번씩 걷는 강화 나들길 걷기인데 그렇게까지 갖출 게 뭐 있을까 하는 생각에 늘 대충 차려입고 따라나서고는 했다. 그래도 아이젠만은 빼먹지 않고 꼭 챙긴다. 그것은 혹시 모를 미끄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눈길에서 미끄러지면...

전에는 넘어지는 게 무섭지 않았다. 혹시 길에서 넘어지기라도 할라치면 다른 사람들 보기에 좀 부끄러워서 그렇지 툭툭 털고 일어나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미끄러져서 넘어질까봐 조심을 한다. 그것은 친정아버지가 넘어져 다친 뒤로 고생하시던 걸 봤기 때문이다.

전등사에 가는 중에, 계단을 오르기가 힘이 드셨는지 한참을 쉬었습니다.
 전등사에 가는 중에, 계단을 오르기가 힘이 드셨는지 한참을 쉬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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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봄에 아버지는 넘어지셨다. 그때 친정집의 사랑채를 수리하던 중이라 마당에는 이것저것 널린 게 많았다. 남동생은 아버지에게 미리 당부를 했다. 집이 어지럽혀져 있어서 눈에 거슬리더라도 치우고 그러시지 말고 그냥 구경만 하시라고 했다. 혹시 아버지가 일을 하시다가 다치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어서 말씀드렸는데도 아버지는 그예 큰 사고를 내고 말았다.

처음에는 아들의 말을 따라 그저 구경만 했지만 아버지 눈에 널려 있는 것들이 영 거슬렸나 보다.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아버지 친구분들이 놀러오셨는데, 여든이 넘은 분들이 당신들의 지금 나이는 생각지를 못하고 예전 생각만 하고 팔을 걷고 나섰다. 젊으셨을 적에는 모두 볏가마를 번쩍번쩍 들어올렸던 장골들이었으니 그깟 기둥 하나 옮기는 것은 일도 아닌 것처럼 생각이 되었으리라. 그래서 두 팔 걷고 나무 기둥에 매달려서 용을 썼다.

세 노인이 나무 기둥에 달라붙어서 놀이 하듯이 힘을 썼다. 그까짓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아직도 팔에는 힘이 남아 있었고 모처럼 옛날로 돌아간듯 기분도 좋으셨으리라. 그런데 아뿔싸, 힘을 너무 쏟았나 보다. 기둥이 너무 쉽게 들려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세 노인은 뒤로 벌렁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버지가 맨 밑에 깔렸고 그 위로 아버지 친구분들이 엎어졌다.

두 분은 툭툭 털고 일어났지만 아버지는 그러지를 못했다. 땅에 주저앉은 채 굴신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달려갔더니 고관절에 금이 갔다고 하지 뭔가. 그 길로 아버지는 두 발로 땅을 밟을 수가 없었고 다시 걷기까지 모진 고생을 해야만 했다.

고관절에 금이 가서 수술을 받은 아버지는 당최 잡숫지를 않았다. 마실 걸 권해도 됐다 하셨고 밥도 거의 사양하다시피 했다. 아버지가 왜 아무것도 드시지를 않으려 하는지 간병인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했다.

아버지는 성정이 깔끔하고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어려워하는 분이었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 역시 하기 싫은 일이니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고 나 스스로 해야 한다'고 하시며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셨던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대소변을 남의 손에 의지해서 해결해야 했으니 얼마나 불편하고 또 치욕스러웠겠는가.

수술 후 한동안 꼼짝 않고 침대에만 누워 있어야 했으니 당연히 화장실 출입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대소변 역시 침대에 누워서 봐야 했으니 얼마나 민망했을까. 아버지는 그게 영 견디기가 어려워서 아예 드시지를 않았다. 먹은 게 없으면 나오는 것도 줄 테니 간병인에게 못 볼 꼴을 안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게다.

"내 발로 걸어야 살아 있는 것이지"

강화도 양사면 성덕산은 이렇게 포근합니다.
 강화도 양사면 성덕산은 이렇게 포근합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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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동안 병원에서 요양을 하셨던 아버지는 죽을힘을 다해 운동을 했고 마침내 당신 힘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고관절을 다치면 대부분 다시 걷지 못한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집 안에만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밖에는 회복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당신 발로 화장실 출입을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어디냐고 하셨다.

아버지는 연세에 비해 꽤 건강하셨다. 일흔 즈음부터는 아침마다 산책 삼아 십 리 정도씩 매일 걸었다. 그렇게 십여 년을 걸으셔서 그랬는지 몸도 마음도 건강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꼼짝없이 집 안에 갇혀 지내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얼마나 갑갑하고 답답했을까. 바깥나들이를 할 때 타고 다니시라고 작은 전동차를 구입해드렸으니 그나마 갈증은 풀렸겠지만 그래도 당신 발로 걸어다니는 것만 하겠는가.

그보다 더한 것은 체력이었다. 걷지 못하게 되자 아버지는 급격하게 노쇠해졌다. 버스와 기차를 몇 번씩 갈아타며 경북 청도에서 강화도 우리 집까지 거뜬하게 다니시던 아버지는 고관절을 다친 이후로는 다시는 우리 집에 와보시지 못했다. 뼈를 다치신 지 이태도 더 못 사시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런 아버지를 본 후로 나는 넘어지는 게 무섭다. 농담 삼아 우리 또래들이 '이제 넘어져서 뼈가 부러지면 잘 붙지도 않는 나이다'라고 말하고는 하는데 그것은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기도 했다. 우리는 넘어질까봐 조심을 해야 하는 나이가 어느새 된 것이다.

그래서 산길로 접어들자 등산화 밑에 아이젠부터 끼웠다. 산에는 며칠 전에 온 눈이 아직 녹지 않고 남아 있었다. 햇빛이 비치는 남쪽 면은 눈이 다 녹았지만 그늘진 북쪽 면은 아직 수북하게 눈이 쌓여서 어디가 길인지도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성덕산에 오르는 중이다. 강화군 양사면에 있는 성덕산은 그리 많이 알려진 산은 아니지만  한 번 가본 사람들을 또 가도록 만드는 산이다. 여타의 강화 산들과 마찬가지로 성덕산 역시 산마루에서 내려다보는 눈 맛이 좋기 때문에 또 찾게 되는 것이다.

저 강 건너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강화도 연미정에서 북한을 바라봅니다.
 강화도 연미정에서 북한을 바라봅니다.
ⓒ 박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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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의 산들은 오르기에 만만하다. 산이라고 해봤자 300~400미터 내외의 높이이니 한나절 안에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 있다. 산등성이에 올라서면 드넓은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올망졸망 떠 있는 섬들을 껴안은 서해 바다가 정겹게 다가온다. 산 아래에는 포도송이처럼 동네가 깃들어 있고 동네들을 이어주는 길들이 포도 줄기처럼 뻗어 있다.

성덕산 아래에도 올망졸망 마을들이 깃들어 있다. 강화의 최북단인 양사면의 여러 동네들이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마을 앞으로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고 들판 너머에는 희뿌옇게 흘러가는 강이 보인다. 강 건너에도 들이 보이고 굼실굼실 산이 이어진다. 산 아래에는 포도 알 같은 집들을 오롱조롱 달고 있는 마을들이 있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산이며 동네의 모습이다.

강의 이쪽에서 저쪽까지는 불과 2킬로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썰물이 들어서 물이 빠지면 강폭은 더 좁아진다. 마음먹고 걸으면 30분도 채 안 걸릴 거리다. 그런데도 60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뜀박질해서 가면 10분이면 너끈히 갈 수 있는 곳을, 지구를 돌아도 몇 바퀴나 돌아볼 수 있을 시간 동안 헤매고 있는 것이다.

'황해도 개풍군', 이름만으로도 정겨운 이웃 마을이다. 언젠가는 저 마을들을 가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성덕산에서 바라보이는 강 저 너머의 산들에 올라보리라. 그리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들도 걸어보리라.

언제가 될지 모를 그때를 위해 넘어지지도 말고 다치지도 말자. 그래서 아이젠을 끼운 등산화로 눈이 쌓인 땅을 한번 툭툭 차본다. 지금은 비록 얼어붙어 있지만 날이 풀리면 땅도 녹을 것이다. 강 건너 저 동토에도 봄날은 오리라.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그려본다. 눈이 쌓인 겨울 산에서 봄날에 대한 기다림으로 마음이 설렌다.


태그:#강화도, #등산, #북한, #성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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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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